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가족기행(2)] 조선수군의 넋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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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가족기행(2)] 조선수군의 넋이 보인다!
  • 류기석
  • 승인 2009.10.0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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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삼도 수군을 290년간 통제"했던 통제영지를 찾아서

통영시는 본래 용남과 거제에 속했던 군이 대정 3년(1914년) 갑인 3월에 통영군으로 시작하여 현재 통영시에 이르렀다. 통영은 본래 거제현의 두룡포다. 이를 통제사 이경준이 계묘년(1603년)에 영의 터를 정하고 먼저 세병관과 백화당, 정해당을 세워 창설할 영사에 예비하고, 이듬해인 갑진(1604년)에 통제영을 두룡포에 이설하니 이곳이 통영이라는 지명이 시작되었다.

▲ 통영 향토역사관 건너편에 자리한 통제영지의 전경, 통제영이 기능할 때에는 세병관, 운주당, 백화당, 중영, 병고, 교방청, 산성청, 12공방, 장원홍예문과 같은 100여 채의 관청과 영문이 늘어서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세병관만 남아 있었다.
 
이곳은 평야가 적고 항만과 도서가 많은 곳이다. 벽방산의 여맥아래 꾸불꾸불한 형세로 수 십리에 걸쳐 이루어진 벌의 허리모양을 한 반도로 이루어 졌다. 군치의 주산은 동남을 향해 서쪽을 않고 돌아 솟은 여황산이고 한 가지가 원문 성지로부터 뻗어 높이 솟아오르며 동쪽으로 승방산에 이르고 경내량을 뚫어 번져갔다.

안 맥은 바다를 건너서 거제에 들어 시래산이 되고 멀리 휘날리면서 기복을 거듭, 동쪽으로 수 십리 허를 달려 계룡산이 되니 곧 옛날 부의 주산이다. 온화한 기후가 겨울까지 걸쳐져 적설을 보기 어려우며, 한서가 함께 흑심하지 않는 곳이다.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의 통영은 맑고 밝았다. 잠시 통영의 포구를 돌아 인근에 산재한 향토역사관과 통제영지, 문화원 등을 찾아 아이들과 차례로 돌아보기로 했다.

빈약한 안내판을 찾아 간신히 향토역사관을 찾았으나 입구가 차들로 가로막혀 불편함이 많았다. 주변은 통제영지 보수를 위한 공사로 바빠 보였고, 향토역사관으로 들어서니 사진을 찍지 말란다.

아이들과 함께 눈으로만 열심히 진열된 몇몇의 석기들과 토기 그리고 대부분이 조선시대 이후의 생활도구와 통제영지와 관련된 자료들을 살펴보고 곧장 건너편에 마련된 세병관에 도착했다. 이곳은 어른 100원, 아이들 50원의 입장료를 내야한다. 예전에는 통제영 객사(客舍)로 쓰였다던 세병관을 향해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통제영지는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이 있었던 자리로 산도수군 통제영은 1604년 설치되어 1895년까지 경상, 전라, 충청의 3도 수군을 지휘하던 본부였다.

임진왜란시 제1대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설치했던 본부가 최초의 통제영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떠난 정유재란 이후 여러 곳으로 옮겨지다가 지금의 통영시 두룡포에 자리를 정했다. 제6대(1604년) 이경준이 부임한 뒤 제280대 홍남주까지 무려 290년 간 왜적을 대비하는 조선수군의 총본부로서 지금의 해군사령부와 같은 곳이란다.

▲ 통제영지에서 세병관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서

세병관에 들어서니 그 옛날 찬란했던 100여 채의 관청과 영문은 보이지 않고 세병관만이 우둑서 있는 모습에 아쉬움과 놀라움이 동시에 남는다.

▲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인 세병관의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세병관 입구에 들어서니 커다란 현판 자체만 보아도 우리나라 수군들의 기상을 능히 짐작할 수 있는데, 세병관(洗兵館) 규모의 장대함과 장대석 기단들과 50개의 민흘림이 주는 기상은 실로 대단했다.

▲ 세병관은 장대석 기단과 50개의 민흘림 기둥이 그간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 했다.
 
세병관은 벽체나 창호가 없이 통 칸으로 이루어진 세병관은 질박하면서도 웅대한 위용이 잘 나타나 있는 듯 했다. 건물의 전체는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으로 단장하였으며, 안쪽의 중앙 3칸만은 한 단을 올려 전패단(殿牌壇)을 만들고 상부를 소란반자로 꾸민 후 3면에 복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린 했다는 것이 특이 했다.
▲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한 세병관의 내부 모습에서 통제영의 위계를 알수 있는 듯 하다.

세병이란 본래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 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며, 세병관(洗兵館)이라 크게 써 걸어 놓은 현판은 제136대 통제사인 서유대가 쓴 글씨라고 한다. 제6대(1605년) 통제사 이경준으로부터 시작된 세병관은 제35대(1646년) 통제사 김웅해가 규모를 키웠고, 제193대(1872년) 통제사 채동건이 다시 고쳐 지은 것이라 한다.

▲ 세병관을 나오며 바라본 통영의 풍경이 마음을 다잡게 해준다.

이윽고 통영문화원에 들리니 친절한 여직원이 향토사 자료들을 찾는 필자에게 많은 자료들을 건네 주었다. 이 자료들을 차에 싫고는 붉은 해가 낙조를 드리울 쯤, 다음 목적지인 거제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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