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로의 초대
요나서 3장 1~10절, 마가복음 1장 14~20절
▪ 주현절
우리는 시방 주현절을 걷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각 시대마다 나타나셨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우리 중에 누군가는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오신 그리스도인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본인도 자신이 하나님이 변장하여 오신지도 모르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신비로 가득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일지도 모르니까요. 가난한 그리스도 병든 그리스도 헐벗은 그리스도 어린 그리스도 노약한 그리스도 흑인 그리스도 노동자 그리스도 알바 그리스도 이주민 그리스도 택배 그리스도 세월호 유가족 그리스도.....셀 수도 없는 많은 그리스도들이 계십니다.
우리는 누가 그리스도인줄 모르니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로 여기고 존중하고 환대하며 살아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하나님처럼 대하란 가르침은 이를 두고 한 말씀입니다. 주현절을 자신과 주변 이웃을 성찰하고 하나님의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지냅시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눈이 열려 식구 중에 혹은 여러분 이웃 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은총을 누리시길 빕니다.

▪ 넘어짐
프랑스에 한 작은 마을에 성당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고해성사를 위해 신부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고백하는 내용이 언제나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신부님, 오늘 누구와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신부는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 그런 고해성사를 듣는 것이 아주 지겨워졌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미사시간에 신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고해성사를 할 때 불륜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대신 '오늘 누구와 넘어졌습니다.' 라고 말하세요." 그 후 마을 사람들은 고해성사를 할 때, '신부님 오늘은 누구와 넘어졌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신부님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신부님이 고해성사를 들어보니 다들 넘어졌다는 소리뿐이었습니다. 신부는 독실한 신자였던 마을 읍장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읍장님 마을에 도로공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도로에서 넘어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고 있는 읍장님은 혼자서 껄껄 웃기 시작했습니다. 신부는 재차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읍장님 웃을 일이 아닙니다. 어제 읍장님 부인은 지난 주 세 번이나 넘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 미국 대통령 취임과 두 여성
탈도 많고 걱정을 많이 한 미국 대통령 이,취임식이 최악으로 치러졌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도 문제였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전직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불복과 과격지지자들로 취임식 테러가 예상되어 삼엄한 경계를 펼치느라 군경이 대거 포진하고 철조망을 설치한 가운데 취임식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미국의 희망을 선포하느라 애썼습니다.
취임식에서 두 여성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 분은 이미 잘 알려진 아프리카 인도계 흑인 여성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입니다. 아프리카 출신의 아버지와 인도 출신의 어머니를 둔 흑인 여성으로 경제학과 법학을 전공하였고 샌프란치스코 주 법무장관 검찰총장을 역임하고 상원의원을 지내다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하버드대학 사회학과 학생인 고먼입니다. 고먼양은 취임식에서 <우리가 오르는 언덕>이란 자작시를 낭독했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함께 공유하지 않고
나라를 파괴하려는 힘을 목도했다 (중략)
그러나 민주주의는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영원히 패배할 수는 없다는 사실 역시 목도했다. (중략)
그 날이 오면, / 우리는 불타오르는 그림자에서
두려움 없이 걸어 나오리라.
새로운 새벽은
우리가 스스로를 자유하게 하리라.
빛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가 그 빛을 직시할 용기가 있고,
스스로 그 빛이 될 용기가 있다면.
고먼은 자신을 “노예의 후손이자 홀어머니 손에서 자란 깡마른 흑인 소녀”라고 지칭하며 미국은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꿈꿀 수 있는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당선 수락 연설입니다.
민주주의에는 희생이 따르지만 그 속에는 기쁨과 진보가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세웠고 미국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용기와 회복력, 여러분 정신의 관대함도 목격했습니다. 지난 4년간, 우리는 평등과 정의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삶과 이 행성을 지키기 위해서 행진하고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희망, 단합, 품위, 과학, 그리고 진실을 택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수세대에 걸친 여성들을, 흑인, 아시아계, 백인, 라틴계 그리고 북미 원주민 여성들을 생각합니다. 이들은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속에서 길을 닦아온 이들입니다. 여성들은 평등과 자유와 정의를 위해 너무나 많이 싸우고 희생해왔습니다. 특히 너무나 자주 무시되는 흑인 여성들은, 그들이 우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는 사실 또한 너무나 자주 입증했습니다.
미국인 여러분, 지금이 진짜 일을 시작할 때입니다. 힘든 일, 필요한 일, 좋은 일. 생명을 지키고 팬데믹을 이기기 위해 필수적인 일, 우리 경제를 재건하고, 우리 사회의 체계화된 인종차별을 뿌리 뽑고,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고, 우리나라를 단합시켜 이 나라의 정신을 회복시키는 일 말입니다.
