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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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 양재성
  • 승인 2021.01.1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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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창세기 1장 1~5절, 마가복음 1장 1~11절

▪ 희망의 새해
  2020년 성탄절을 기다리며 예수님은 어디로 오실까? 궁금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실 텐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곳은 어디일까? 가장 큰 아픔을 당한 분들의 자리일 것입니다. 청와대 앞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장과 국회의사당 앞 산재 유가족들의 단식장이었습니다. 지체 없이 청와대를 찾아 1인 시위에 참여하고 함께 하고 계신 분들을 식당으로 모시고 가 식사를 대접해드렸습니다. 
  단식 중에 한 지인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양 목사 힘내.” 그리고 테제 찬양의 가사를 적어 보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바라봅니다. 우리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장난 끼가 작동하여 “예수를 바라만 보지 말고 예수가 있는 곳으로 가야지”라고 적어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지금 예수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단식하고 계셔”라고 적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참이 지나서 응답이 왔습니다. “그러네”

  취직이 되었다고 설레이며 출근하여 열악한 환경에서 혼자 일하다가 죽은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예수, 방송국 피디로 동료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한빛 피디의 아버지 이용관 예수, 쓰레기 재활용센터의 거대 파쇄기에 끼에 죽은 김재순의 아버지 김선양 예수,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현장 실습에 나갔다가 집단 구타와 강압에 못 이겨 목숨을 끊은 김동준의 어머니 강석경 예수, 건설현장에서 떨어져 사망한 김태규의 누이 김도현 예수, 그의 어머니 조현숙 예수. 그 밖에도 셀 수 없는 많은 예수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연말연시를 예수들에 둘러싸여 지냈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했습니다. 이들과 호흡하고 이들과 울고 웃고 이들과 성경의 예수를 논하고 이 시대의 길을 얘기하고 참 귀했습니다. 매일 매일이 소중한 강학단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자본주의에 대하여 어느 날은 민주주의에 대하여 어느 날은 민중혁명에 대하여 어느 날은 전태일 역사에 대하여 그리고 어느 날은 예수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마음의 결심들을 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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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에서 본 희망
  오늘 성서일과는 창세기 1장의 말씀입니다. 창세기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 패망하여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을 때 노예살이를 하면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는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절대로 무너질 수 없고 무너져서도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고 성전의 기물들은 훼파되고 고관대작들의 술잔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신성은 모독되었고 짓밟혔습니다. 그 좌절과 절망 속에 있을 때 지혜자들은 신앙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다시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야훼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임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우주의 주관자로 역사를 새롭게 창조하실 분임을 선언합니다. 지금 우리가 고난을 당하지만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다시 받아주실 것임을 선언합니다. 
  그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동료로 신성한 존재로 만드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신처럼 인간을 당신을 위한 노예로 만들지 않고 자유인으로 만들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는 그 안에 신성한 빛을 가지고 있게 했으며, 그 신성한 빛은 그를 거룩한 존재로 인도하는 등불이 되었고, 세상을 희망적인 세상으로 지어가도록 이끌었습니다. 

▪ 절망스런 현실
  2020년을 걸어오면서 희망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삶은 빼앗겼고 경제적 타격은 물론 만남도 중단되었고 예배도 문화도 비대면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검찰개혁은 검사집단과 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어설픈 정부의 대처로 피로감만 주고 미완으로 끝났습니다. 언론개혁 재벌개혁으로 이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는 게 불분명해졌습니다. 적폐청산 1호인 세월호 사태 진상규명은 여전히 오리무종이기에 유족들은 연말연시를 청와대 앞에서 단식하고 노숙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회 앞에서는 산재희생자 유가족들과 노동자들이 단식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정성스레 맞아야할 거룩한 시기에 가장 큰 슬픔을 당한 분들이 위로를 받기는커녕 길거리에 내몰려 단식에 노숙이라니요. 도대체 이게 나라입니까? 이걸 용인하는 사회가 정상입니까? 

