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생태기행(3)] 초원의 바람을 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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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생태기행(3)] 초원의 바람을 가르다
  • 류기석
  • 승인 2009.10.0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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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 숨베르 농장에서 3박4일, 바람과 태양, 별과 달, 풀꽃들의 향기를 마시며, 전통 양고기요리 '허르헉'을 맛보다.

초원의 아침은 연두색 대지에 옅은 안개가 피어올라 하늘에 맞닿는 것으로 시작된다. 몽골 울란바타르를 비롯한 도시지역 몇 곳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인구 65%이상이 울타리로 둘러쳐진 집이 필요 없는 게르에서 자유로운 자연과 사람간의 소통을 이루며 언제나 열려있는 생활을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 끝없이 펼쳐진 바트 숨베르 농장의 아침

 



7월 중순 한여름이라지만 이른 아침과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여 장작난로를 피워야만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가로지르는 유목민들의 발길을 막기 위해서 엉성하지만 바트 숨베르 자연농업실험농장 주위에는 울타리를 둘러놓아 불편함을 감소시켰다. 그래도 어디에서 찾아왔는지 육중한 말들이 유유자적하며 농장 한가운데로 몰려와 풀을 뜯고 있고, 게르 옆 야생 풀밭에는 잘 자란 냉이들이 노오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려 보기 좋았다.

몽골의 땅은 수백수천 년 동안 이동식 목축을 해오던 땅으로 기름져 보였고, 이 땅에 무슨 농작물을 심든지 잘 가꾸기만 한다면 제법 훌륭한 농토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는 문명의 이기인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더욱이 차량들을 쉽게 볼 수 없어 천혜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자연의 향내만을 맡을 수 있으니 어찌 이보다 더 큰 행복을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일행보다 하루 일찍 도착한 경북대학교 남녀 해외봉사단 학생들은 한국에서 공수해온 쌀과 부식으로 규모 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젊음과 패기 그리고 선진국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순순한 몽골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가르치려하는 모습 속에 좋은 감정도 있었지만 그들만의 자본과 문화를 자랑하는 일방적인 하향식 교류는 욕심으로 비쳐져 실망이다. 사전에 좀더 치밀한 계획과 자료를 가지고 이들 몽골인 들이 생각하는 삶과 가치의 근간이 되는 유목생활의 문화적 장단점을 넘어 이들의 고민과 희망에 대한 이해와 협력자세가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

 

▲ 원주민 게르를 방문하여 마요주(전통발효음료)로 살가운 정을 나누었다.

 



이들은 매학기 연해주와 몽골 등 제3세계로 해외봉사를 떠나는데 자비로 얼마간의 항공료만을 부담하고 나머지 비용은 대학에서 지원하여 자원봉사를 떠난다고 한다. 울란바타르대학교에서의 단순노동이후 봉사라는 명목으로 이곳 시골의 한 초등학교를 오가며 우리와 다른 이들에게 힘겨운 장기들을 보여주는 이들의 아침나절 세면장풍경은 우리네 물 쓰듯 흥청망청 온갖 세제를 이용한 물난리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침나절 세면장에서 인연이 된 경북대 해외봉사단 인솔 교수와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자연 속에서 나누는 생태적인 삶과 즐거움에 대한 이해가 맞아 함께 공감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네팔여행시 가난해 보이는 어린아이에게 측은지심이 생겨 돈을 건넸는데 당당히 받질 않아 주었던 손이 미안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들에게는 돈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분은 몽골에서의 첫날, 울란바타르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을 관람하다가 나오면서 지갑을 통째로 소매치기 당하는 바람에 마음이 많이 상해있는 듯 보였다. 우리와 함께 몽골의 오지를 구석구석 체험하고 싶은 심정을 토로했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간단한 아침을 해먹고는 일행들을 뒤로하고 안내자 바타가 들꽃들이 많이 피어있는 곳을 한바퀴 산림감시원과 돌고 온다고 안내자 야트마와 함께 그의 차로 다녀오란다. 카메라를 챙겨들고는 경북대 인솔교수와 함께 초원 속으로 들어갔다. 비포장의 흙길은 예상외로 단단해 보였다. 사륜구동의 일제 자동차는 꼭 우리의 갤로퍼를 빼 닮았다. 초원위를 달려 언덕을 넘으니 연붉은 꽃들이 한가득 피어있고 주변으로는 이름모를 꽃들이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길 따라 이어진 야생의 꽃길은 2Km이상 지속되면서 사방을 온통 들꽃들로 물들여 놓았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 무리들을 뒤로하고 언덕 너머에 있는 마을초입에 들어서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 광활한 대지에 작은 공간만을 소유하는 이들처럼 우리들도 작은 게르를 얻어 생활했다.