해리스는 “어린 시절 배운 성경을 기억해보면 스스로 자신을 대변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여 말했고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해줘”라고 요구하는 사랑의 하나님을 신뢰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나는 신앙대로 살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검사시절 여성 및 아동성폭력에 대해, 성소수자에 대해, 금융위기사태 때 집을 잃은 중산층 서민들을 위해 자신의 열정으로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해리스 배후에 금융을 쥔 유태인들과 군산복합주의자들이 있다고 하니 해리스가 그들을 설득하여 인류의 평화를 가져올지 좀 더 지켜봐야할 일입니다.
▪ 요나의 소명
오늘 제1성서 성서일과는 요나서 3장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선 하나님께서 두 번째 요나에게 말씀으로 임하십니다. 니느웨로 가서 잘못을 회개하지 않으면 도성을 멸망시키겠다고 외치랍니다. 내키지 않았지만 달리 길이 없으니 요나는 니느웨로 갔고 3일 동안 도성을 돌며 마지못해 ‘40일 안에 회개하지 않으면 이 도성이 망한다’고 외쳤더니 거짓말처럼 왕으로부터 온 대신들 온 백성들이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첫 번째 요나에게 임하여 니느웨로 가서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라고 했을 때 요나는 적국인 니느웨가 구원받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다가 큰 풍랑을 만나 바다에 던져졌고 큰 물고기 배속에서 3일 동안 갇혀 있는 중 회개하고 물고기 배 속에서 나와 두 번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다시 소명을 받는 장면입니다.
니느웨는 고대 앗수르 제국의 수도로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최대의 도시였습니다. 기원전 8세기경 산헤립 왕이 수도로 정하면서 큰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고 상업의 번성과 외국과의 교역으로 사치와 퇴폐풍조가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군사적으로도 강대한 도시였지만 죄악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의 죄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교만(사 10:13), 잔인(나훔3:1), 극도의 이기주의(습 2:15)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의 죄악이 너무 심하였기에 그 성을 심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나 선지자를 통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요나의 사명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가 달린 것으로 한 도시의 운명을 가늠하는 일입니다.
요나서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고 보기엔 너무나 과장된 이야기처럼보입니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요나서를 픽션으로 보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요나서가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요나>를 거꾸로 읽으면 <나요>라며 하나님은 니느웨의 회개보다도 요나 한 사람의 회개를 원하고 계셨다고 꼬집기도 합니다.
요나 한 사람을 회개시키기 위해 거대한 폭풍우를 동원시키고 큰 물고기를 동원시키더니 마침내 니느웨 도성 전 주민들을 동원시킵니다. 박 넝쿨과 강렬한 햇볕을 동원시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 어떤 일보다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의 사명은 민족주의를 넘어서고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누구든지 잘 못을 고백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면 용서하신다는 자명한 진리를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듣고 깨달아 가감 없이 순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도 내 판단으로 결정하고 생각한대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도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그릇일 뿐입니다.
▪ 거룩한 부르심
오늘 제2성서 성서일과는 마가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1장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 실현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고는 이를 위해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어부였고 예수께서 부르시자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배를 버려두고 가족들을 남겨두고 예수를 따라나섭니다. 이 또한 놀랍지 않습니까? 그물이나 배는 어부들에게는 생업을 위한 가장 소중한 도구입니다. 그것을 버렸다는 것은 다시는 어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아울러 가족을 두고 예수를 따라 나선 건 이제부터는 하나님 나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일하겠다는 비장한 출가입니다. 절대적인 신뢰가 아니면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길을 나선다는 것은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세상 방식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겠다는 약속입니다. 그의 목표는 바벨탑이 아니고 광야입니다. 이는 이 땅에서 하늘의 길을 걷겠다는 결단입니다.
▪ 소성리 사람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성주 소성리 사드기지에 공사차량이 난입한다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마치 바이든 대통령에게 취임 선물이라도 주듯이 말입니다. 성주엔 아직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드 공사를 막아선 주민들과 이웃 종교인들 시민사회단체들 그리고 개신교에선 강형구 장로가 은퇴하고 주소지를 옮겨가면서 4년째 살고 있고 백창욱 목사가 함께 막아서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사드 배치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기에 사드 배치를 수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반도 지배전략이고 대 중국 방어 전략입니다. 이는 한반도의 평화를 깨뜨릴 뿐만 아니라 유사시엔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어 공멸하게 됩니다. 이분들은 단순히 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요,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종교적 객기를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드를 반대하는 길이 한반도의 평화를 일구는 일이고 종교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이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 세월호의 눈물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검개들은 믿기지 않게 대부분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의문들은 다 묻어두고 제 입맛대로 결론을 냈습니다. 지난 7년여 동안 아픔을 뒤로 미룬 채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다시는 당신들의 자식 같은 죄 없는 아이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진상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고 책임을 물어 책임자를 처벌하고 안전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여 왔습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들의 요구가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이 일을 해결할 수 없는 정치라면 정치가 왜 필요합니까?
