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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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 백창욱
  • 승인 2021.01.0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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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21. 1. 3) 성탄절 후 두 번째 주일

신축년 새해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성서에서 소는 희생제물의 대명사입니다. 소는 언제나 사람 목숨을 대신해서 자신을 살라 바칩니다. 자신을 모두 바치는 번제든, 하나님과 화목하는 화목제든, 자신의 죄를 씻는 속죄제든 사람 대신 소가 제물이 됐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자기 목숨을 대신해 주는 소가 더없이 귀한 존재입니다.  

소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 목숨까지 구했습니다. 사무엘상 초반에 벳세메스 소 이야기가 나옵니다. 블레셋 족속이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승리하여 법궤를 탈취했습니다. 그런데 이 법궤가 전리품이 아니라 재앙이었습니다. 법궤가 있는 도시마다 악성종양이 번져서 사람들이 망할 지경이 됐습니다. 블레셋은 할 수없이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전리품을 돌려보낸다는 것은 전쟁을 무효로 돌린다는 뜻입니다. 승전국이 전쟁승리를 무효로 돌리는 건 대단한 불명예지만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돌려보내는 사례조로 금으로 악성종양 모양을 만들어서 수레에 실고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수레에 매서 이스라엘 벳세메스로 올라가게 합니다. 이 소는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본 적이 없고 또 새끼 송아지와 강제로 떼어졌지만 큰 길에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벗어나지 않고 구슬프게 울음소리만 내면서 똑바로 벳세메스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벳세메스 여호수아의 밭에서 번제물로 살라서 주님께 바쳐집니다. 소의 장렬한 죽음으로 사태는 종결됩니다. 블레셋은 재앙에서 벗어납니다. 고대부터 지금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 세상에 소만큼 고마운 짐승이 있을까 싶습니다. 벳세메스 소처럼 우직하게 뚜벅뚜벅 주님이 지시하신 길을 가다보면 우리도 세상을 구원하는 길잡이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를 칭하는 문장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은혜와 진리입니다. 
“14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16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요한은 어떤 뜻에서 예수와 은혜 진리를 등가로 말하나요? 왜 예수는 은혜와 진리라고 반복해서 말하나요? 
요한작가는 마가와 마태, 누가가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복음서를 씁니다. 이미 세 복음서를 통해 예수를 충분히 고백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 작가는 전혀 다른 언어로 예수를 고백합니다. 그들만의 특별한 삶의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첫 시작에서 예수님의 기원을 태초로 소급합니다. 그 서술이 바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1:1)입니다.  

제일 처음 나온 마가는 곧장 요한의 광야의 소리부터 시작해서 예수의 행적을 군더더기 없이 서술했습니다. 마태와 누가는 군더더기를 붙였습니다. 탄생이야기와 족보를 덧붙이고, 마가가 쓴 예수의 행적에 대해서도 가공을 많이 했습니다. 모두 예수가 그리스도 되시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유다계 예수파들은 삶이 결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장 큰 일은 예루살렘이 망한 일과 유다교에서 추방당한 일입니다. 유다계 예수파들도 예루살렘과 유다교가 삶의 기반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을 지탱하는 구심점 두 가지를 모두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삶의 기반이 뿌리 채 뽑혔습니다. 이 때 이들의 심리, 정서상태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은 존재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유다계 예수파들은 예수에게서 길을 찾았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유명한 진술인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 14:6)같은 고백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오늘 본문, 10-12절은 이스라엘 속에서 버림받은 존재가 돼버린 그들의 처지가 담겨 있습니다. 세상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듯이 자신들도 버림받았다는 소회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맞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그렇다는 고백입니다. 13절에서 혈통, 육정, 사람의 뜻은 유다교의 믿음, 문화, 사고방식, 정서, 생활 등 모든 것을 말합니다. 유다인들은 그 울타리에서 혈통으로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쫓겨난 자신들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 자녀가 됐습니다. 백성보다는 자녀가 훨씬 우위입니다. 그리고 자신들 속에는 태초의 말씀이자, 외아들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함께 사신다고 고백합니다. 이들은 예수 안에서 새롭게 완전히 동화된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은혜와 진리의 원천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믿음의 궁극적 산물입니다. 우리는 왜 신앙을 갖나요? 왜 믿음을 구하나요? 은혜와 진리 안에서 살기 위함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율법, 죄, 정죄, 심판, 인과응보 대신에 사랑 용서 관용 이해 참음이 사람이 살 길임을 알려줍니다. 은혜와 진리는 믿음의 궁극입니다. 은혜와 진리를 만남으로 율법세계에서 떠난 게 오히려 잘 된 일이 됐습니다. 이렇게 예수파들은 추방당한 소수자, 외톨이, 떠돌이가 된 처지를 예수에 대한 찬란한 고백으로 역전시킨다. 요한은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믿음의 길을 찾아냈습니다. 은혜와 진리의 믿음으로 삶의 자리를 지키고 견디고 살아갔습니다. 

이 고백이 일세기 예수파만의 고백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의 고백으로 이어받고 승화시키십시오. 올 한 해 은혜와 진리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십시오. 우리 안에 소같은 우직함과 끈기에다 믿음의 원천인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시오. 예수 믿는 보람을 은혜와 진리로 구현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일설교문(21. 1. 3) 성탄절 후 두 번째 주일, 요한 1:10-18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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