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갈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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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갈라지다
  • 백창욱
  • 승인 2021.01.1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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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21. 1. 10)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 주님의 수세주일
막 1:4-11 “하늘이 갈라지다”


오늘 성서정과 서신서 본문은 사도행전 19장입니다. 바울과 에베소지역 제자들과의 문답입니다. 둘의 대화를 보면,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차이가 뚜렷합니다. 바울이 제자들에게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냐고 묻자, 그들은 성령이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러면 무슨 세례를 받았냐고 묻습니다. 제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답합니다. 바울은 요한이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를 믿으라는 뜻에서 회개의 세례를 주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여 그들도 방언하고 예언을 합니다.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초기교회 어느 시점까지는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가 따로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후 점차적으로 초기교회에 예수 그리스도 신앙이 완전히 자리 잡으면서 요한의 세례는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요한 세례가 담고 있는 의미들은 그대로 예수 세례로 옮겨졌습니다. 요한세례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물세례이고 다른 하나는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입니다. 요한의 사회개혁 운동은 역사 뒤로 완전 사라지고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이 교회로 옮겨지고 교회가 교리와 전례로 굳게 자리 잡으면서 예수 세례도 필수적인 전례가 됐습니다. 그리고 예수 세례는 물세례와 죄용서의 의미도 함께 담았습니다. 처음에는 요한세례의 강조점이었는데 예수세례에 고정이 됐습니다. 그러면서 원래 예수 세례의 처음 강조점인 성령세례는 많이 약화돼 버린 게 사실입니다. 지금은 예수 세례가 물세례와 죄용서의 뜻만 남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성령세례 보다는 중생과 성화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중요과정이 됐습니다. 이런 와중에 처음 복음서가 강조하고 증언한 예수의 성령세례는 사문화돼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처음 근본주의 교회 다닐 때 담임목사님이 성령세례 이론이 깊은 분이어서 성령세례 불세례에 대한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저도 성령세례를 받고 싶다는 소망과 간절함으로 그 분이 쓴 성령세례에 관한 책도 열심히 읽으면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하도 옛날 일이어서 그 내용을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큰 줄기는 물세례만으로는 부족하고 성령세례도 받아야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세례는 어떻게 받느냐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립니다. 대개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근거하여 이론을 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 목사님도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당위적이고 이론적 말씀은 자주 했지만 성령세례를 받는 길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씀하지 못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령세례는 전적으로 하늘은총의 영역입니다.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시기와 경로로 오는 것인바, 여기서부터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비영역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마치 성령이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이렇게 하면 또는 저렇게 하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류나 사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알다시피 한국교회의 왜곡현상 가운데 가장 많이 비뚤어진 현상이 성령분야입니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방언을 유도하고 예언과 신유를 가공, 남발하면서 온갖 부작용을 일으켰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성령이 아니고 성령장사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처음 말한 바울이 봤으면 한탄을 금치 못할 현상이 한국교회에서는 광범위하게 일어났습니다. 골자는 ‘성령 받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선전입니다. 지금은 그쪽 세계와 멀어져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는데 가끔 TV 기독교채널을 보면 화면 밑 자막으로 무슨 성령집회 광고가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서 여전히 성령이 인위적인 수단으로 남용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에서 성령은 반이성적이고 자아성찰이나 에고극복, 하나님과 일치를 구하는 영성에 대해서는 완전 무지합니다. 그보다는 성령은 오직 사람감정을 들쑤시는 것이 돼버렸다는 진단입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도 그 영향이 몸에 남아서 지금도 집회를 하면 나도 모르게 박수치고 통성기도하고 감정을 올리는 게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한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형성하는 데 교회문화가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가 세례를 받고 물 속에서 올라오시는 데 하늘이 갈라졌다고 증언합니다. 오늘은 이 부분만 살펴보겠습니다. 하늘이 갈라졌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21세기 과학 상식으로 말하자면 하늘이 갈라진다는 말은 성립이 안 됩니다. 대기권을 포함하여 하늘은 그냥 허공이기 때문이다. 우주질서에 격변이 일어난 것을 하늘이 갈라졌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그 때 이미 지구는 종말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또 지금 환경오염으로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권에 구멍이 나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데, 일세기에 하늘이 갈라졌다는 말이 대기권이 뚫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 무엇인가요? 그들이 겪은 사건의 놀라움, 경이로움,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심정을 그렇게 말한 것으로 봅니다.
 
21세기 지금 시대에는 신개념이 완전히 바뀌었지만,(『가이아와 기독교의 녹색화』를 보십시오.) 일세기 사람들에게 하늘은 신이 거주하는 공간입니다. 사람세계와 완전히 단절돼 거룩하고 신비한 영역입니다. 근접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복음저자는 예수가 세례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 하늘이 갈라졌다고 증언합니다. 하늘은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를 갈라놓았던 장벽이었는데 그 장벽이 활짝 열린 것에 대한 마가저자의 장엄한 고백입니다. 

어떤 일로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나요?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일어났습니다. 즉 예수가 뜻을 세우고 운동을 시작하기 위한 움직임에 하늘도 함께 움직인다는 상징입니다. 하늘이 함께 움직이는 상징은 그 다음 연속해서 예수께 성령이 임하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너는 내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난 것으로 더욱 확증됩니다. 예수가 세례받음이 사람세계뿐 아니라 하늘세계에도 엄청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이라는 암시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예수세례에 하늘이 함께 움직이는 뜻은 예수에게만 일회적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 뒤 예수 이름으로 세례받는 우리에게도 같이 임하는 사건입니다. 그 증표가 성령이다. 예수께 임한 성령은 그 이름을 고백하는 우리에게도 같이 임하고 같이 활동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신앙과 세례도 예수세례를 따라 하늘이 감동하는 역사의 단초가 돼야 합니다. 우리가 이 뜻을 귀하게 여기고 예수의 세례가 내 마음과 생활에서 되살아나게 하십시오. 내 안의 성령이 참 세상의 동력이 되게 하십시오. 그럴 때만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의 뜻이 오늘에 이어집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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