문재인 정권은 새월호 진상규명을 공약 1호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어떤 것 하나 시원스레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지난겨울 그 추운 날씨에도 청와대 앞 분수대 노상에서 잠을 자고 단식을 하며 규명을 요구하였습니다. 해를 넘겨 지금까지 농성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개탄스럽습니다.
미칠 것 갔다던 유가족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 삭발을 하였습니다. 박근혜 정권이야 그렇다고 치고 문재인 정권에서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배신감에 땅을 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야 말로 탐욕스런 정치를 바로 세우고 무능한 관료를 깨우고 사악한 지식인들을 꾸짖고 무지몽매한 시민들을 역사의 마당으로 불러내고 있는 시대의 예언자들입니다. 진정한 구원자들입니다. 위로를 받아야 할 분들이 시대의 희망을 짓고 있는데 정작 이분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일상으로 돌려보내야할 정부와 정치권은 무능하기 짝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을 보고만 있을 겁니까? 눈물이 말라 원한이 되지 않도록 하루속히 진상을 규명해야합니다.
▪ 윌버포스
1784년 24세의 나이로 잉글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요크셔 지역구 하원의원이 된, 촉망받는 정치가였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회심’을 경험하고, 내적 괴로움의 시간 끝에 1785년 11월, “신을 위해 살려면 세상을 버려야 하며 중간지대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24세에 수상이 되어 20년간 국정을 이끌었던 윌리엄 피트(William Pitt)에게 이 결심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정계에서 윌버포스를 잃고 싶지 않았던 피트의 간곡한 만류와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작사자이자 전직 노예무역선 선장 출신의 복음주의 운동 지도자 존 뉴턴(John Newton)목사의 “하나님은 신학교에 가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부르심이 있어 당신을 영국의회에 보내셨을 것”이란 권고를 받아들여 정계에 남았습니다. 그의 회심이 알려지면서 노예무역 폐지를 염두에 두고 있던 복음주의 운동가들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게 됐고, 공동전선을 구축했습니다. 이들은 1787년 5월 22일 ‘런던 노예무역 폐지 협회’를 설립했고, 이 의제를 의회에 가져갈 사람으로 ‘갑작스런 회심으로 유명해진’ 윌버포스를 떠올렸습니다.
당시 노예무역은 호황이었고 약 1,060만명의 흑인 노예들이 유럽과 아메리카로 팔려갔습니다. 노예무역은 중간 판매상인 영국뿐 아니라 공급자인 아프리카, 소비자인 신대륙 모두에게 중요했습니다. 법안 통과까지는 20년이 걸렸습니다.
▪ 누구를 위한 정권
공수처가 드디어 출범하였습니다. 바라기는 잃어버린 검찰권을 회복하여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길 기대합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었습니다. 구속을 피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최저형량으로 면피용 구속이 이뤄졌습니다. 제가 이재용이라면 삼성을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고 공적자금을 만들어 지원하고 노동자들의 인권과 복지를 향상시키고 공동선을 지향할 겁니다. 이게 이재용이 사는 길이고 삼성이 전 세계 기업을 석권하는 길입니다.
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300명에서 400명 대를 오가지만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닙니다. 다행스러운 일은 설 명절 전부터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집단 면역이 생기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말입니다.
누구를 위한 정치입니까? 정치는 늘 약자들을 지향해야 합니다.
▪ 회개와 신앙인
하나님의 뜻은 회개입니다. 회개란 하나님의 뜻을 등지고 가던 길을 돌이켜 다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악마는 우리 안에 악한 씨앗을 심어 놓았습니다. 그 뒤로 우린 하나님의 뜻과 악한 생각이 교차하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 성인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도달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만족은 없노라고 고백했고 파스칼은 우리의 마음엔 하나님이 들어가실 만큼 크기에 하나님을 모셔 들이지 않고는 만족함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매 순간 물어야할 것은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인지입니다. 내가 지금 부르는 노래가 하나님이 원하는 노래인지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선포하실 때 첫 메시지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이제 반생명적 세상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누구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면 심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심판도 심판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용서와 새로운 삶, 기회를 주는 게 목적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매진합시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의식이 일어나면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신앙인입니다. 하루를 마치고 잠을 청하면서 돌아다보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신앙인입니다. 일을 하면서 이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임을 확신하고 그 길을 간다면 당신은 참 신앙인입니다.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에게 묻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여러분은 신앙인입니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슬피 우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신앙인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알면 알수록 신비를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다면 당신은 복음을 믿는 자입니다.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겁니다.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멋진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2021년 1월 24일 주현절 후 셋째 주일에
가재울녹색교회 양재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