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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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화해
  • 김경호
  • 승인 2020.12.15 0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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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3.강남향린교회 주일설교 대림절 셋째주일/인권주일

에베소서 2:14-18
#강남향린교회 #주일설교 #하나님과의화해 #세계인권선언
#인권주일 #화해의십자가 #우주적그리스도

오늘은 인권주일이다. 인권주일은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을 기념하고 인권의 기본 정신을 널리 펼치기 위해서 한국교회가 각 교단별로 제정하여 지키는 날이다. 먼저 유엔총회에서 제정한 세계인권선언문을 살펴보자.

인류가족 모두의 존엄성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다. 인권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만행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했던가를 기억해보라. 인류의 양심을 분노케 했던 야만적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오늘날 보통사람들이 바라는 지고지순의 염원은 ‘이제 제발 모든 인간이 언론의 자유, 신념의 자유, 공포와 결핍으로 부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리라. 유엔헌장은 이미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과 가치, 남녀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했고, 보다 폭넓은 자유 속에서 사회진보를 촉진하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키자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도대체 인권이 무엇이고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는가? 유엔총회는 이제 모든 개인과 조직이 이 선언을 항상 마음속 깊이 간직하면서, 지속적인 국내적 국제적 조치를 통해 회원국 국민들의 보편적 자유와 권리신장을 위해 노력하도록, 모든 인류가 ‘다 함께 달성해야 할 하나의 공통기준’으로서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한다.

1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2조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 이 선언에 나와 있는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3조 모든 사람은 자기 생명을 지킬 권리, 자유를 누릴 권리, 그리고 자신의 안전을 지킬 권리가 있다.
4조 어느 누구도 노예가 되거나 타인에게 예속된 상태에 놓여서는 안된다. 노예제도와 노예매매는 어떤 형태로든 일절 금지한다.
5조 어느 누구도 고문이나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모욕, 형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6조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7조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차별 없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8조 모든 사람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 법원에 의해 효과적으로 구제받을 권리가 있다.
9조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체포, 구금, 추방을 당하지 않는다.
10조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범죄인지 아닌지를 판별 받을 때,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정에서 공평하고 공개적인 심문을 받을 권리가 있다.
11조 범죄의 소추를 받은 사람은 자신을 변호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보장받아야 하고, 누구든지 공개재판을 통해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될 권리가 있다.
12조 개인의 프라이버시, 가족, 주택, 통신에 대해 타인이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 되며, 어느 누구의 명예와 평판에 대해서도 타인이 침해해서는 안 된다.
13조 모든 사람은 자기 나라 영토 안에서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살 수 있다. 또한 그 나라를 떠날 권리가 있고, 다시 돌아올 권리도 있다.
14조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타국에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에 망명할 권리가 있다.
15조 누구나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다. 누구든지 정당한 근거 없이 국적을 빼앗기지 않으며, 자기 국적을 바꾸거나 다른 국적을 취득할 권리가 있다.
16조 성년이 된 남녀는 인종, 국적, 종교의 제한을 받지 않고 결혼할 수 있으며, 가정을 이룰 권리가 있다. 결혼에 관한 모든 문제에 있어서 남녀는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
17조 모든 사람은 단독으로 또는 타인과 공동하여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 누구나 자의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빼앗기지 않는다.
18조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19조 모든 사람은 의사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20조 모든 사람은 평화적인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21조 모든 사람은 직접 또는 자유롭게 선출된 대표자를 통해, 자국의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라의 공직을 맡을 권리가 있다.
22조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
23조 모든 사람은 일할 권리,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권리, 공정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일할 권리, 실업상태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동일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다.
24조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인 제한과 정기적 유급휴가를 포함하여, 휴식할 권리와 여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
25조 모든 사람은 먹을거리, 입을 옷, 주택, 의료, 사회서비스 등을 포함해 가족의 건강과 행복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
26조 모든 사람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초등교육과 기초교육은 무상이어야 하며, 특히 초등교육은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부모는 자기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을지 ‘우선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27조 모든 사람은 자기가 속한 사회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즐기며, 학문적 진보와 혜택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
28조 모든 사람은 이 선언의 권리와 자유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체제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다.
29조 모든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 의무를 진다.
30조 이 선언에서 말한 어떤 권리와 자유도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위해 사용될 수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남의 권리를 파괴할 목적으로 자기 권리를 사용할 권리는 없다.

