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매혹적인 모습과 소리에 귀 기울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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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매혹적인 모습과 소리에 귀 기울려 보세요.
  • 류기석
  • 승인 2009.10.0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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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조화 생태건축과 정원에 대한 단상

미국 캘리포니아 주 네바다 시 <아난다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연주의자, 자연교육자인 조셉 B. 코넬 씨가 미국 남서부 지역에 사는 한 선생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이들에게 자신을 그려 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의 몸을 그리느라 종이 한 장을 가득 채웁니다. 하지만 나바호 인디언 아이들은 아주 다르게 그립니다. 자기들 몸은 휠씬 작게 그리고 그 옆에 산, 계곡, 물이 말라 버린 황량한 개울 등을 그려 넣습니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마치 팔다리가 몸의 일부인 것처럼 자신이 주변 환경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집 대문앞 '참 아름다운 나"로 이루어진 문패

인간이 자연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무엇인가를 배운 지식과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지혜와는 분명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서구의 인문학적 지식이나 인본주의, 인간중심적인 자본주의는 편리성과 효율성을 내세워 경제만을 위해 나아가는 진(進)의 문화로 우리들 속에 내재된 자연으로 되돌아가고자하는 귀(歸)의 문화를 철저하게 배제 시켰다. 사람이면 반드시 알고 실천해야하는 도리를 외면하는 콘크리트 도시문화가 현재의 첨단문명인 것이다.

   
▲ 풍요로운 들꽃과 수목들의 조화로 가득채워진 정원을 만나 보세요.

현재 심각해져가고 있는 도시환경의 오염과 식품의 안전성 문제, 반환경적인 도시기반 시설들과 그를 둘러싼 주거환경의 폐쇄성, 정신적 불안과 스트레스 증가는 심각한 사회문제시 되고 있다. 이는 자연과 함께했던 주거(住居)환경과 의식(衣食)환경을 떠나, 매일 우리들의 건강한 생활, 여유 있는 생활, 편리한 생활을 담보로 홍수같이 쏟아져 나온 갖가지 인공과 가공의 인스텐트 화학물질들로 심각한 위험에 직면해 있음이다.

지금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맛보기 보다는 불확실한 미래(나와 자식 그리고 손자들에게 물려줄 부와 명예)를 위한 저축과 투자로 온 나라가 병들어 있다. 당장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 마음의 정과 물질을 나누어 주어야 하지만 저마다의 이해관계로 인한 불신과 반목은 오히려 가족과 마을공동체를 붕괴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도시화 산업화의 패러다임을 되돌아보고 짧은 기간 동안에 사회적 희망을 보여주는 듯 했던 콘크리트로 일관된 아파트문화가 예전보다 낳은 경제적인 부는 주었으나 그 보급이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오히려 많은 긴장과 불안의 요소가 자리 잡게 되었다.

   
▲ 생태적인 숲으로 변한 5월의 정원풍경

특히 우리나라의 주택시장은 짧은 기간동안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가장 빠른 변화를 겪어온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례이며, 20세기 산업혁명이 전 세계를 도시문명으로 바꾸어 놓았던 보편적 변화와는 매우 다르게 개화와 외세 등의 침략전쟁으로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냉혹하고 처절한 산업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런 문명은 개인간 화려하게 꾸며진 외형이나 비만의 척도는 알 수 있어도 그속에 감추어져 있는 도덕과 양심은 알 수 없음이 한계이다. 사전에 자연의 순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검증 없이 오로지 경제우선주의가 만들어 놓은 결과이며,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자연(自然)스런 의식과 보이지 않는 물질의 흐름, 생태환경 등이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유기적 관계성을 갖고 있는가는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생태건축이란 인간의 유기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담아내는 1차적 기능의 주거공간과 몸의 오장육부와 피부를 안전하게 유지시켜주는 2차적 기능의 실내환경,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이 맑아 좋은 느낌으로 심신의 안정을 도모해주는 정원을 3차적인 기능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 수줍어하는 아홉식구 금낭화

여기서 자연과 함께하는 생태건축과 실내환경, 생태정원을 통하여 누구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제공하여 우리가 잃었던 생태순환적인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그동안 잃었던 역사와 전통문화 속에서 정체성을 회복하고 다가오는 미래로 하여금 새롭게 문화를 창조해 나가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자연과 공생 공존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건강한 재료를 사용하는 집은 친환경성을 유지하여야 하며, 특히 자연이 순환하는 생태성과 여럿이 함께하는 공동체(코뮤니티)성 그리고 건강한 철학이 담긴 영성이 내재되어 있어야 비로소 집다운 집이고 정원다운 정원이 되는 것이다.

생태적인 삶을 위해서는 문명을 바라다보는 분명한 철학과 결단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미물과 생물이 역동하는 대자연 속에서 생태계의 순환원리로 건강한 음식을 재배하여 먹고, 피부에 부담이 없는 천연소재의 옷을 입으며, 자연과 함께하는 주거환경을 지향해야 한다.

그런 의미로 지금 우리들 주변에서 흔하게 계획하고 실시하고 있는 엄청난 비용의 주택단지의 설계와 조경, 실생활에서 제대로 이용되지 못하는 외래식물들로 획일적이고 일률적으로 만들어 놓은 공원은 반드시 제고 되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주거환경을 위해서는 개인의 직관과 평온한 마음이 있어야만 모든 생명체에 깃들어 있는 순환의 원리를 깨닫고 찾을 수가 있다. 또한 생명 있는 모든 동식물을 대하는 태도에는 자신의 사고력과 창의성이 담겨 있어야한다. 삭막한 도시에서의 소박한 정원은 지치고 힘든 도시인들의 원활한 인관관계를 형성시켜주고, 몸과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시켜준다. 또한 주변의 버려지고 쓸모없는 곳에 개인이나 마을공동의 정원을 만들고 가꾼다면 병의 예방은 물론 치료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도시에서 땅 한평으로 가꾸어보는 텃밭정원은 아름답다.

요즘 우리들의 말과 글에는 행동이 사라졌다. 생활정치, 생활종교, 생활건축, 생활문화, 생활원예 등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카페나 식물원, 수목원을 가려고 열광하지 진작 우리가 몸답고 있는 집과 정원 그리고 마을은 가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집다운 집을 짓고 그 안에 생태적인 텃밭이나 식물원정원을 가꾸는 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미적 감각과 심성을 키우는 작업이다.

그동안 필자는 오지의 농촌마을을 찾아 우리의 고유한 역사와 전통문화를 익히고 때로는 자연 속에서 살면서 식물에게서 생태성을 동물에게서 공동체성을 생명있는 모든 것들에게서 영성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생태계에 바람직한 주거환경으로 자원의 재활용과 자연의 재순환을 고려한 집을 짓고, 그중에서도 햇빛과 바람, 빗물과 하수, 식물과 나무, 흙과 돌 등을 이용한 영속적인 문화(퍼머컬처)로 생태적인 정원 가꾸기를 실천했다.

개인과 마을의 마당은 정원이란 개념과 같고, 마당은 비움을 전제로 한다면 정원은 공간의 채움을 의미한다. 자연생태계를 보통으로 대하는 것이아닌 좀 특별하게 대하다보니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된 자연에 대한 감성과 감정의 본능이 하나 둘씩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될 수 있다면 집의 공간은 욕심으로 채우려 하지말고 여백으로 만들고, 정원은 과도한 에너지의 낭비와 유지비를 들이지 않는 사계절형 제자리(토종)식물들로 가득한 텃밭을 만들어 풍요로운 먹거리의 생산과 조화로 가득 찬 넓은 세계를 만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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