▪ 깐다이즘 
  “위에서 까라면 무조건 깐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노동 규범입니다. 이는 군대문화의 아류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시대의 잔재입니다. 일상을 비상시국으로 만들어 비합리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자본가의 ‘캔두이즘’이 노동자의 버전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깐다이즘은 위에서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되는 조건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인간 한계를 넘어섭니다. 결국 죽음의 지점까지 행위의 자발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고 계명대 최종렬교수를 지적합니다.
  캔두이즘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깐다이즘이 내장한 죽음의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성장을 내세워 3년 안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라고 지시합니다. 공사시작 2년5개월 만인 1970년 7월에 속성 완공합니다. 까라면 깐다는 정신으로 인간 한계를 부정하는 극한 노동을 일삼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 77명이 있습니다.
  최교수는 깐다이즘은 보수와 진보 가리지 않고 ‘성장주의’에 빠진 모든 정권은 온당한 제도를 제공하지 않은 채 노동자에게 초인적 노력으로 목적을 달성하라고 강제한다고 보았습니다. 현재 노동시장에는 사회가 도덕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비정규직, 파견직, 하도급직, 특수고용직이 넘쳐납니다. 이는 노동자의 자발성을 훼손해서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소명 의식을 갖고 헌신할수록 삶은 가혹해지고 결국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이윤은 노동 착취가 아니라 혁신을 통한 가치 창출에서 나옵니다. 그런데도 CEO를 자처하는 경제인이 장악한 한국의 거의 모든 조직은 노동 단가 후려치고, 인력 감축하고, 과잉 노동시켜 이윤을 남깁니다. 강제 노동으로 이윤을 착취하는 사실상의 노예제인 셈입니다. 이 시간에도 수많은 김용균이 노예주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깐다이즘을 실천하다 홀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중대재해법 제정 정도가 아니라, 비상시국에 빠진 ‘노예제 일상’을 해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합니다.

▪ 예수의 복음
  서기 70년 로마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성전은 붕괴되고 아수라장이가 된 도성은 그야말로 절망의 끝판 왕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새싹조차도 잘려나간 현실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디계시냐며 탄식하는 소리가 거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참혹한 상황이었기에 누구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마가는 대중들의 눈길을 광야로 돌립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소리였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민중들은 그 소리를 따라 광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간소한 옷차림에 소박한 먹을거리로 삶을 유지하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직 이스라엘을 구원할 희망을 찾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구약의 예언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마침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서 메시야가 오신다는 약속을 믿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한이 메시야로 생각되어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당신은 메시야가 아니며 당신 뒤에 오시는 분이 계신데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요한은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당신은 그분의 신발 끈도 풀고 맬 자격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예언은 적중되었고 요한의 믿음과 고백으로 예수는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게 됩니다. 예수의 등장은 전적으로 요한의 간절한 믿음, 나아가 민중들의 갈망과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희망은 그렇게 누군가의 간절한 믿음을 통해서만 오는 법입니다.    
 
▪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우리나라는 산업재해로 한 해에도 2400명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루에 7명이 일하러 갔다고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납니다. 거기엔 막 직업전선에 나간 청년들도 많습니다. 참담한 나라입니다. 이게 경제 대국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도 정치권과 기업도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이에 보다 못하고 나선 분들이 계십니다. 다름 아닌 산재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입니다. 이들은 하나 밖에 없는 자녀를 잃은 부모들입니다. 그 무엇을 한들 죽은 자식이 돌아오겠습니까? 자식을 지키지 못한 것이 못내 한스러울 뿐입니다. 이들이 엄동설한에 곡기를 끊고 차가운 길바닥에 나앉았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명료합니다. 더 이상 일하다가 일터에서 죽는 노동자가 없는 작업환경을 안전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 어떤 노동자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아들이며 딸이요 어머니요 아버지이며 아내요 남편입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하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다시는 없었으면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은 죽음을 넘나들면서도 자기 같은 아픈 사람이 나오지 않는 사회를 염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죽어 너를 살린다는 십자가 정신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얼마나 거룩한 사람들입니까? 

