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권위, 새로운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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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권위, 새로운 기독교
  • 양재성
  • 승인 2021.02.0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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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권위, 새로운 기독교
신명기 18장 15~18절, 마가복음 1장 21~28절

▪ 주대범 장로
  그는 중앙루터교회 장로요, 성가대 지휘자요. 문학을 좋아한 문학도요, 시인이며 노래하는 가수요, 악기면 그 어떤 악기든 절대 음감으로 연주하는 음악인이었습니다. 손수 기타를 만들 정도로 탁월한 목수요, 구수한 이야기꾼이었습니다. 그는 병적으로 사람을 좋아한 착한 사람입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마포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였습니다. 박철 목사의 출판 기념회에 뒤늦게 뒤풀이에 합류하려고 만나러 갔다가 함께 있는 그를 만났습니다. 아무개라고 소개하니 “당신이 그 아무개야, 나 당신 알아, 나 당신 좋아해” 그 이후 우린 동지가 되었습니다. 예수살기에 함께 하자고 하니 기꺼이 동행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살기에서 길동무에서 그리고 촛불광장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그는 예수 앞에서는 순박한 어린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술을 참 좋아했습니다. 이 멋진 세상에 술 없이 어떻게 사냐며, 이 어둔 세상에 술 없이 어떻게 견디냐며 술을 마셨습니다. 굵직한 목소리에 장중한 몸, 그는 이제 가뜬한 잠에 들었습니다. 누가 깨우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듯 모로 누워 잠을 잡니다. 이제 그의 너스레도 그의 노래도 그의 기타 소리도 그의 이야기도 직접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애통하고 안타깝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그는 가뜬한 잠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겁니다. 
  사람이 그렇게 맑게 살 수 있다니 그의 영혼의 샘이 얼마나 깊을지 참 궁금했습니다. 그는 우리 곁에서 예수로 산 것은 아닐까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와 한 시절 동행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에겐 과분한 행운이었습니다. 이제 그를 향한 그리움 하나 남겨둡니다. 그 그리움 하나면 충분합니다. 언제든지 그를 호출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 그와의 아름다운 소풍은 계속될 겁니다. 조만간 가뜬한 잠에서 일어나면 그와 함께 북한산 둘레길이라도 걷고 싶습니다. 그와 걷다보면 예수와 걷게 되는 행운을 얻을 겁니다.  

▪ 조 바이든 정부와 환경정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날 첫 번째로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에 서명하였습니다. 오는 4월 22일 지구의 날에 세계 정상이 참여하는 기후정상회의를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울러 1월 27일 이후 미국 내 석유, 가스 시추중단 행정조치를 단행했고 화석연료 보조금을 줄이고 빈곤층 소수민족을 환경오염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조치를 강화하기로 결정함으로 환경현안과 기후위기 극복 정책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존 켈리 미국기후특사는 G20 연설에서 2050년까지 전세계가 탄소중립 달성하려면 빨리 석탄화력을 5배 줄이고. 숲은 5배 늘려야 하며, 재생에너지는 6배 늘리고, 전기차는 22배 늘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대로 실행하지 못하면 기후재난으로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앞으로 탄소국경세를 신설할 예정이며 세계 주류투자운영자들이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업종에 투자하지 않고 온난화를 가속화 시킬 사업에서 철수 하는 등 환경이 우선 고려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환경문제를 경제문제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음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인류는 이젠 경제보다도 환경우선정책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패턴과 소비구조 자체를 바꿔야합니다. 이 시대의 물량주의적 자본주의 세계관을 생명평화적 세계관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인간의 무한 소비를 위해 자연만물은 지속가능하지 못합니다. 이제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해야만 자연의 보전도 우리의 미래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합니다. 
  지난 해 한 해 동안 그 어려운 와중에서도 세계 10대 부자들이 번 돈은 585조원입니다. 반면에 20억명의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향후 10년 동안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일어설 수 없는 상황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자본주의 시장원리가 가져다 준 양극화입니다. 향후 경제적 양극화는 환경오염 다음으로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것입니다. 

▪ 진정한 예언자
  제1성서의 성서일과는 신명기 18장의 말씀입니다. 
  오늘 신명기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백성들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다가 죽을까 두려워 중재자를 요구한 것에 하나님께서 중재자로 예언자를 세우고 그 예언자에게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일러주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을 감당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이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심판주로 당신의 백성을 감찰하시는 분으로 부상되는 건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두려움을 심어 주고 신앙을 강요하는 종교는 이미 참 종교가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종교 또한 참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는 신뢰와 사랑을 주고 자유와 해방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도 진리를 알게 될 터이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의 소중한 기능 중에 하나가 예언자적 역할입니다. 참 신앙인은 참된 예언자이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고 그 뜻을 살아내고 전해야합니다. 그러기에 예언자의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는 일입니다. 경청의 자리가 곧 예배의 자리요 기도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서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려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해도 아니 되며, 뒤늦게 전해서도 아니 됩니다. 예언자는 청중이 듣기 좋은 이야기만 전해도 안 되며, 예언자는 청중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빼서도 안 됩니다. 가감 없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바를 온전히 전해야합니다. 그러기에 예언자의 숙명은 성찰과 수행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예언자의 삶은 사회변혁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기에 기득권으로부터 늘 비난을 받으며 위험을 감수해야합니다. 
  이 시대 한국교회가 길을 잃은 것은 예언자적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옷 입고 예수로 살아가는 예언자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의 사명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적 사명입니다. 바로 우리의 자리는 예언자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시대의 예언자로 세우셨습니다. 

