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원래 어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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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원래 어디였을까?
  • 이병화
  • 승인 2009.09.1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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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상 주목해야할 서울은 다섯 곳이다.

 

   
   
우리 역사상 주목해야할 서울은 다섯 곳이다. <지도1 참조>. 신라의 두 곳, 고려의 두 곳, 조선의 두 곳인데, 고려와 조선의 한 곳이 같은 곳이기 때문에 다섯 곳이 된다. 네 곳은 대륙에 위치하고, 한 곳은 한반도에 있다. <표1> 참조. [자료 : 이병화 역사연구가 제공]
 
www.naturei.net 2006-11-08 [ 류기석 ]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1945년 광복 이후 정해진 공식 행정지명이다. 서울의 표기는 다른 도시와 달리 순수 한글로만 표기하고 있다. 광복 당시 외세로부터 벗어난 계기를 맞아 자주성의 상징으로 우리민족의 고유 소리글(한글)로만 쓰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서울은 옛부터 뜻글자 표기가 이어져 왔다. 徐菀로 표기해 왔던 것이다. 서울은 서나벌徐那伐에서 유래된 지명인데 서나벌은 진한辰旱(전250~전58)의 도읍지였고 서徐(전1236~전250)의 도읍지였다.

서는 부여조선夫余晁僊(전2182~전425) 때, 부여조선의 제후국이었던 남藍이 은殷을 정벌하고 그곳에 세운 부여조선의 제후국이었는데 약 1,000년간 번성하다가 번조선이 이동해 건국한 막한莫旱의 지배를 받으면서 진한辰旱이 되었다.

서울이란 서국과 진한, 그리고 서나벌(전58~후65)의 융성했던 도읍지를 뜻한다. 서울은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의 도읍지였던 북쪽의 평양에 버금가는 도시였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대한제국 시기와 조선시대 때 한성漢城이라고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京城이라고 지칭하도록 강요받았다. 세종 때 잠시 한경漢京이라고 불렀지만, 세종 이후 조선왕조의 일관된 행정지역명은 한성漢城이었다. 민간에서는 한양漢陽, 한경漢京, 경도京都, 수도首都, 수선首善이라고도 지칭했고, 서울徐菀이라고도 일컬었다.

인접국이었던 명明, 청淸, 일본日本도 한성이라고 했는데, 다만 일제는 경성京城이라고 억지로 바꾸었던 것이다.

조선이 건국하기 직전, 고려의 도읍지는 송경松京이었는데 조선은 건국하고 곧바로 도읍지를 한양漢陽으로 옮기고 그곳에 도성都城을 축조하고 한성漢城이라고 했다.

그 후 정종이 도읍지를 옛 송경으로 옮겼고, 태종이 다시 한성으로 환도했다. 조선이 건국했던 송경이나 옮겨 다녔던 한성은 대륙에 위치했었다. 송경은 산동성 임청시山東省 臨淸市였고 한양과 한성은 산동성 제남시濟南市였다.

세종은 조선의 도읍지를 대륙에서 한반도로 옮긴다. 대륙의 한성에서 한반도의 한경漢京 즉 서울로 옮겼던 것이다. 세종이 도읍지를 옮길 당시 한반도 서울의 지명은 한경漢京이었다. 한반도의 서울을 세종 이후 줄곧 서울이라고 불렀지만 세종이전 조선 초의 서울은 대륙의 한성을 말한다.

비록 시기는 다르지만 위치가 다른 곳을 똑같이 서울이라고 부를 수 있던 까닭은 서울이란 지명이 고유명사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수도, 즉 도읍지를 지칭하는 일반명사로도 쓰였기 때문이다.

서울이란 지명은 서나벌에서 유래된 것이고 서나벌은 혁거세赫居世 거서간居西干이 건국한 나라의 국호國號였다. 당시의 국호는 서나벌이라는 도읍의 지명이었고, 그곳은 진한 육촌의 중심지였다. 진한 육촌 사람들은 진秦의 수도권에서 진한지역으로 이동한 사람들이다. 서나벌은 지금 대륙의 사천성 성도시四川省 成都市였다. 진한지역은 원주민과 진에서 이동한 사람들과 부여에서 이동한 사람들로 섞여 있었다. 당시 서나벌은 기원전 57년에 건국했고, 기원 후 65년에는 도읍지를 금성金城으로 옮기면서 국호도 계림鷄林으로 바꾸었다. 계림은 307년 도읍지를 월성月城으로 옮기고 국호를 신라新羅로 바꾼다.