▪ 제가 단식기도회에 참여하게 된 이유
  고 김용균님의 어머니 김숙님이 단식에 들어가면서 한 기자회견을 보았습니다. 그의 발언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록과도 같았습니다. 용균이 같은 젊은이가 단 한 사람도 일하다가 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이렇게 젊은이들이 죽임당하는 사회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단식에 들어간다며 솔직히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도와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그 말씀이 저에겐 하나님의 소리로 들렸습니다. 위로를 받아야할 분들이 죽음을 막기 위해 자신을 던지고 나섰습니다. 그냥 저분들 옆에 앉아라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1일을 그들 곁에서 함께 굶고 함께 찬바람을 맞았습니다. 그들의 아픈 신음소리를 들었고 그들의 눈물과 선한 양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희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겐 큰 은총이었습니다. 
  다음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서 단식에 나섰습니다. 한 해에도 2.4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가는 사회가 정상입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정권을 세우고 국회의원을 세운 것 아닙니까? 문정권은 사람이 먼저라는 슬로건을 걸고 시작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사람이 아닙니까? 이들은 기계입니까? 자본을 축적하는 도구에 불과합니까? 권력은 한 번도 민중들 편에 서본 적이 없습니다. 국민 77%가 찬성하고 국민 10만 명이 청원하여 제안한 법입니다. 이 법의 제정은 이 사회의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은 종교, 특히 개신교 진영의 뜻을 모으기 위해서 단식에 참여했습니다. 이 일은 어느 정도 성사되었습니다. 늦게 합류한 김은경 목사는 기장 부총회장으로 기장 총회장이 다녀가는 등 기장을 견인해주었습니다. 종교환경회의를 통해 5개 종단을 불러들였고 개신교회는 통합측이 성명서를 냈고 성공회 대주교님이 다녀가셨고 감리교회는 감리회목회자모임새물결이 기도회를 갖고 입장문을 냈으며 선교국 총무가 다녀갔습니다. 예수살기 등 기독교 300여개 사회선교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입장문을 냈습니다. 현장에 다녀간 목회자만도 100여명이 넘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습니다. 

▪ 기도의 신비
마더 테레사의 <기도는 기쁨입니다.>로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사랑을 / 비추어주는 햇빛과 같습니다.
기도는 영원한 / 생명을 향한 희망입니다
기도는 여러분 모두와 / 나를 위해서 타오르는 / 하느님 사랑의 불꽃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이것이 가장 훌륭한 / 사랑의 방법이니까요.
오늘 하루도 하느님의 / 사랑의 빛으로 가득하기를!

기도는 하나님의 소리에 대한 경청입니다. 김미숙님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저를 도와주세요”라는 호소를 하나님의 소리로 들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향한 사랑입니다. 종교진영을 대표해서 11일간 단식에 참여하였습니다. 기도로 열고 기도로 마치면서 이 모든 일 위에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단식하는 분들에게 힘을 주시길, 정부와 정치권을 움직여 주시길, 국민들의 마음을 깨워주시길, 거룩한 마음들이 모여지길, 이 강고한 벽을 넘을 수 있기를 .....
2021. 1. 8. 5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을 빼고 중대재해처벌법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인간관계, 직장 내 괴롭힘, 5인 사업장 적용 제외, 벌금 하한선 제외 등 핵심사항은 대부분이 빠진 채 누더기 법안이 되어 제정되었습니다. 절반의 성공입니다. 

같이 단식에 동참했던 유가족들은 기도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보식 잘하고 다시 만나자며 우정이 쌓였고 마음의 깊은 교감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살을 에이는 강추위 속에서도 절반의 걸음을 수용 지지하였고 다시 힘을 모아 걷자고 결의를 다졌습니다. 

주현절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이젠 아기의 모습으로 혹은 노동자의 모습으로, 거지의 모습으로, 나병환자의 모습으로, 우리 중에 가장 작은 자들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자세히 뜯어보지 않으면 누가 예수인지 모르기 때문에 통찰력을 가져야하지만 아예 모든 존재를 예수로 여기고 살아간다면 뛰어난 통찰력이 없어도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작은 예수로 믿고 그를 대하고 존중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변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될 것이며 그 삶은 세상을 변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신비를 다시 생각합니다. 기도는 희망이요. 기도는 하나님 사랑의 불꽃입니다. 오늘 하루도 이 땅에 여러분의 가정과 삶터에 하나님 사랑의 빛으로 가득하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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