▪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어떤 현안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작은 요인으로 한순간 폭발적으로 뒤집히는 현상을 티핑포인트라고 합니다. 기후위기에 시급하게 대처함으로 티핑포인트를 막아야 합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작년 9월 지구의 평균 온도가 1도 상승했고 2024년 1.5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2050년에 2도가 넘으면 티핑포인트로 2100년 6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2도가 상승하면 해수면 상승으로 저지대에 살고 있는 10억 명의 환경난민이 발생할 것이며 이는 최악의 지구 재앙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2월 28일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핵심 골자는 화력 및 원자력 에너지 생산을 줄이고 엘엔지 및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확대하는 방안입니다. 당분간 전기료 상승이 불가피하겠지만 2028년부턴 신재생에너지가 원자력이나 화력 에너지 가격 보다 더 싸진다며 장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가 경제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후위기는 지구 이곳저곳에서 총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도 기후위기의 한 요인으로 발생한 것이며 동토층에 잠들어 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해빙으로 깨어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지구적 재앙이 될 것입니다. 또한 지형성 가뭄으로 식량 생산이 절반으로 줄고 있으며 거대한 산불 발생으로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켈리포니아주는 한 해 동안 8천여 건의 산불이 발생하였고 호주는 최악의 산불로 한반도의 63%에 해당한 숲이 불타서 야생동물 12억 마리가 죽었으며 20억 마리가 서식지를 잃었습니다. 아마존과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이 산불로 사라지고 있어 지구의 허파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거기에 태풍과 기상 이변은 자주 발생할 뿐만 아니라 점점 대응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기후 위기는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더불어 우리교회는 오는 2월 기독교기후비상행동을 출범시켜 기후위기를 비상하게 대처해나갈 계획입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주요 교단들과 연대하여 지구재앙을 초래할 기후위기를 극복할 환경선교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기후 문제는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감당해야할 소중한 사명입니다. 기도해 주시고 함께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 새로운 권위
  제2성서 성서일과 마가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1장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언자의 계보를 잇고 있는 율법학자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여 예수를 비난하고 예수를 신성 모독죄로 고발하였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귀신들-로마제국과 이방인들은 예수를 정확히 알아보았습니다. 귀신이 떠들기를 “우리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우리를 상관하러 오셨습니까? 우리를 쫓아내지 마십시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은 이미 그 권위를 잃고 있었는데 오히려 예수의 권위는 압도적으로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신분 상승과 욕망으로 하나님의 소리를 경청해온 자칭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를 배반했지만 적국인 로마제국의 지휘관인 백부장이가 예수를 알아보고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장면은 낯설지만 놀랍습니다. 나아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한 것은 위대한 반전입니다. 헌데 하나님의 계시인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놀랍게도 다름 아닌 하나님을 잘 섬기고 믿는다는 제사장. 율법학자들, 서기관들이었다니 어찌 놀랍지 않습니까.

▪ 개신교회의 추락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인 80년 대 초반에도 사람들은 교회에 짱돌을 던졌습니다. 그건 독재와 투쟁하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무리들이 독재정권에 동조하거나 잠잠한 교회를 향해 독재와 타협하지 말고 독재정권과 싸워달라는 기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당시 지각 있는 개신교회는 짱돌을 수용하여 민주화 투쟁에 나섰고 역사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였지만 초대형 교회들은 독재자의 밥그릇을 핥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초대형 교회들은 독재 권력의 지원과 비호 하에 이뤄졌습니다. 초대형 교회들이 정권을 비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작년 3월 11일 코로나19 슈퍼전파자로 지목된 대구 신천지 교회에 계란을 투척한 것에 이어 이번엔 소상공인들과 주변 시민들이 개신교회에 분노의 계란을 투척하였습니다. 지난 27일 오전, 광주 TCS국제학교 앞. 교회 외벽에 달걀을 힘껏 내던졌습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성경 구절이 적힌 건물 외벽 조형물이 달걀 파편으로 범벅이 됐습니다. 식당을 운영한다고 밝힌 이 남성은 "뉴스를 보고 화가 많이 났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교회가 무슨 치외법권 지역이라도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좀 잠잠해 질만 하면 매번 교회에서 확진자가 쏟아진다.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으면 자제할 건 해야지. 종교 활동하는 게 그렇게 급한 문제냐. 지금 힘든 정도가 아니다.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나 모든 서민이 정말 힘들어 죽을 지경"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습니다. 이 남성은 "식당하는 사람들은 5인 이상 방역 수칙도 지키고 테이블 거리두기도 지키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제도 그제도 5명 이상 식사하러 오신 분들을 죄송하다며 다 돌려보냈다. 그런데 교회가 이렇게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처벌을 요구하였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한 다른 시민들도 "교회 목사 나와라. 교회 때문에 광주시민들이 불안해서 못살겠다. 이용섭 시장은 사퇴해라. 확진자가 100명 넘게 나왔는데 뭐 하고 있었느냐"고 소리쳤습니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와 교회가 세워진 이후 이렇게 지탄을 받고 망가진 적은 없습니다. 교회가 이렇게까지 자본에 굴복하고 탐욕에 병들고 성적인 타락을 가져온 적이 없습니다. 이제 교회의 미래가 걱정입니다. 이러다가 교회가 붕괴되는 것은 아닌지? 하기야 지구가 붕괴된다는데 교회쯤이겠습니까?

