농사는 지어 보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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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지어 보셨나요 ?
  • 김영
  • 승인 2015.02.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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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여라(2편),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만약에 말이죠. 건강하기를 갈망하면서 입에서 더러운 말만 쏟아져 나온다면~!
과연 몸이 깨끗해질 수 있을까요? 그래선 절대 않되는 일일테죠!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게 마련이면서 신경메커니즘도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마련인지라 그럴 수는 없어야 순리적일 것입니다.
천부당만부당, 하늘이 두 쪽이 난다 하여도 말입니다.
부처님 하느님 보다 더 대단한 존재를 대동한다 하여도 그래선 절대 않될 일이죠!
헐때 자연적이면서 순리적일 수 있을 터이니까요.

   

웃을 수 있는 말을 할 땐 말하는 사람의 표정은 물론이고---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의 표정도 자연적으로 동시에 미소가 띄워집니다.
흉한 말을 할 땐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의 표정들이 모두 자연적으로 흉하게 일그러져지죠.
남에 흠을 흉보는 건 고약하다할 정도로 나쁜 짓입니다.
남에 정책을 칼질하는 짓 역시 못된 짓거리가 분명하죠.
나쁜 짓, 못된 짓을 하는데 제일인들 제대로 잘될 수 있을까요!
잘되지 않아야 순리적이면서 자연적일 테죠. 것또한 저절로죠.
누가 그래지도록 의도해서가 아닌 그 같은 과업자체의 저절로에 의해서죠.

지구촌은 사람을 비롯한 미생물들 중 단 한 종까지도 모두 공생해야만---
모두의 생존이 온전할 수 있고 단 한 종이라도 멸종되게 하고자하면 말입니다,
결국은 다 같이 자연적으로 공멸되도록 기획된 요람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할 것입니다.
사람 역시 지구촌적 패러다임대로 살아야만 온전한 생존이 가능한 존재이니만큼---
같은 운명을 타고난 존재가 분명하지 않을까요?
생존하는데 있어서의 생태학적 순리는 사람의 경우도 하찮은 미생물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얘기입니다.
저들처럼 사람도 어디까지나 먹어야 살 수 있고, 뱀이 생명체인 개구리를 먹듯---
사람의 먹을거리 역시 엄연한 생명체인데다 태어나는 것 역시 저들처럼---
성교에 의해 태어나는 것 또한 추호도 다를바 없는 분명한 사실이니까 말입니다.
헌데도 불구하고 유산균만 살게 하고 대장균은 없애려고 기를 쓰니까 말입니다.
천연두균과 홍역균을 못살게 한 결과는 사실 병들어 마땅한 세상이 되고 말았죠!
뱀과 개구리의 수가 저들 서로에 의해 자연적으로 조절되듯이---
인간의 수도 자연적으로 조절되도록 마련되었을 게 너무나 분명하죠!
그 역할을 담당한 천적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구촌이 제대로 존재할 수 있으려면 인간에 천적 또한 불가피하지 않을까요?
아니라고요? 하다면 그건 인간의 욕심이지 않을까요? 욕심이 죄를 죄가 사망을 부른다 하였으니까--
인간을 병들게 하는 저들을 없앴으니까 별 수 없는 일이죠,
잘 생각해볼 것 같으면 엄청난 일일 것입니다.
인간들끼리 서로 죽이기보다는 천적에 의해 조절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할 터인데 ~!
해서 조물주가 그렇게 마련하였었다할 수도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너무 영리해서일까요? 글쎄요.
제 꾀에 제가 넘어 간다는 말 말입니다, 인간이 저지른 처사가 바로 그런 것 같습니다.
살기가 힘든 것, 당연히 마땅하죠. 벌어서 마련한 죄업이니까 말입니다.
며칠 전에 일입니다. TV를 보았었죠, 어떤 이들이 함께 어떤 사람들을 없어지게---
해달라는 대대적인 기도회를 했다는 것입니다. 죽어지게 말입니다.
너를 못 살게하면 나 또한 못살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적인 것 아닐까요!
유산균이 필요한 만큼 대장균도 불가피해야 자연적일 것입니다.
'라마스떼' 당신을 존중합니다. 당신에 신에게 경배를 드립니다.
해야 인간세상이 평화로울 수 있는 법 아닐까요?

