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자살의 길로 인도하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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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자살의 길로 인도하는 자들
  • 박병상
  • 승인 2022.08.21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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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 늘어나면, 집단자살이 멀지 않다

얼마 전,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이 의미 있는, 그러면서 절실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후위기를 극복할 행동에 모든 국가가 즉각 행동해 나서지 않으면 집단자살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좀 살벌한 발언이었습니다.

섭씨 47도를 오르내리는 기후변화 앞에서 미적대는 각국 정부의 정책에 사무총장은 실망한 모양인데, 진정성 있는 발언을 하면서 그는 넥타이를 맸더군요. 예의를 차린 걸 텐데, 폭염 속에 넥타이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가 일하는 공간은 에어컨으로 시원했을 겁니다.

아래 잇는 글은 웹진 <가톨릭일꾼> 기고문인데, 편집진이 붙인 제목을 보시고, 제가 무슨 이야기를 풀어가려는지 짐작하시겠지요? 어쩌면 비약으로 느낄 부분도 있겠네요. 저는 "집단자살의 길로 인도하는 자들"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미지근했던 모양입니다.

긴급한 대안 행동에 솔선수범해야 할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 정책결정자이 요즘 내놓는 정책이 참으로 한가롭네요. 변죽에 불과하다는 걸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처럼 느긋하면 다 죽기 때문입니다. 장차 집단자살을 피할 수 없는 것이지요. 현 시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세대에게 집단자살을 요구하는 셈이니까요.

집단자살이라는 말, 좀 끔찍한데, 페스트 창궐로 몇 차례 끔찍한 죽음의 행렬을 경험했던 유럽은 절벽의 개념을 자주 사용합니다. 독일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가 그 예인데, 지금이 바로 그 위기에 있습니다. 코로나19보다 심각한 감염병도 걱정이지만, 감염병과 폭염과 가뭄과 혹한을 번갈아 몰고 올 기후위기는 더욱 심각할 겁니다.

징후가 점점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실의 편의와 이권에 눈이 멀어 안일한 태도를 일삼는 각국 정부, 그리고 우리가 긴장해야 할 이유입니다. 알면서 행동하지 않으면 집단자살을 피하지 못하지요. 그런 이야기인데, 정리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에어컨이 늘어나면, 집단자살이 멀지 않다

속수무책이었던 페스트가 꼬리를 물던 중세 유럽의 사회상을 반영했을까? 독일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는 끝이 암울하다. 무대인 니더작센주의 작은 마을 하멜른을 방문하면 피리 부는 사나이 동상과 그림을 여럿 구경할 수 있다는데, 실제 사건이든 그저 전설이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지도자에 대한 실망은 시대와 관계없이 긴 여운을 남길 게 틀림없다.

들끓던 쥐를 사라지게 하면 넉넉하게 보상하겠다던 지도자는 약속을 외면했다. 골칫거리가 사라지자 마음을 바꿨고 피리를 불어 쥐들을 모조리 낭떠러지에 빠뜨렸던 사나이는 다시 피리를 들었다. 그러자 이번엔 아이들이 사나이를 따라갔고, 커다란 바위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는 동화는 요즘 얼마든지 패러디할 수 있다. 죽 끓듯 약속을 번복하는 정치권까지 적용하지 않아도 많을 텐데, 화석연료 낭비에 기반하는 정책이나 경영방침, 그리고 제품을 기후위기 대책이라며 버젓이 광고하는 정치권과 경제계는 어떨까?

자동차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면 친환경일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엔진 없앤 자리에 전기 배터리나 수소 탱크를 장착했더라도 전기를 생산하거나 수소를 탱크에 모으는 과정에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전혀 무시할 수 없는 게 사실이므로. 휘발유나 경유를 엔진에서 직접 태울 때보다 어쩌면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될 수 있는데, 주목해야 할 점은 많다. 자동차를 생산하고 폐기하는 과정만이 아니다. 자동차 운전하며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가?

