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생티기행(4)] 내일은 어느 초원을 거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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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생티기행(4)] 내일은 어느 초원을 거닐까
  • 류기석
  • 승인 2009.10.0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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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농촌은 이동식 목축이 유일한 문화

다음날 일찍이 옆집 아이에게 연필 한통을 선물로 주고는 원주민 식구들과 마요주를 마시며 즐거워했다. 돌아오려는데 들통에 마요주를 하나 가득 채워 주어 일행과 나누어 먹었다. 허나 다들 잘 못 먹는 눈치라 마요주는 모두 내차지가 되어 몽골 땅에서 마음껏 마셨던 발효술이 되었다. 바트 숨베르 농장의 오전은 하루 종일 주절주절 비가 내렸다. 점심식사로는 경북대학교 해외봉사단원들이 해놓고 간 카레와 함께 우리들만의 맛난 밥상을 차려 머나먼 타국에서 우리음식을 싫 컷 먹어보는 호사를 누렸다.

이곳의 시차는 한국과 같아 지내기에 편리했다. 하지만 저녁9시가 넘어도 환한 초원에서는 그저 바람소리에 눈뜨고 적당히 잠드는 삶이 습관이 되어야 피곤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몽골총각은 한국 사람들과 똑같이 생긴 것에 더하여 순박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운동을 썩 잘 할 뿐 아니라 언제나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열심인 것에 놀랐다.

몽골에서는 남자나 여자의 머리칼을 특별한 의미로 생각한다. 그래서 머리를 풀고 다니는 것은 '헤픈 여자'의 상징으로 통한다. 아이들은 사내아이나 계집아이나 일정한 나이까지 머리칼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그대로 놔두고는 자연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이 완전함에 너무 일찍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아마도 높은 유아 사망률 때문에 생긴 관습처럼 생각된다. 이들이 머리를 자르는 시기는 별자리를 보고 성년식의 시점을 찾아 홀수 나이인 세살내지 네 살이 되어야 비로써 성년식을 치루고 머리를 자른다고 한다.

▲ 햇볕과 바람에 그을어 볼이 발그레한 쌍둥이 남자 아이들은 대자연이 학교다.


오후 무렵 날씨가 좋으면 말을 빌려 타기로 하고는 소일삼아 토마토 농장에 가서 토마토순도 솎아주고 농장식구들과 함께 뒷산으로 버섯을 따러 갔다. 이곳저곳에는 흰 버섯이 많이 자라 있었다. 먹는 놈들을 구별하여 한 소쿠리 채우고 뱀이 없는 둥그런 초원동산들을 마구 올라 다녔다. 숲이 없는 산에는 온통 야생의 풀들이 꽃을 피워냈다가는 지고 하는 가운데 이따금씩 새들과 짐승들이 파놓은 구덩에 지천으로 날아다니는 메뚜기 떼들만이 심심치 않게 초원을 활보하고 있었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푸른 야생의 풀잎 속을 헤치며 오른 정상은 환상적.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에 겹겹으로 파노라마를 이룬 능선들과 강줄기들, 양떼와 소 떼 무리들, 유목민의 집들이 우리들을 반기는 듯 하다. 허공을 향해 돌던 매도 사라지고 정적이 감도는 초원의 향기는 갑자기 눈과 코와 입으로 다가와 한순간의 피로를 씻어준다. 몽골인들은 대체로 눈이 좋아 안경이 필요 없고, 이가 좋아 칫솔이 필요 없다.

대도시로부터의 시끄러운 소음과 각종 오물에 더렵혀진 거리, 형형색색의 어지러운 간판문화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무공해 초원만이 녹색바람을 일으켜 고요함과 더불어 넉넉하고 편안한 안식을 주는 대지 그 자체였다. 이곳에서는 바람과 구름, 양떼와 목동, 말과 게르만이 초록의 들판 위를 주름잡는다. 내려오는 산기슭에는 백리향과 인진쑥 등 우리의 산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어 잘 자라고 있었다.

늦은 오후 들어 야생들꽃무리들이 많이 피어있는 초원을 말을 타고 한바퀴 돌고난 후, 게르로 돌아오니 양을 잡는다고 6만 뚜그릭을 달라고 하여 주었다고 한다. 한국 돈 6만원에 허르헉을 해주려는 모양이다. 먼저 허르헉을 만들기 위해서는 넓은 초원위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양 한 마리를 사와야 한다. 몽골에서는 가축이 귀한 재산이므로 짐승을 함부로 잡거나 요리를 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손님이 자신의 집을 방문했을 때 접대용으로 허르헉을 대접한다.

농장 한쪽 구석에서는 이곳에 부부학생으로 와서 일하고 있는 부인과 이웃집 아주머니가 열심히 양의 내장을 손질하고 선지를 부어 순대를 만들고 있었다. 몽골인들이 양을 잡을 때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게 순간적으로 숨통을 끊는다. 그것은 오랫동안 가축들과 함께 살아온 이들의 미풍양속인 것이리라. 오랜 세월 유목생활로 다져진 이들만의 고시레 문화로 생명에 대한 예의를 진지하게 대한다.

고기는 스테인레스로 만든 기다란 우유 통에 넣을 준비를 마치고 따로 장작불을 피워 탄소함량이 많이 들어가 맛을 좋게 하는 초토라는 몽골 특유의 돌을 빨갛게 달구어 고기와 파와 감자, 당근 등의 양념을 넣고 소금을 뿌리고 함께 집어넣고는 뚜껑을 단단히 덮는다. 외부에서 열을 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부 초토의 온도에 의해 고기가 익는 방식인 것이다.

