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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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십자가 
  • 김기원
  • 승인 2021.10.1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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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 같은 예수님을 나의 밑힘으로 삼고 나의 십자가를 세우리라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은 기분 나쁜 질문이다. 조금의 의심이라도 있으면 그 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못할 것처럼 윽박지른다.

“나는 구원받았다.”고 한다면 구원 받은 것일까? 구원은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판단하시고 주님께서 하실 일이다. 

어찌 보면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은 뻔뻔한 짓이다. 강요된 구원의 확신은 모래성과 같다. 영혼의 밑바닥에서 부터 늘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구원에 대한 긴장과 불안 속에 있어야 한다. “나는 구원 받을 수 있을까?” 하고 순간순간 자신의 신앙을 반성한다. 그것이 깨어있는 신앙일 것이다.

바울선생은 행함이 아니라,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했다. 그러면 믿음이 무엇일까? 믿음은 “밑힘”이다. “믿음”이라는 말은 “밑힘”이라는 말에서 왔다. 믿음이 없는 이들은 없다.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재물을 “밑힘”으로 삼는다. 어떤 이는 권력을, 어떤 이는 지혜를, 어떤 이는 인간관계를, 어떤 이는 젊음을 어떤 이는 연약한 자기 주먹을 믿는다. 

기독교신앙이란 예수를 밑힘으로 하고 그분의 삶과 가르침을 나의 가치관으로 삼는 것이다. 생각과 삶은 온통 세속적인 것을 의지하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르면서 “구원의 확신” 운운 하는 것은 엉뚱한 짓이다.

나의 밑힘이 되시는 예수를 어떻게 표현할까? 老子의 통나무(樸)를 빌려와야겠다. 그냥 통나무다. 다듬지 않은 소박함이다. 교리로 다듬어진 예수가 아니다. 필요에 의해 꾸며진 예수가 아니다. 우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예수가 아니다. 나라와 민족을 구분하는 예수가 아니다. 이단과 정통을 구분하는 예수가 아니다. 맨 처음 모습 그대로의 통나무 같은 예수, 통나무 같은 예수님을 나의 밑힘으로 삼고 나의 십자가를 세우리라. 

-김홍한목사의 <십자가 묵상 2>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Rc98bfjZc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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