농사를 지어 보셨습니까?
파동학을 공부하노라니까 생태학을 알아야할 것 같아 농사를 지었습니다.
거기서 배운 바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의 블로그 저절로여라에 소개된 공생농장엘 들려보세요.
잡초와 곡식, 병해충과 익충들을 함께 공생하도록 배려하니까.
병도 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농사도 못지않게 잘 되더군요,

우주는 음과 양인 극과 극으로 구성되었지 않습니까?
이들의 대립에선 항력이, 공조에선 생산성이 발생되도록 기획되었다할 수 있죠.
남녀를 대변하는 성기의 생김새가 서로 상반되게 생긴 극과 극인 모양이 분명하죠,
남지는 외부로 불쑥 돌출된 반면에 여지는 안으로 움푹 들어간 셈이니까요.
이와 같은 남녀 사이는 상호 대립과 공조가 가능한 사이이기도 하죠.
대립성에선 경쟁성의 도모가 자연적이죠. 때문에 그것에 의해 세상의 발전이 가능하고요.
공조성에선 애정이 절로 싹틈에 따라 2세인 생명체가 생산되기도 하죠,
하지만 남녀사이란 본시 극과 극인지라 애정보다 적대심이 도모될 확률이 훨씬 더 높은 사이죠.
해서 부부는 툭하면 티각태각 싸울 수밖에 없는 처지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기의 프라스와 마이너스(- +),
저들 사이에 니크롬선이 개입되면 전광이, 코일선이 개입될 것 같으면 동력이 발생하죠,
하지만 선들끼리 직접 맞닿으면 프랐쓰되어 파탄이 초래될 수밖에 없습니다.
빼도박도할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 틀림없는 자연적인 거죠.
이른바 지구생태계적 순리인바 누가 이렇게 마련했는가 하면 말입니다.
바로 세상을 만든 그 이라 데요. 하지만 그분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할 것 같으면 생명학적 생태순리가 원칙적으로 그래야만 정상적으로 재생될 수 있으니까요.
당연 타당한 일이죠. 자연적인 것이니까 말입니다.
남녀 사이에 개입된 사랑은 마치 전기의 프라스와 마이너스( - +) 사이에 개입된 니크롬선이나 코일 선과 같죠. 허면서 남녀는 본시 극과 극인지라 여차하면 극끼리 마주쳐 파탄의 초래가 가능한 사이이기도 하죠.
험에따라 부부사이는 항상 살얼음판과 같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이란 원칙적으로 먹어야 살 수 있고 먹으려면 먹을거리인 생명체를 죽여야만 하죠.
작용에선 자연적으로 마모가 발생, 낡아져져 폐품의 발생은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고요.
살고자 열심하노라니까 자연적으로 낡아지게 마련, 해서 사람도 늙어져 죽게 마련인 것입니다.
헌가하면 한정된 공간인지라 생기는 대로 모두 태어나 생존하노라면 과잉은 불가피하죠.
이를 제대로 처리하고자 하면 천적에 의해 먹고 먹히는 패러다임, 보다 더 근사한 방편이 과연 있을까요
아프리카 초원의 청소부가 누구죠? 그렇습니다. 독수리, 하이에나와 같은 동물들과 미생물들이죠,
그런 생명체들이 아니면 초원은 썩어 뒹구는 사체들로 가득할 것이며 냄새 또한 지독할 것입니다.
나고 죽어 땅속으로 들어간 인체, 그걸 먹은 미생물들은 식물들의 식량이죠.
그렇게 자란 식물들은 다시 초식 동물들과 잡식동물들의 먹이가 되고요.
그건 다시 동물성인 동물들과 잡식성인 인생에 필수한 식량이 되는 반복이 거듭되는 패러다임, ---
보다 더 근사한 생태학적 패러다임이 과연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는 태고 이래에 이르기까지 항상적인 것 아닙니까?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무엇을 의미하죠! 그렇죠. 성공은 고생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거죠.
