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동이 트기 전인 새벽5시쯤 울랑가라는 한적한 마을 승차장에 도착하니, 그레이하운드 기사가 가방을 확인한 후 천천히 내려주었다.
복잡하고 바쁜 시드니에 비하면 한결 조용하고 여유롭고 한가로워 보이는 승차장에는 새벽의 찬 공기가 엄습했다. 버스시간에 맞추어 마중 나오기로 했던 울랑가 숲 속 농장 주인장 미치가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간이 매표소 및 상점들의 출입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고, 주위에는 온통 어스레한 적막감이 흘렀다. 약속이 잘못 되지는 않았을까하는 걱정과 우려 속에 30분을 더 기다려 보다가 확인 전화를 위해 공중전화기를 찾았다. 그때였다. 터프한 미치가 낡은 승용차를 끌고 나타나 좀 늦어 미안하다며 딸아이와 나에게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맞았다.
좁은 포장길을 지나 비포장의 어두운 오지 산길을 내달렸다. 홍수로 비포장이 끊긴 곳을 피해간다며 임도 여기저기를 살피고 갑자기 나타날지도 모르는 짐승의 출현에 바짝 긴장도하며 안개에 쌓인 숲길을 1시간이상 달렸다.
곳곳의 산골마을들은 통나무 주택에 그림 같은 목장을 가지고 있었다. 마을에서도 한참을 더 가서야 도착한 곳은 그야말로 오지속의 판자로 이루어진 촌집이었다. 헌데 언덕위에 자리한 전체적인 풍광은 아름다웠다.
엉성해 보이는 목장아래에는 퍼머컬처(영속적인농업문화)로 만들어진 정원식 텃밭이 자리했고, 통나무집은 전기는 물론 문명의 혜택이라곤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듯 보였다.
작고 초라한 카라반에 안내되어 짐을 풀고는 난생 처음으로 이국땅에서 경험하는 우프장소를 산책하며 흐트러졌던 마음을 다잡으며 아침을 맞았다. 수만평의 야생정원에서 딸아이와 단 둘이 노동하고 생활해야 될 현장에는 비좁고 음침한 카라반이 숙소로 준비되었다.
이동식 야외 컨테이너집인 카라반을 정리하고 이부자리를 말리는데, 작은 코펠접시에 우유와 몇 개의 씨리 얼이 담긴 생소한 아침식사가 우유와 함께 나왔다. 아침이 되자 주변은 온통 오염되지 않은 맑고 푸른 하늘의 경이로움이 가득했다.
마음이 안정되어 갈쯤에 놀라운 일이 생겼다. 머나먼 호주, 깊고 깊은 산골 오지에서 한국의 젊은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틀 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카라반이 넓고 좋다며 애써 자리를 옮겨 주었던 친절함이 우프여행 끝까지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곳에 사는 미치와 알래나는 도시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자유분방하게 살아 온 보헤미안 같았다. 그들이 몇 년 전에 도시의 삶을 접고 한적한 오지의 아름다움을 찾아, 이곳에 땅을 구입하고 유기농장을 꾸며, 할머니와 미치 부부, 어린남매가 남들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행복한 보금자리를 꾸며가고 있었다.
이들의 농장에는 사람뿐만이 아닌 개와 닭들도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것처럼 보여 놀랐다. 이 집의 특징은 소박한 식사와 소식, 단순한 주거공간으로서의 판자집과 원시적인 화장실의 풍경을 최고로 꼽을 수 있다.
커다란 나무 밑에는 우리의 옛 뒷간형태의 화장실 있는데, 용변은 전량 거름으로 처리한다. 화장실에서 바라다보는 전체적인 풍광은 동물과 식물 그리고 무수한 자연이 공생 공존하는 오만가지의 느낌으로 귀하고 값지게 기억될 것이다.
오전10시, 도시에서 홀로 귀농하여 미치의 이웃으로 살고 있는 맥가이버가 작업반장이 되어, 커다란 농장아래에 있는 목장 시설물들을 손보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엉성한 펜스의 철사들을 제거하고, 가시달린 엉겅퀴 모양의 풀들을 뽑으면서 장렬한 태양빛을 마음껏 받았다. 이제껏 복잡하고 빠른 것에 익숙했던 내가 단순하고 느린 것에 길들여지기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됐다.