▪ 쉐어 처치(Share church)
  우리교회는 창립 7년을 맞아 성전 이전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교회라고 하니 임대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 임대가 어려운 문제도 있지만 공유 교회(Share church)라는 개념을 실험해보려고 합니다. 기존 교회인 이웃교회 공간을 빌려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직은 낯설지만 비상한 시국이니 한시적으로 돌파구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입니다. 
  진정한 기독교회, 진정한 한국교회, 진정한 감리교회를 표방하며 마을교회, 녹색교회, 예수교회로 정체성을 정하고 비전을 선포한 교회입니다. 작지만 그 뜻은 웅대하게 정하고 새로운 교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 새로운 교회를 향하여
  교회 개혁을 추진해 왔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교회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는 고쳐 쓸 수 없는 지경으로 망가졌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새로운 교회, 아니 새로운 종교를 세워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고 보면 이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종교, 새로운 기독교가 요청됩니다. 
  새로운 교회는 새로운 권위가 필요합니다. 이는 세속의 권위가 아닙니다. 예언자의 권위입니다.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그 말씀으로 살고자 하는 자들의 권위입니다. 세상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예수의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자신들의 권위로 만들고 민중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고 민중을 보호해야할 율법을 민중을 정죄하는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종교로는 진정한 자유와 사랑의 종교를 세울 수가 없다고 판단하시고는 새로운 종교를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법 정신을 상실한 율법이나 사랑과 관용을 상실한 독선으로는 시대의 등불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셨는데도 알아볼 수 없는 눈으로는 예언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성전은 강도의 굴혈이 되었고 당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자칭 하나님의 지도자들은 강도떼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성전은 맘몬 숭배의 온상이 되었고 교회는 화려함을 추구하는 바벨탑이 되었으며 이웃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독선과 아집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당신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철없는 도깨비로 전락시켰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의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사라지고 남의 약점만 찾아 정죄하는 종교, 자신의 전부를 주고 이웃을 살리신 십자가의 사랑은 사라지고 개인의 욕망만 남은 거짓 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런 교회는 짱돌을 맞아야 하고 계란 투척을 당할 가치도 없습니다. 계란을 투척한다는 것은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지도 모릅니다. 

▪ 다시 광야에 서서
  예수께서 새로운 종교를 세우고자 마음을 먹고 찾은 곳은 다름 아닌 광야였습니다. 당신의 스승인 세례자 요한이 복음을 선포하신 곳도 광야였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광야는 시대의 아픔과 고난이 있는 장소요, 억울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있는 곳입니다. 광야는 세속의 거추장스런 옷을 벗고 세상의 권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오롯이 신뢰하는 곳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냉혹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그 위기를 돌파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또 성찰해야합니다. 

  차 두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차선을 넘나들면서 다른 차를 추월하고 중앙선을 침범하여 위험스럽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통 받는 사람을 도와주려고 달리는 앰블런스였고, 또 한 대는 술 취한 운전수가 모는 최신식 모델의 세단이었습니다. 이 두 차의 위험한 주행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릴 것입니까? 이들 두 대의 차량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어디를 달리는 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달리는 가이며 얼마짜리의 차인가가 아니라 운전석에 누가 앉아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운전수는 누구입니까? 우리 교회의 운전수는 누구입니까? 이 지구의 운전수는 누구입니까? 내 인생의 운전수가 자신이라면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운전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묻고 그 사랑의 힘으로 섬겨야합니다. 이 지구의 운전수는 하나님입니다. 자본주의고 세계 정부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자신이 지구의 운전수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물어야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예언자들이 요청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처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의를 세우려는 자들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그 일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질 것입니다. 이미 한국교회에 세워진 촛대가 옮겨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너희가 소리치지 않으면 저 돌들이 일어나 소리칠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은 이미 실현되고 있습니다. 서기관들의 눈이 멀자 눈이 멀었다던 세상의 대중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고 이는 권세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라며 예수를 따라나섭니다. 

그저 그런 권위로는 세상을 하나님의 진리로 제도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헌신과 섬김으로 세워진 권위여야 합니다.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으로 세워진 권위라야 세상을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 외엔 그 누구도 경외하지 않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 권위는 지극히 작은이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권위입니다.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권위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을 해방하고 그들로 하여금 역사의 주체가 되게 하는 권위입니다. 자, 이제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거룩한 일을 위해 참된 예언자로 일어납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위해 예언자로 살아가기로 결단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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