주말이면 고속도로를 메우는 승용차들은 어디에 갈까? 승용차 아니라면 엄두 내기 어려운 장소에 가야 친구를 만날 수 있고, 그 지역의 진귀한 음식을 먹어야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그럴 리 없다. 멋진 친구와 근교의 트렌디한 장소를 찾아가는 즐거움은 곡 필요한 일상과 거리가 멀다. 운전자도 그의 친구도 별도의 돈과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수도권 근교의 아스팔트 도로 가장자리를 차지하는 멋진 음식점과 카페는 경쟁에 치어 그런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특색 있는 음식을 내놓지 못한다. 이따금 차별화를 꾀하지만, 적지 않은 비용을 번번이 투자해야 한다. 일상과 거리가 있는 음식점이나 찻집을 다니는 이는 취향이 까다롭다. 싫증이 나면 다른 곳을 찾고, 여유 없으면 방문을 미룬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화물 이송이 원활하지 않다. 수출입항은 물건 가득 실린 컨테이너가 산처럼 쌓였는데 선박이 모자라다. 선박이 도착해도 컨테이너를 실을 트럭이 제때 오지 않는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되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상선이 드나드는 항구만이 아니다. 물건을 만드는 공업단지가 그렇지만 온갖 물건을 특정한 선반에 일정하게 늘어놓던 대형 슈퍼마켓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상이 바뀌자 벌어진 혼란인데, 소비자는 아니 그럴까?

코로나19 초기 미국과 유럽은 화장지 파동을 겪어야 했다. 물류에 차질에 생겼는지, 소문이 뒤숭숭해 그랬는지 알 수 없는데, 우리도 마스크 파동을 겪었다. 마스크가 넘치자 요소수 대란이 벌어졌다. 다채로운 물건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세계의 정교한 물류에 의존하는 세상이다. 갑자기 일상이 바뀌면 파동이 일상이 될 텐데, 앞으로 어떤 파동이 재현될까? 그 원인은 코로나19처럼 강력한 감염병만이 아니다. 물류는 화석연료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석유는 고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에게는 ‘집단자살’ 또는 ‘집단행동’이라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얼마 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후 회담에서 화상으로 연설했다. “인류의 절반이 홍수, 가뭄, 극심한 폭풍, 산불로 인한 위험에 처해 있는데, 어떤 국가도 예외는 아니”라고 덧붙이면서 모든 국가, 모든 인류가 절박한 마음으로 ‘집단행동’하지 않으면 ‘집단자살’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세계 지도자는 경각심을 외면하는지, 여전히 한가롭다.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폭염과 가뭄으로 유럽에서 많은 이가 희생되었다. 느닷없는 기상이변에 대응하지 못한 계층부터 희생되었을 텐데,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기온은 전에 없는 속도로 오른다.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멈춰도 한동안 거침없을 텐데, 에어컨 냉기에서 넥타이 차림으로 대책 마련하는 지도층은 변죽을 울릴 뿐,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한다. 그들은 날씨가 선선해지면 지난여름의 기억을 잊을지 모른다.

핵발전소로 대처할 수 있는가? 전기를 생산하며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 대안인가? 화력보다 설비가 많을 뿐 아니라 건설 기간이 긴 핵발전소를 세우는 과정, 운전하는 과정, 사용한 뒤 폐쇄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생각해 보았는가? 연료를 채굴, 정제, 폐기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 시간, 그리고 대대손손에 치명적인 위험을 생각해보았는가?

전기는 사람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10% 이하인데, 그중 핵발전소에서 생산하는 비중은 30% 미만이다.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국가는 얼마나 될까? 핵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는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 핵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약속의 망발은 누가 외치는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기상이변으로 현재 대응력 떨어지는 지역과 계층부터 가혹하게 희생되지만, 방치하면 아직 체온 이상의 폭염을 실감하지 못한 우리나라를 비롯해 잘 사는 국가도 비슷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에어컨을 준비하라는 뜻일 리 없다. 에너지를 폭식하는 에어컨이 늘어날수록 기후위기는 심각해진다. 에어컨 없이 잠들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은 아비규환에 빠질 수 있다. 해외 식량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리의 내일은 안전할 수 없다.

미래세대의 생존은 에어컨으로 보장할 수 없다. 핵발전이나 수소차는 기후위기의 대책일 수 없다. 신기루 같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내년 이후에 더욱 심각해질 폭염은 황급하게 대책을 세워 당장 실행하지 않으면 늦는다. 지금은 변죽 울릴 때가 아니다. 이러다 집단자살을 피할 수 없다.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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