잠시 후 우유 통 안에서는 대단한 소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우유 통 뚜껑사이에서는 커다란 굉음을 내며 수증기가 마구 솟아오른다. 막간을 이용하여 천연 순대를 맛보니 어찌나 맛이 좋던지 여러 점을 단숨에 목구멍을 통해 넘겼다. 잠시 양고기에 뜸을 들이는 동안 비닐하우스로 이동하여 호박과 토마토, 오이, 고추 등의 작물을 돌아보고는 특별히 토마토 키우는 법을 그곳 부부에게 자세히 알려주었다. 이곳 비닐하우스의 토마토는 줄기를 솎아주지 않아 이파리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기에 한줄기만을 남겨 공중에 묶어주고는 모든 순들은 제거해 주었다.

온갖 양념으로 뜸을 들인 양고기가 익어갈 무렵, 허르헉을 맛보기 위해 우리일행들과 몽골인 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이웃한 해외봉사단 학생들에게도 양고기를 한 사발 갖다 주고는 이웃한 몽골인들과 둘러앉아 큰 사발에 담긴 양고기를 맛보았다. 어두움이 몰려오는 늦은 저녁 두 손으로 양고기를 잡아들고는 대초원의 바람과 태양, 별과 달, 풀꽃들의 향기를 마시며, 전통 양고기요리 '허르헉'을 맛보다. 약간 질긴 듯 했지만 우리의 돼지고기 맛과 비슷해 썩 괜찮았다.

 

▲ 야생버섯을 구하러 갔다가 초원이 내려다 보이는 민둥산에서 원주민 아이들의 순수함을 보았다.



이동생활 속에서 이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만든 허르헉은 지혜가 담긴 음식이기에 더욱 손길들이 오갔고, 비위를 상하는 냄새도 없어 담백했다. 이토록 신선한 고기를 과연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먹어볼 수 있을까? 늦은 밤 초원 위를 수놓은 별빛들을 바라보며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생각했다. 개의 죽음까지도 헛되이 보이지 않는 몽골인들의 생활문화 속에 묻어있는 생명에 대한 배려는 참으로 숭고하다.

(“딸아, 누구나 죽지만 아무도 죽지 않는단다.” 하늘과 땅 사이로 한 남자가 생명 없는 개를 안고 간다. 어린 여자 아이가 남자 뒤를 따른다. 모난 바위가 생명 없는 몸뚱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맞아들인다. 남자는 날카로운 칼로 개의 꼬리를 조심스럽게 잘라 낸다.

“아빠, 뭐하시는 거예요?” 아이가 아빠에게 묻는다. “꼬리를 개의 머리맡에 놓아 주려고. 그래야 개가 다음 생애 꼬리 달린 개가 아니라 땋은 머리가 달린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단다. 주둥이에 넣어 준 버터기름은 다음 생에 태어나서 처음 먹을 음식이 되라는 것이고." 남자와 아이는 죽은 개를 산에 맡긴다. 내일은 어느 초원에서 잘까 중에서)

 

▲ 몽골 초원을 여행하면 누구나가 말을 타는 것이 일상이 된다. 멋쟁이학교 1학생인 새라가 말과 함께 초원을 누비는 풍경.


끝없는 초원을 달려온 바람이 휴식을 위해서 잠시 게르 앞에 머물다가는 지나간다. 몽골의 아름다운 초원아! 이번여름 우리가족들을 이곳에서 보내게 해주어 고맙다. 우리들이 여태껏 꿈꾸어 왔던 행복이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를 깨달고 비로소 초지를 행운으로 대한다.

요즘 몽골정부는 초원의 숲과 나무를 보존하기 위하여 그간 이어져온 이동식 가축방목을 규제한다고 한다. 대신 한곳에 정착하여 정주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정주공간을 정해 정착영농을 하려는 뜻일 게다. 그 실험을 위한 공간이 바로 이곳 바트 숨베르 자연농업농장이다. 이곳에서 배워간 몽골 젊은이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살 지역으로 들어가 자연농업으로 정착을 이루는 소임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광활한 대자연을 안방삼아 이동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이동식 목축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문화다. 산수 좋은 곳을 찾아 자신의 집을 짓거나 소유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초원과 물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무소유로 살아가는 것을 원한다. 냇물에서 빨래나 물건을 씻을라치면 당장에 부당함을 알리고 보살피는 모습에서 그들의 마음을 느꼈다.

드넓은 초원에서 말과 함께 산책을 즐기기 위하여 인근의 산허리들을 단숨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반대편에 있는 구릉으로 내려가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볼이 불그레한 쌍둥이 어린형제 둘이서 열심히 말을 돌보는 모습이 꽤나 인상 깊어 너지시 한국의 지폐가 있길래 기념으로 건네주었다.

풀밭 사이를 가로질러 농장으로 오는데 소 떼를 몰고 오는 사람, 양젖을 짜는 사람, 말을 타는 사람 등 활기찬 몽골의 초원생활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이 타다가 지친 말을 타고 산등성이를 말과 함께 힘껏 오르고 달리고를 반복하다가 또다시 지는 저녁노을을 감사히 맞는다. 허나 인근 게르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의 친척쯤 되는 젊은이를 통해 말 값을 흥정하고 어렵사리 합의를 본 것이 좀 비싼 값으로 말을 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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