즐거운 놀이를 지나치게 즐기노라면 피로증이 도모됩니다.
무엇을 의미 하느냐 하면, 복에 겨우면 화가 도래한다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른바 행복에 의해 불행이 도모된다는 얘기가 절로 되는 거죠.
좋은 일엔 항상 마가 끼인다는 말, 어떻습니까?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죠.
제아무리 좋은 일일지라도 지나치면 화를 초래하는 것 역시 사실이죠.
모자라도 병이요 넘쳐도 병이죠. 하지만 보다는 모자라는 편이 그나마 좀 낳을 수도 있습디다.
허지만 균형이 맞는 것만은 못하겠죠,
헌데 균형이 맞는 것만은 능사가 아니라는 것 역시 자연적인 거죠. 씨이소오에 잘 반영되어 있더군요.
균형이 맞는 상태가 계속 유지될 것 같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허면서 시이소오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세상 돌아가는 력사 역시---
균형만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 같으면 결국엔 망하는 일뿐일 테죠.
이른바 균형이 맞으면 돌려져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맑은 곳이 있어 흐린 곳이 있고, 흐려야 비가 내릴 수 있어 만물들이 살 수 있는 법이죠,
맑음으로써 태양열은 불가피할 테고 열에 의해 수증기의 증발은 필현이죠.
따라서 증발 된 수증기가 모여 구름을 이루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어 흐려지게 마련이고요.
그게 모두 비가 되어 땅으로 내려오니까 맑아지는 것 역시 어쩔 도리가 없는 거고요.
사람 사는 일 역시 그렇습니다. 산 넘어 산 갈수록 태산인 여정을 수행하노라면---
즐겁고, 힘드는 것, 당연지사, 맑은 날 있어 흐린 날 당연한 것처럼 말입니다.
좋은 만큼 나빠야 마땅한 일이니까요. 순리적이여야 하니까 말입니다.
성공을 향한 힘든 일, 즐거운 일이죠, 이루어졌을 때를 생각할 것 같으면 가슴이 벅차죠,
마음자리를 두기에 달린 것이 분명하잖습니까.
괴롭다고요? 그건 말입니다. 행하기 싫어하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행하기 싫다는 것은 곧 먹기 싫다는 얘기가 되기도---?
먹기 싫다! 그건 곧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죽을 때가 될 것 같으면 입맛부터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말입니다.
입맛이 있으면 살맛나죠, 먹으면 살 수 있으니까 당연하죠.
입맛이 없으면 죽을 맛이고요. 당연하죠. 입맛이 없어 먹지않으면 죽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을 비롯한 짐승초목들 모두 동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먹어야 살고 먹고자하면 먹을거리를 구해야 하는 법,---
먹을거리를 구하는 일, 그거 힘이 소모되는 일이니까 힘드는 건 당연하죠.
그게 싫으면 먹을 자격 당연히 없죠. 자격이 없는데 어떻게 먹을 수 있나요.
일하지 않는 자, 먹을 자격 없다. 당연하죠. 자연적이니까요!
험으로 먹을거리를 구해야만 먹을 수 있는 생명체로써 일하기가 싫은 놈은 죽어야 마땅하죠.
해서 일하기 싫어 빈둥거리는 치들은 사고, 즉 죽어 마땅한 짓들만 도모, 저지르게 마련인 것입니다.
반면에 진정성을 가지고 열심하는 자들은 여봐란 듯이 뭣진 삶이 가능하다는 점, 분명하죠.
어디까지나 저절로에 의한 결과인 거죠.
해서 저절로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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