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를 농업에 적용한다면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의 가격은 높아야 옳다. 쌀을 포함해도 국내 생산되는 농작물이 소비량의 4분의1에 지나지 않은 현실이므로. 한데 농민의 평균 소득은 갈수록 도시인과 격차가 벌어진다. 모자라는 농작물을 해외에서 싼 가격으로 대량 수입하기 때문이라는 거, 물론 모르는 이 없다. 소비보다 절대량이 부족한 현실에서 농민의 소득을 위해 수입을 자제할 수 없겠지만, 희생적으로 수고한 농민의 소득을 노동의 대가 이상 보장하면서 수입할 수 없는 것일까. 아무리 농산물 수입업자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부라 해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닐 텐데, 농민은 여전히 소외되기만 한다. 치유와 지혜의 상징이라는 2013년 뱀의 해를 맞아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더욱 참담해지는 농촌에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최근 농업 관련 정부 투자기관의 장이 한 지방신문의 지면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 농촌에 날렸다. 30년 역사 밖에 안 되는 우리 반도체와 조선도 세계 1등인데 5천년 역사를 가진 농업이 세계 1등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큰소리를 친 그는 기대에 찬 청사진을 숨 가쁘게 펼쳐 놓았다. 농업이 정보와 생명공학과 나노기술이 융복합된 산업이라고 성격을 새롭게 규정하면서, 농업이 희망 있는 산업으로 변모하는 선진국을 직시하며 패배주의에서 빠져나와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게 하자며 칼럼을 마무리했다. 세계 1등 농업을 위해 인식 전환을 농민에게 요구했는데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농민은 우리 농촌에 시방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다. 그가 염두에 둔 농촌은 어디이고 농민은 누구일까.
글로벌 농업 경쟁력 시대에 걸맞게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선택될 수 있는 농산물을 수출하자는 그는 우리나라의 녹색혁명을 해외가 인정하는 성공 사례로 들었다. 그런가? 금시초문인데, 이상스럽게 식량자급을 통해 얻은 과실이 건설과 조선과 중화학과 같은 2차와 3차 산업 발전의 터전이 되었다고 그는 분석했다. 우리나라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그는 우리나라가 지금 식량을 자급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통계를 읽지 못하는 바보거나 거짓말쟁이라는 겐가. 그가 농업관련 정부 투자기관의 장이라는 게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런 어처구니없는 인식은 기능성 식품과 의학 소재들을 농촌에서 생산하면 큰돈을 벌 것으로 주장하는 데로 이어진다. 누가? 농민 등치는 자본이 아니라, 현재 우리 농촌의 농민이?
딱하게도 그는 농업의 소명을 근본에서 망각한다. 식량 자급도 못하는 주제에 고부가가치 농작물의 수출을 이야기하는 공직자는 우리 농촌과 소비자의 운명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건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겨우 버티는 이 땅의 농민들이 그가 요구한 대로 인식을 전환할 수 있겠는가. 그의 요구를 조금이라도 수용하려면 농촌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 복잡하고 값비싼 기계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용만이 아니다. 현재 대부분의 농민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도의 전문성도 추가로 요구될 것이다. 그리 정교하게 생산한 농작물은 당연히 수출용일 테고, 돈벌이를 최우선 목적으로 할 텐데, 무슨 근거로 그런 농작물이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우리보다 석유 가격이 저렴하고 경작할 땅도 넓으며 인력과 자본력이 우수한 국가를 이길 수 있다는 겐가.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선동은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 무모하기보다 무책임하다.

우리는 기능성 식품이나 의학 소재를 먹고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니 앞으로도 생명체인 우리는 밥을 먹어야 산다. 물론 반찬도 먹는다. 그를 위해 우리 땅에서 생산하는 농작물은 밥과 반찬에 우선되어야 한다. 기능성이나 의학 소재는 자급 이후에 자본이 고려할 사항일 뿐이어야 한다. 그는 더욱 중요한 점을 망각했다.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은 소비량의 4분의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먹는 식량의 4분의3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데, 세계 식량위기가 다가온다는데, 그 물량을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수입할 수 있는가. 우리 농촌의 요즘 인력은 대부분 노인이다. 귀농인구가 없지 않지만 농촌은 절대 인구가 부족하다. 그뿐인가. 경작지는 온갖 개발로 줄어들기만 한다. 일부 유기농업을 제외하고 농민들은 농기계와 화학비료와 농약 지원 없이 경작을 못하는데, 2005년 이후 세계 석유 생산량은 생산량이 소비량을 밑 돌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농업용 석유의 가격도 이미 치솟았고,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렇듯 자급은커녕 버티기도 힘겨운 우리 농촌이건만 누구 좋으라고, 또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신성장동력 운운하는가.
내 땅에서 유기농업으로 생산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먹는 농작물은 차라리 석유다. 양을 늘리려 했든 질을 높이려 했든, 농작물에서 얻는 칼로리보다 최소한 10배 이상의 칼로리에 해당하는 석유를 퍼붓지 않으면 녹색혁명이 유도한 농작물일수록 기대하는 소출은 내놓지 않는다. 수입하는 농작물은 석유 의존도 훨씬 심하다. 그러므로 석유 가격이 오르면 농작물의 경작 비용은 그만큼 추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자 농사용 빌딩에 LED 조명을 비추며 365일 24시간 수경재배하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다.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농작물의 균형 잡힌 영양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주장은 예서 따지지 않더라도, 그런 농업은 더욱 많은 에너지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감당할 수 있겠나. 그 농작물이 가격 경쟁력을 가지려면 들어가는 에너지 비용을 정부에서 듬뿍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은 부가가치나 세계 1등과 같은 근거 없는 신기루로 농민들 현혹시킬 때가 아니다. 세계 농작물의 가격이 치솟은 작년, 4대강 사업으로 우리 4대 강가의 경작지가 망가졌을 때, 농업용수가 오염된 우리와 다른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농작물 수출국에 가뭄이 왔다. 심화되는 지구온난화로 더욱 극심해지는 가뭄은 식량주권이 그만큼 시급해졌다는 걸 경고한다. 식량이 모자라는 국가는 우리뿐이 아니다. 세계 최대 인구인 중국도 식량 순수입국이다. 지구온난화가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4대강의 재자연화는 아직 실행하지 않고 있다. 어떤 대책이 절박한가. 수출 위주의 농업 신성장동력인가.
농경지보다 높은 칼로리의 어패류를 채취할 수 있었던 갯벌과 알량하게 남은 경작지마저 개발돼 사라지는 현실이다. 우리는 내일의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우리 농업의 대책을 근본에서 세워야 한다. 피폐한 이 나라의 농업은 무책임한 관료의 말장난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농촌과 농민의 소득은 물론, 자존심까지 살릴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경작지의 무모한 개발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이고, 식량 증산을 위하 농경지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실패한 개발용지와 파산한 골프장을 농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거나 자투리땅까지 활용할 수 있는 도시농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기농업으로 자급하려는 젊은 농민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농업은 후손까지 생각하는 내 땅의 생명산업이지 다른 국가를 물리칠 수출 산업이 아니다. (지금여기, 2013.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