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제자를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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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제자를 부르다
  • 백창욱
  • 승인 2020.12.0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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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 진밭교 아침기도회(마태 10:1-4)

삼년 전 오늘, 국가보안법 재판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이 났다. 2012년 9월 20일 압수수색부터 시작한 사건이 장장 6년 만에 끝이 났다.

긴 세월 고생했지만 국보법 무죄판결이 10%에 불과하다는데 공안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최대 고비는 일심에서 유죄판결 받았을 때다. 2016년 10월 28일 대구지방법원 염경호판사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평통사 활동 혐의도 같고 공소사실도 비슷한 다른 지방법원에서는 모두 무죄인데 염경호 판사만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역시 대구는 다르구나 실감했다. 일심판결 이후 잠시 동안 흔들렸다. 도저히 판결을 인정할 수 없지만 이 재판의 고역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재판이 앞으로도 얼마나 생사람을 잡을까를 생각하니 진저리가 났다. 일심 유죄가 이심에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통상적 예단도 작용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생각이 나를 붙잡았다. 재판 내내 나의 유죄를 입증하려고 공권력의 우위를 과시하며 억지재판을 끌어가던 공안검사들(그들은 기소장까지 변경하고 끊임없이 추가의견을 내며 엄청난 양의 재판서류로 괴롭혔다). 그들이 자기들 뜻대로 됐다고 득의양양할 것을 생각하니 그들이 좋아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항소를 포기하면 일심유죄 사례로 또 얼마나 다른 엄한 사람들을 괴롭힐까를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났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비록 진창에서 악전고투를 하더라도 적어도 내 차원에서 이 시대착오적, 말도 안 되는 국가보안법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었다. 그 뒤 항소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지막지한 재판서류와 재판에서 표정 없는 공안검사와 악전고투를 했지만 변호사 두 분의 적극적인 변론과 고생한 보람이 좋은 결과를 얻었다. 2017년 8월 11일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그 해 연말에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것이다.
 
노무현정부 때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기회가 있었으나 ‘국보법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독소조항만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붙어서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그 뒤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물 만난 공안들은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이 국보법을 휘둘렀다. 기반이 허약한 정권은 국면전환이나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이나 사업을 반대하는 시민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국보법을 악용한다. 국가보안법이 실제 나라를 안보하는 게 아니라 정권유지용으로 전락한 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무시 못 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공안집단이다. 이들도 나라밥으로 먹고 살기 때문에 항시 공안의 존재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이 있다. 그래서 생사람을 잡든 어떻든 간에 기획을 하고 조작을 하고 작전을 짜서 공안사건을 만들어낸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고문을 해서 억지자백을 받아 냈지만 고문을 하지 못하는 오늘날은 훨씬 교묘하게 유사 합법적으로 사건을 꾸민다. 결국 시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역사에서 사라지게 하는 길은 정권의 결단뿐이다. 그런데 문재인정권은 정권 내내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우리가 사람을 잘 못 봤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상 국가보안법은 역사의 퇴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그때까지 깨어 있는 민주시민들이 국보법 폐지하라고 끈질기게 촉구하는 수밖에 없다. 

또 하나. 국보법의 피해자들은 대개가 평범한 시민들이다. 연줄이 좋다거나 이름만 대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공안이 어떤 사람을 국보법으로 걸때는 배경 없는 만만한 사람을 고른다. 그래야 상대하기 수월하고 유죄로 몰아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보법 폐지 역시 평범한 민주시민이 들쳐 일어나야 한다. 

오늘 복음은 예수가 열두 제자를 부르는 대목이다. 열두 제자의 목록이 나온다. 명단의 특징이 보이는가. 지금은 열둘이 예수 다음으로 유명한 사람이 됐지만 처음 등장할 때는 완전 평범한 이들이다. 복음저자도 이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이름만 나열한다. 고작 소개하는 게 형제라거나 직업이 있는 사람은 직업을 말하고 동명이인은 아버지 이름이나 지역 이름으로 구분할 뿐이다. 그만큼 각자 인물에 대해 소개거리가 신통치 않은 것이다. 그러나 별로 내 세울만한 게 없는 이 ‘열둘’이 세계를 뒤집었다. 하나님나라 운동의 전위대가 됐다. 이들은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행사했다. 민중에게 가장 절실한 일을 했다. 기존질서에서는 특색 없는 무명이지만, 새로운 세상에서는 이들 만한 존재감이 없다. 예수 다음에는 이들이 하나님나라 운동을 확장시킨 핵심들이다.  
     
사드철거투쟁을 하는 우리도 모두 평범한 이들이다. 저명한 인사나 도력이 깊은 종교인이나 영향력있는 사람이 사드철거투쟁을 하면 좋을텐데, 이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무심히 쳐다 만 볼 뿐이거나 입으로만 좋은 말(그래서 하나마나한 말)을 해 댈 뿐이다. 사드철거투쟁에서 우리가 유명하지 않다고 낙심하지 말자. 실제 세상을 바꾸는 이들은 무명시민들이다. 열둘처럼 새 세상에서 존재를 빛내자. 무명의 힘으로 사드 없는 세상을 만들어내자. 무명인이었던 예수가 우리 편이다. 아멘.

본 글은 소성리 진밭교 아침기도회(2020.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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