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삶을 절박하게 모색해야 한다
연말에 신세진 이와 저녁을 했다. 계속되는 혹한에도 흔쾌히 찾아와 고마왔는데, 그는 내복을 입었다. 마주 앉은 식당은 훈훈했지만 금방 뜨거워졌다. 난방용 필름이 바닥을 얼른 데웠던 거다. 내복을 입은 그이는 몇 겹의 옷을 부담스러워했다.

사실 도시의 겨울은 그리 춥지 않다. 북극의 냉기류가 아무리 차도 실내 공간은 대체로 따뜻한 까닭이다. 잠시 노출된 한기는 실내에서 이내 사라진다. 소비하는 에너지가 그만큼 많을 뿐 아니라 소비 방식이 편리하기 때문일 게다. 요즘 많은 실내는 전기로 난방을 한다. 바깥 날씨와 관계없이 여름철 실내가 추운 것처럼 겨울이 따뜻한데, 이래도 괜찮은 걸까.
옛날 이야기하면 젊은이들은 하품하겠지만, 며칠 전 27년 만의 강추위였다는 뉴스가 나왔다. 맞다. 한 세대 전 겨울은 요즘 이상 추웠다. 삼일 추우면 나흘 풀렸지만 아침이면 유리창에 성에가 피었고 햇살 받는 처마마다 고드름을 길게 늘어뜨렸다. 그렇다고 방구석에 틀어박힌 아이는 거의 없었다. 두툼한 이불로 밥주발 덮은 아랫목 외에 따끈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세상은 밖에 있었다. 그래서 “간장독과 아이들은 밖에 내놓아도 얼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을까.
겨울 집안이 따뜻하고 여름철 건물 안이 추운 요즘, 컴퓨터 앞에 코 박는 아이들은 사시사철 감기를 달고 산다. 언제까지 이런 불합리가 양해될 수 있을까. 에너지는 변환할 때마다 효율이 떨어지는데 전기 과소비라니. 화석연료를 태워 얻는 전기로 난방을 하는 무모함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전기가 석유보다 저렴한 모순은 어디에 원인이 있을까. 값싼 핵일까.
무모한 전기난방
정부나 언론은 거의 전기나 에너지 앞에 ‘원자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1960년대는 ‘핵’이라 했다. 원자의 반응이 아니라 원자의 핵이 분열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내놓기 때문이다. 그 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우리는 거저나 다름없는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교과서나 언론은 전했다.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은 일방적 홍보였지만, 실제 상황은 반대로 드러났다. 집중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로 바람이나 태양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서 얻는 전기가 오히려 저렴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핵발전 관련 시설을 세우고 폐기하는 과정, 핵연료를 채굴과 정제하야 분열시킨 뒤 폐기하는 모든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투명하게 계산해 재생 가능한 에너지와 비교하자 나온 결론이 그랬다.
핵발전소는 전기 소비가 뚝 떨어지는 밤에도 가동해야 한다. 핵발전소를 보유하는 국가들은 대개 ‘기저부하’ 다시 말해 “일정 기간 동안 가장 낮게 소비하는 전력의 양”을 충당하도록 발전 용량을 설정한다. 석유나 가스 화력발전소처럼 자주 끄고 켜면 고장이 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으로, 핵발전소가 기저부하 이상으로 많으면 밤에 전기가 남아돌 수 있다. 미국 핵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사들이 수시로 드나든 전두환 정권 때 우리나라는 핵발전소를 집중 세웠고, 당시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못했다. 그 결과 밤에 전기가 남자 전력당국은 심야전기 사용을 부채질했다. 전기난방이 등장했다.
국가의 전력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기저부하의 양이 늘어나자 남는 심야전력이 줄었지만 전기난방 보급은 줄지 않았다. 편의 탓이다. 누진세가 적용되는 가정은 요금이 무서워 자제하지만 누진세 대상에서 제외된 상가나 건물, 특히 생산단가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제공되는 산업현장은 난방 용도로 전기를 마음껏 사용하게 방조되었다. 그러자 손님을 끌어들이려고 여름 냉기와 겨울철 온기를 거리로 쏟아내는 가게가 거리를 점령하는 일이 발생했다. 기업은 에너지 효율화와 절약에 기술투자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어 그 방면에 국제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여름과 겨울에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자 전력당국은 핵발전소를 비롯한 발전소 증설을 계획하고 산업계 전기요금부터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이웃 국가들에 비해 저렴한 가격을 현실화하겠다고 주장하지만 기업들은 국제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전력당국이나 산업계나, 요금 조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합리성은 찾기 어렵다. 기업에서 가정까지, 전기 사용의 효율화를 먼저 연구 논의하여 실행하거나 절약 방법을 공동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공급자는 손실을 만회하려 들고, 소비자는 비용 증가만 막으려 한다.