우리가 신라新羅(전57-935)로 인식하고 있는 나라는 국호로 본다면 서나벌(전57~후65), 계림(65~307), 그리고 신라(307~935)의 세 나라로 구분된다. 서나벌과 계림의 도읍지는 사천성에 있었고, 신라의 도읍지는 안휘성安徽省에 있었다.

신라(307~935)의 도읍지는 초기에는 월성月城이었고, 명활성明活城으로 옮겼다가 신성新城으로 옮긴다.

신라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신성을 고려 이후에는 경주慶州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신라 당시에는 그곳을 경도京都, 또는 서울徐菀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신라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던 당시의 일본도 그들의 수도를 경도라고 불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라의 도읍지 경도는 지금의 안휘성 합비시安徽省 合肥市였다. 고려 때에는 어느 곳을 서울이라고 불렀을까? 고려 때 민간에서 서울이라고 했던 곳은 개경도 물론 포함되지만 초기와 후기의 한양漢陽 두 곳이었다.

고려의 도읍지 개경은 하남성 등봉시河南省 登封市였다. 고려의 수도권은 인구의 집중과 문물의 집산으로 거대한 규모였다. 개경을 비롯 송악, 덕수, 백악, 임진, 신경 등 복합도시의 양상을 이루었다. 원의 침략을 받고 피난 갔던 강도도 송도와 진강 등 여러 도시가 인접되어 있어 큰 규모의 인구를 포용했던 것이다.

고려는 초기에 신경新京을 건설했는데, 당시 그곳은 매성買城이라고 부르던 하남성 허창시許昌市였다. 고려는 말기에 이곳을 명明에 빼앗기고 지명을 산동성 제남시濟南市로 옮겼다. 고려의 한양은 두 곳이 되었던 것이다. 서울이란 원래 신라의 도읍지를 지칭한 것이다. 신라를 합병한 고려가 신라의 문화 전통이 중심이 되어 이어졌기 때문에 고려의 도읍지도 서울이라고 불렀던 것이고, 고려의 전통을 이어받은 조선의 도읍지 또한 서울로 이어진 것이다.

고려(고구려)의 후예들은 그들의 중심 도읍지를 평양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발해는 고려(고구려)의 도읍지 평양을 차지하지 못했고, 고려로 흡수된 평양은 고려 말에 명으로 넘어갔고, 그 이후 우리 민족의 강역에서 벗어났다.

고구려와 고려의 평양은 섬서성 서안시陝西省 西安市였다. 우리 역사상 북쪽에서 번성했던 도읍지들은 평양이라 불렀고, 평양보다 남쪽에서 번성했던 도읍지들은 서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화하족의 역사상 도읍지는 내사內史, 경조京兆, 경사京師, 경성京城 등으로 불렀다. 그들의 역사상 모든 도읍지를 지칭했던 일반 명사는 없다.

진秦의 내사는 함양咸陽인데 청해성 황중현靑海省 湟中縣
한漢의 경조는 장안長安으로 청해성 서녕시西寧市
당唐의 경성은 상도上都로 청해성 대통현大通縣
송宋의 경성은 개봉開封으로 사천성 성도시成都市였다. 송의 도읍지는 서나벌의 도읍지와 같은 곳이었다.

명의 경사는 초기에
남경 집경부 사천성 남계현南溪縣
북경 순천부 감숙성 란주시蘭州市
후기에
북경 북경시 동성구東成區(지금의 북경)
남경 강소성 남경시(지금의 남경)였다.

정리한다면 우리 역사상 주목해야할 서울은 다섯 곳이다. 사진 속의 <지도1 참조>. 신라의 두 곳, 고려의 두 곳, 조선의 두 곳인데, 고려와 조선의 한 곳이 같은 곳이기 때문에 다섯 곳이 된다. 네 곳은 대륙에 위치하고, 한 곳은 한반도에 있다. 사진 속의 <표1> 참조.


글 : 이병화(역사연구가)
 
 
기사 작성 : 류기석 기자
[2006-11-08 16: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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