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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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원
  • 승인 2021.01.0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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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서일과>
이사야 60:1-6, 에페소서 3:1-12, 마태오복음 2:1-12 (시편 72)

“그들은 별을 보자 기쁨에 넘쳐 대단히 반가워했다.”(마태2:9)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새로운 '왕'을 경배하러
먼 길을 좇아 찾아옵니다.​

가자. 큰 별 보고 떠나자. 이 모순의 세상 뒤엎을, 해방의 길 떠나자. 예수 찾아 어둠의 길 떠난 동방박사들처럼.
가자. 큰 별 보고 떠나자. 이 모순의 세상 뒤엎을, 해방의 길 떠나자. 예수 찾아 어둠의 길 떠난 동방박사들처럼.

그 새로운 왕, 단순한 왕이 아니지요.
단순히 정권을 교체하는 새 군주가 아닙니다.
그분은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로서의 왕입니다.

​왜 구세주냐?
세상이 망하게 생겨서지요.
구세주 와야 할 이유는
지금의 세상이 잘못된 질서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창조질서는
상생(相生)의 질서요 공생(共生)의 질서이건만
사람들은
빼앗아 자신을 챙기고 살찌우는
기생(寄生)의 질서를 구축했습니다.
하여 새로운 왕은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와 질서를 바꿔 바로잡는 분입니다.

​이 새로운 왕을 환호하며 맞아들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복음은 그들을 ‘술렁거리는 이들’이라 표현합니다.
힘의 질서, 기생(寄生)의 질서 꼭대기에 앉아 있는 이들은
유별나게
이 새 질서(아니 원질서)를 거부합니다.
복음의 헤로데와 그 주변 보좌진들. 한마디로 기생적 질서의 수혜자들이 그렇습니다.
(오늘의 정치·기업·언론·검찰·법조 수구세력처럼)

​헤로데는 마침내 새 왕을 제거하는 데까지 나갑니다.
세상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려 내미는 구원의 손을
뿌리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싹둑 버혀내 버립니다.
당장 자기 것 빼앗기고 자기가 손해 보는 것 같은
그 알량한 울컥심정에
삶을 내맡기는 거지요.

하지만
늘 진리 사모하고 진리 앞에 자신을 개방하여
자기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가 나와 세상의 궁극 행복을 보장한다는 사실 앞에서
당장의 불편과 손실을 기꺼이 감수합니다.
모험을 감행합니다.

복음의 동방박사들이 그러한 이들입니다.
매일 별을 보았습니다.
진리를 사모한 것입니다.
기어이
큰 별을 보자 불쑥 따라나서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끝내 큰 기쁨으로 예수를 만나지요.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내어놓아 경축합니다.

​오늘을 사는 신앙인(信仰人) 나는 어떤지요.
헤로데 일당처럼
예수라는 새 질서를
코로나 대하듯 거부하거나 불편해하는지,
아니면
이방 박사들처럼
예수라는 뒤집는 질서 사모하여
새 백신 대하듯 뛸듯이 기쁘게 받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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