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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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 백창욱
  • 승인 2020.12.15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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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20. 12. 13) 대림절 세 번째 주일
요한 1:6-8, 19-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오늘 복음본문에서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요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세 보니까 다섯 번 묻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묻는 내용이 똑같습니다. “당신은 누구요?”입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19절에 유대사람들이 사람을 보내 요한에게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어보게 하였다. 
21절 그들이 다시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아니요 하자, “당신은 그 예언자요?”하고 그들이 물었다. 
22절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좀 해주시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시오?” 질문의 강도가 점점 세집니다. 
25절 그들이 또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면, 어찌하여 세례를 주시오?” 이 질문도 ‘세례를 주는 당신은 누구냐’는 내용으로 앞 질문과 같습니다. 
줄기차게 묻는 내용이 하나입니다. ‘당신은 누구냐’고 집요하게 묻습니다. 

진밭교 아침기도회
진밭교 아침기도회

요한의 이야기 상대는 제사장들과 레위지파 사람들이지만 제사장들이 스스로 말하듯이 자신들을 보낸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그 실권자는 유대 사람들이라고도 하고(19절), 좀 더 구체적으로는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24절) 
요한복음에서 자주 나오는 유대 사람들은 일반 대중인 유대사람들이 아닙니다. 성전이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진 성전세력 대신 유대사회 주류가 된 바리새파들을 칭합니다. 요한복음 배경에는 이들 바리새파와 예수의 갈등이 깔려 있습니다. 

이들은 어찌하여 요한의 정체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보나요? 그 단서는 요한의 답에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 물었을 때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라고 답합니다. 왜 이렇게 답할까요? 그들의 관심사가 그리스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당신은 누구요?’ 라는 물음에는 ‘당신은 그리스도요?’ 라는 속내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메시아 갈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군대에 지배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들을 해방해 줄 메시아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의 관심사는 이스라엘 대중과는 또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오늘날 정치인의 관심사가 대중의 관심사와 같은 듯 다른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요? 바리새파의 관심사는 누가 메시아 담론을 주도하는가? 입니다. 바리새는 대중이 갈망하는 메시아 대망론을 자신들이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정치 목적이 있습니다. 왜 자신들이 유지해야 하나요? 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이 최고로 관심하는 사안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선거에 당선되고 권력을 잡듯이, (그렇게 권력을 잡으면 사안을 제대로 해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이용만 해 먹어서 문제다.) 권력유지를 위해서는 자신들이 메시아 대망론을 주관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가 요한에게 수하를 보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요한이 대중의 관심을 끌며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떠오르자 긴장하며 그를 견제하고자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의 집요한 추궁에 요한의 답은 어떤가요. 바리새의 계속되는 물음에 요한은 정직하게 응수합니다. 요한에게 정치적 야심이 있다면 바리새의 질문을 적당히 이용하고 저울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한결같이 응대합니다. 애매모호하게 말할 수도 있고 시인도부정도 아니게 말할 수 있는데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고 분명히 답합니다.

어제 진밭교 아침기도회 본문에도 엘리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엘리야는 어떤 존재인가요? “엘리야는 북왕국 이스라엘 왕조의 대표적인 폭군 아합왕 때 활약한 전설적인 예언자다. 귀족은 물론이고 모든 백성이 아합의 권세에 눌려 찍소리 못할 때 엘리야만이 고군분투하며 왕과 맞섰다. 야웨를 배반하고 우상숭배에 열 올리는 아합을 견제한 유일한 예언자다. 그러니 왕의 폭압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엘리야의 존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고 나라를 구할 희망이었다. 이 정서가 전통이 되어서 이스라엘은 새 세상의 도래를 엘리야의 현존과 동일시했다. 좋은 세상이 오려면 엘리야의 강림이 우선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복음서에서 메시아 담론에 엘리야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에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요한도 이 메시아담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처신하면 대중의 인기를 누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진실했습니다. 호리라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척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그요? 하고 물을 때, “아니오”라고 단호히 답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기에 요한의 태도는 귀감입니다. 우리가 어떤 자세로 주님을 기다려야 하는가에 대해 분명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갈망하는 메시아 관심이 뒤에 오실 분을 향하도록 겸손히 자신을 낮춥니다. 요한은 자신이 누구냐는 정체의식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27절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만한 자격도 없소” 그리고 무엇보다 요한 자신이 자기 뒤에 오실 분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솔직하게 자기보다 큰 사람을 겸손히 사심없이 빈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요한은 그 몇 안 되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안 오셔도 아쉬울 것 없는 태도로 기다리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진정 그 분이 오셔야만 한다는 간절한 기다림이 주님의 위로를 얻습니다. 그분이 다양한 은사로 채워주십니다. 무엇보다 진실하게 분명한 의지로 기다리십시오. 그럴 때 기다리는 나에게도 오실 분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요한의 기다림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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