세계인권선언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인권문제의 기준이 되고 있고 각 나라마다 법률을 제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72년이 지난 몇 가지 보완해야할 문제점들도 드러나고 있다. 모든 선언의 시작은 “모든 사람은...”이라고 개인의 권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인권을 보장한답시고 작은 나라들, 특별히 유엔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입맛에 맞지 않는 나라들은 ‘인권’이 그들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또 다른 기준이 되기도 했다. 인권이라는 숭고한 말이 반미국가들을 제거하는 명분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특히 한반도의 북쪽에 가해진 집요하고도 무자비한 보복은 그들의 인권을 운운하면서 수많은 북녂동포들을 기아와 질병, 핵전쟁의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폭력으로 쓰이고 있다.

지금 인권의 개념은 생명권의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이 제정될 당시는 생각지 못했던 지구오염과 생태환경의 문제 등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점차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인권을 생명권과 분리해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 가고 있다. 코로나로 1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누굴 미워하거나 탓할 수도 없는 억울한 죽음이 쌓이고, 시신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생태계의 권리를 인간이 침해함으로 오는 대 재앙이다. 생태계와 분리된 인권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28일 ‘2050년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탄소 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상쇄되어 순 배출량이 제로가 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화력 발전소를 여러 곳에서 건설 중이다. 탄소제로를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후속 계획이 나와야 한다. 지금 민심이 흔들리는 것은 실제로 개혁해야할 일들에서 뒤로 물러나거나 기업의 편을 들거나 머뭇거리기 때문이라는 것을 새겨야한다. 선언과 현실 사이의 괴리만큼이나 우리가 싸우며 나아가야할 머나 먼 길이 보인다.

이제까지 기독교 신학이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고 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십자가를 대속의 의미 보다는 화해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교회는 십자가에 대해 바울 식의 대속론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에베소서나 골로새서의 십자가론은 바울의 해석을 넘어서 보다 심오하고 확장된 의미를 찾는다.

그리스도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고 한다.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허무셔서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허무셨고, 원수된 것을 없애시며,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셨다. 이것은 갈라진 것, 원수된 것의 소멸을 위해서인데, 우리들끼리 적대하는 행위를 멈추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화해”라고 한다. 골로새서도 십자가를 평화라고 하며,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들 사이에 원수된 것을 소멸시킬 뿐 아니라 이 세상 피조물들과 적대적 관계 안에 있는 우리를 만물과 화해시키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물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습니다(골 1:19-20).

우리는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한다. 이는 그리스도는 세상을 구원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만물 안에서 만물이 하나님의 신성으로 충만하게 만드시는 새 일을 펼치신다. 만물이 이렇게 새로워지는 근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다. 십자가의 피로 이루신 평화로 만물 안에 서로 상충되고 적대하는 모든 것들을 평화롭게 하시고 조화롭게 하시며 하나님 안에 화해하게 만드신다. 자신의 생명을 비워 만물의 생명을 가장 충만하게 만드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비움이다. 인간처럼 게걸스럽게 자기 욕심을 위해 다른 생명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만물이 생명 충만한 상태가 되게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비우신다는 새로운 십자가론 앞에 오늘의 기독인들은 부름 받는다. 오늘의 인권은 이 만물과의 화해 없이 동떨어진 인간만의 인권일 수 없다. 모든 생명과 연관된 보다 큰 생명권 안에서 우리의 인권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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