합리적 전기 소비
핵발전으로 전기의 4분의3을 충당하는 프랑스는 요즘 전력 사정이 원활치 않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자국 17기 핵발전소의 절반 이상을 즉각 끄고 오는 2022년까지 모도 폐쇄하기로 결정한 독일에서 전기를 수입해야 한다. 유럽의 대표적 산업국가인 독일이 핵발전소 가동을 즉각 절반 이상 중단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에서 전기를 수입할 거로 추측했지만 오히려 반대 현상이 발생한 건데, 양국 시민들의 전기 소비 자세의 차이에 그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는 전기로 난방과 취사를 해결하는데, 핵발전소가 노후화되면서 공급이 불안하게 된 것이다.
독일인은 겨울철 따뜻한 집안에서 얇은 셔츠만으로 활동하는 한국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집에서 스웨터를 입거나 심지어 외투 자연스레 걸친다. 손님이 있어도 가게의 조명을 어둡게 하는 독일인은 가정 또는 지역 단위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의 발굴과 사용에 적극적이다. 개인이 생산한 전기가 전력회사 전기보다 단가가 높지만 정부에서 차액을 충분히 지원해준다. 다른 지역에서 가져오는 전기는 요금이 비싸므로 지역에 발전소를 세우는 걸 반대하지 않지만 건설 계획 단계에서 소비자와 철저히 논의한다. 민주적 합의로 적정량의 전기를 생산할 뿐 아니라 발생하는 대기오염 요인을 철저하게 공개하며 소비자와 대책을 세운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불신과 갈등은 없다.
소비자를 소외시키며 발전소 증설을 결정하는 우리나라는 소득이 증가하면 전기 소비도 늘어나는 것으로 판단하지만 에너지 효율화와 절약이 몸에 밴 국가는 다르다. 일인당 전기 소비량은 우리가 독일보다 많다. 소득 수준을 고려해 비교해보자. 소득이 늘어도 전기 소비량은 늘어나지 않은 독일은 물론, 프랑스보다 우리가 두 배 이상 전기를 소비한다. 발전소가 있는 지역의 전기요금은 전기를 받아쓰는 지역보다 저렴해야 당연하지만 우리는 똑같다. 비정상이다. 그 결과 소비량에 비해 발전량이 터무니없이 작은 서울과 경기도는 전기를 아끼지 않는다. 대신, 발전소 밀집 지역은 대기 환경이 악화되고 온배수 때문에 해양 생태계가 교란된다. 인천이 그렇다.
핵발전소 자체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지만 연료를 채굴, 정제, 운송, 저장, 폐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화력발전소 못지않다. 무엇보다 큰 결함은 과학기술로 안전하게 관리할 수 없는 핵폐기물을 수 십 만 년 이상 내놓는다는 점이다. 차단하지 못하면 인체는 물론 환경에 치명적인 위해를 준다. 진정 후손을 생각한다면 30년 전기를 쓰고 자자손손 핵폐기물을 넘겨야하는 핵발전소는 폐쇄해야 옳다.
절박한 대책
농업용 석유와 전기도 저렴하다. 덕분에 계절과 지역에 관계없이 다양한 세계 곳곳의 농작물을 재배 또는 수입해서 먹을 수 있지만 전기와 석유 가격이 급등하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핵연료의 가격도 초기보다 100배 이상 상승했고 더 오를 것이다.
안전 요구가 거세지는 만큼 핵발전소 관련 비용은 증가할 텐데, 전기로 난방의 4분의1을 해결하려는 무모함은 중단해야 한다. 효율화와 절약을 전제로 소비자가 충분히 포함된 상태에서 민주적으로 논의하여 전력요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발전소가 있는 지역과 아닌 지역의 가격은 당연히 달라야 하고, 가정보다 기업과 상업 시설의 가격을 조절하면서 누진율 적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에너지 효율화와 절약이 몸에 밴다.
북극해 얼음을 녹이는 지구온난화가 겨울철 냉기를 아래 위도로 내려 보내면서 혹한이 계속된다. 지구온난화는 대나무와 감의 북방 한계선을 밀어 올렸지만 열대과일까지 허락하지 않는다. 한계가 드러난 국제 석유의 가격은 치솟을 게 분명하다. 앞으로 식량 수입도 벅찰 수밖에 없다. 이럴수록 내 땅 맞는 농작물로 자급할 수 있어야 안심할 수 있는데,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증설, 그리고 식량 수입원 확대로 해결하려는 우리는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좁은 땅덩이에 밀집된 많은 인구가 제철 제고장 음식으로 자급할 수 없다. 추울수록 덥게, 더울수록 춥게 살아가는 호강은 그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 아직은 식량이나 에너지를 수입할 수밖에 없지만 그 부담을 한시바삐 줄여야 한다. 늦기 전에 낭비적 삶을 돌이켜야 한다. 대안적 삶을 절박하게 모색해야 한다. 싫든 좋든, 여름엔 덥게 겨울엔 춥게 지내야 한다. 남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푸른두레생협, 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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