정말이지 시간이 멈춰지기라도 한 듯 주변의 숲들은 조용하고 한가로워 보였다. 하루를 살아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 속에서 작은 느낌을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농장 근처의 서쪽 옆으로는 작은 내가 흘러, 비옥하고 습윤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 침엽수림의 나무들이 발달하여 20m 이상의 높이로 장엄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농업은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밭과 논농사의 개념이 아닌 영속적인 농업의 문화를 위한 정원과 농장을 꾸미는 것이다. 오전의 일들을 대충마무리 짓고는 점심으로 안주인 알래나가 직접 만들어 준 햄버거가 어찌나 맛있든지 감동했다.
오후일은 갑작스럽게 내리는 구슬비로 중단됐다. 우리들은 각자의 부실한 카라반을 손보고는 주변의 산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크고 작은 나무와 노쇠하여 삭아 고목이 되어 이끼들로 덥혀있는 숲을 비를 맞으며 춤추듯 걸었다.
그날 저녁 불빛 하나 없는 온전한 밤을 맞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하늘은 맑고 밝아 눈이 부셨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속에 어느덧 새벽을 맞았다. 일찍 일어나 좀더 멀리 있는 숲으로 산책을 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울창한 숲과 바위 그리고 계곡과 마주한다.
눈앞에는 온통 자연의 섭리로 가득하다. 천천히 되도록이면 숲 속을 오래 거닐려고 명상하듯 발길을 옮겼다. 수만년이 흘러 온 숲으로 난 오래된 길은 나무들이 하늘을 덮고, 열대림의 나무들과 짙은 녹색의 양치식물이 커다란 잎사귀를 뽐내며 풍성하게 자리했다.
숲은 청정한 산소의 공급과 음이온의 방출, 충분한 수분으로 긴장되고 답답함에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하는 치유의 공간이다. 어디선가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수많은 숲을 흔들어 깨우며, 순간 나에게 부족한 감수성을 일깨워 주었다.
숲은 생명의 고귀함과 자연법칙의 엄정함을 깨닫게 해주고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교실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쿠카불라의 새소리와 자연이 내는 소리들에 잔뜩 긴장하면서, 부질없는 것들은 절대로 만들지 않는 자연의 존귀한 생명력을 느낀다.
숲의 공기는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우리 숲의 달콤한 공기보다는 그 맛이 덜했다. 아침 안개에 젖은 길을 걷고 작은 철책들을 넘어, 저 멀리의 목가적인 농가들을 바라보았다. 얼마쯤 왔을까. 어디선가 닭울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전후좌우를 알 수가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빠른 걸음으로 목장들을 가로질러 냇가를 건너 2시간 후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10시, 사람들과 동물들이 활기차게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알래나와 함께 울랑가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에 참석하러 갔고 우리는 화장실을 만드는 작업에 골몰했다. 보드라운 흙을 삽과 괭이로 땀 흘려 팠다.
오랜만에 땅을 파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들었다. 도시의 아스팔트나 아파트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고운 흙과 씨름하면서 재래식으로 물을 데워 커다란 들통에서 목욕하는 호사스러운 행복을 느껴볼 수 있었던 하루였다.
열대 원시림에서 쿠카불라 새들의 소리에 잠을 깬다. 오늘은 옆집으로 미치와 아이들이 함께 마실 가는 날이다. 잉글랜드인 점빙 덕은 한국 전통건축의 처마 모양 텐트를 만들어 사업을 한다고 했다.
숲 속 외딴 곳에 통나무집을 짓고 혼자 조용하게 살고 있는 그는 한국의 불교문화와 건축문화, 특히 처마에 관심이 많았고, 세계를 여행하다가 한국의 대구도 방문했다며 자랑했다.
골함석으로 엮어 만든 맞배지붕과 갈대로 덧입힌 천장 등이 잘 조화된 멋진 통나무집 앞에는 작은 냇가가 흐르고 있어 운치가 그만이었다. 오후에는 목수 일을 하면서 다음우프농가를 알아보았다.
그날 오후 늦게 브리즈번 외곽의 한 농가와 연결이 되었다. 이곳 울랑가에서 될 수 있으면 오랫동안 머무르겠노라고 말한 것이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