끝없이 초원뿐인 대지를 지나 한 가정이 살고 있는 게르를 찾아 들어갔다. 길도 없는 그곳에서 산림지기의 소임을 하고는 나오려는데 잘 말린 치즈와 밀가루로 만든 과줄을 한 소쿠리 내왔다. 어렵게 살아가는 처지인데도 손님들을 위해 차려낸 몽골인 들의 손길은 우리의 농촌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이들의 자연에 대한 존경심은 대대로 초원생활을 하면서 신고 다니는 장화에서부터 이동식 천막 게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듯 했다. 몽골 장화의 비밀은 신발 바닥 맨 앞부분에 있다. 바닥 앞부분이 위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 있기 때문에 이걸 신으면 발을 뒤꿈치에서 발가락 쪽으로 부드럽게 구르면서 걸을 수밖에 없다. 손으로 만든 신발조차도 이런 식으로 자연에 대한 경의를 표하니 어찌 생태적인 삶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으랴.

이와는 반대로 각지고 납작한 우리네 신발들을 보라. 보이지 않거나 아주 작은 식물의 생명은 아예 살펴보지도 쳐다보려하지도 않으려는 무의식이 팽배한 삶이지만 이들 몽골인들은 아주 작은 미물까지도 소중히 생각하여 무조건 발로 밟아 깔아뭉개지 않는 본성을 신발이라는 단순한 도구로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초원 속 한가운데 외로이 서있는 게르를 돌아 나와 다시 비탈길을 넘어 골짜기 속으로 내 달렸다. 활짝 핀 들꽃들과 마주치는 기회가 많아지는가 싶더니 커다란 언덕배기를 오르고 차가 멈추어 수많은 산들을 품은 초원을 구경하기도 했다. 한쪽에는 염소나 양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들이 쌓여있는 우리네 성황당과 같은 어워가 있어 몽골 분들과 세 바퀴를 돌며 돌을 던지고는 사방으로 보이는 열려진 풍경에 마음을 놓았다.

늦은 오후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말 타는 것을 섭외했다. 어렵사리 근처에 사시는 분들의 말을 다섯 마리 빌려 타고는 초원으로 향하는데 얼마 안가서 아이들은 물론 어른까지 얕잡아 보고는 말은 주변만을 빙글빙글 돌면서 자기의 고집을 피웠다. 한 시간이 흘렀을까 말에게 갖은 애정표현을 다 쏟아 부어 달래어 간신히 산등성이로 올라가 드넓은 초원을 감상하고 마음을 비우는 시간으로 채웠다.

거친 야생의 초원에서 말을 타고 거침없이 초원으로 내달리는 내 주위에는 들꽃으로 가득하다. 연신 꽃들과 주변풍경을 사진에 담아 두고는 연두 빛 야생초들의 물결 너머로 이따금씩 보이는 한가한 가축들이 안겨있는 영원한 대지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야생들꽃들이 무더기로 피고 지는 노오란 초원은 평화로워 세상근심이 저절로 사라지는 듯하다. 이때다 싶어 온 가족이 말을 타고 하염없이 초원을 내리달리니 좋긴 좋더라. 수없이 피고 지는 들꽃들의 천국으로 날아가듯 말을 타고 내리달리면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무겁고 추한 욕심의 덩어리들이 하나하나 실오라기 풀리듯 풀려나가니 그동안 맺혔던 가슴 한 구석이 뻥하니 뚫리는 듯하다.

밤이 깊어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할 때 쯤, 안내인 바타가 옆집으로 마실을 가자고 찾아왔다. 주변은 온통 깜깜한 어두움으로 둘러 한치 앞을 분간키 어려울 지경이다. 그때가 새벽1~2시쯤은 족히 되었을 성 싶었다. 아담한 통나무로 지은 옆집에는 아주머니 한분이 심술 굳게 침대에 누워 곤한 잠을 자고 있었고, 인자한 얼굴을 지닌 아저씨는 우리와 마주 대하고는 농장문제에 따른 심정들을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웃음을 머금은 밝은 얼굴로 말 우유로 발효시켜 만든 마요주를 연신 따라주어 처음에는 비위가 상할까봐 못 마셨는데 여러 번 반복하여 마시다보니 입맛이 들어 속이 편하다. 밀가루로 만든 과줄과 통통한 천연치즈도 한 소쿠리 꺼내오는 넉넉한 손길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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