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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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며...
  • 이수호
  • 승인 2015.01.28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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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불싸, 우리교회 3-9
오늘은 아침부터 내가 잠시
딴 생각을 했던가
식사당번이라 일찍 일어나 칼질하는
아내의 도마소리에 흥분을 했던가
얼른 가서 교회 센 불에
미리 좀 조리를 해야 한다며
한이네를 좀 일찍 오라 했으니
서두르라는 잔소리에 정신이 혼미해 졌던가
음식 재료 보퉁이를 허둥지둥 들고 나가다가
앗불싸
   
▲ 글쓴이 이수호님은 교사 출신으로 전교조와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바 있습니다. 지금은 이주노동희망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놓고 나와 버렸다
오른 쪽 바지주머니가 허전해서
앗차 하는데
차는 이미 강변북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세상에 별주부전 토끼처럼
간을 빼놓고 나오다니
난감함이 강변 물안개처럼 밀려오는데
말도 못하고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놈 갖고 왔으면 벌써 몇 번이나
찌르르찌르르 허벅지를 문지르는 진동에
대가리를 처박고
문자에 카톡에 밴드에 페이스북에
온통 정신을 다 뺐기고
오랜만에 만난 아들네와도 입을 닫고
철 따라 달라지는 강변의 풍경도
언제 거기 있었나 했을 텐데
그 놈이 없으니
한 편으론 허전하면서도
이것저것 새롭게 보이고
뭔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한이네가 개학을 앞두고
짧은 국내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일이며
내가 네팔 갔던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차 안이 자못 화기가 넘치는데
이게 다 스마트폰 두고 나온 덕분인가 하니
혼자 슬쩍 쓴웃음이 나왔다
예배 시간에도 그랬다
기도를 드리든 찬송가를 부르든
심지어 설교 시간까지도
언제부턴가 공공연하게 앞 탁자 위에 올려놓고
수시로 뜨는 문자를 힐끔거리며
두 예배를 동시에 드리는 듯했는데
오늘은 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예배 끝난 뒤 밥을 같이 먹으면서도
또 차를 마시면서도
비로소 끊이지 않고 대화가 이어져
상대의 고민이 들리기 시작했다
정 집사님은 심해지는 아버지 치매증상 땜에
마음앓이가 심하고
노 목사님은 새로운 거처를 물색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는 사실도 알게 돼
정보를 나누며 같이 걱정하니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스마트폰이라는 또 다른 신을
모시고 살게 되었을까
다가오는 시대
예수는 점점 힘을 잃어 가는데
이 스마트한 새로운 신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더욱 확산되고
더 큰 위력을 발휘하리라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며...’
그분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한 구절이
귓가에 맴도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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