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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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쓰신다
  • 양재성
  • 승인 2020.12.0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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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태계 보호 위해 공생공빈의 길로 나아가야(마가복음 11장 1~11절)

▪ 24절기(소설小雪)

  우리나라 절기는 소설小雪을 지나 대설大雪로 가고 있습니다. 이제 완전히 겨울에 들어섰습니다. 나무는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에 열심히 길러 온 열매를 주인에게 건네줍니다. 그리곤 자신을 키워온 나뭇잎과 작별을 고합니다. 나뭇잎은 떨어져 뿌리를 덮는 이불이 됩니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심으로 일하여 나무와 나뭇잎을 키우고 그 덕에 나무는 열매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나무는 겨울에 그 열매마저 주인에게 돌려주고 명상의 자리에 듭니다. 하늘로만 생각을 키워 온 나무가 이제 저 땅 속 깊은 흑암을 더듬거리며 명상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찰입니다. 뿌리를 살피지 않으면 다음에 나무는 자랄 수가 없고 꽃을 피우지도 열매를 얻지도 못하게 됩니다. 뿌리라 함은 근본을 살피는 일입니다. 자연만물은 나무의 일생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겨울이 오는데 나무가 왜 옷을 벗는지 이제 그 이유를 알 듯합니다. 자신을 길러준 뿌리에 대한 고마움이며 겨울을 맞아 함께 길을 가기 위함입니다.  

▪ 대강절代降節

  교회 절기로 대강절이 시작되었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앞으로 네 주간을 기다려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통째로 보여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보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린 지금 누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림이 일상입니다. 
  시인 장석주는 기다림은 지금 여기 없는 당신을 좋아한다고 선포하는 것, 당신이 온다면 내가 행복해질 거라는 확신 속에서 부재하는 당신에게 환대를 약속하는 것이요, 환대의 본질은 타자他者를 인정함이고, 타자의 존엄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락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환대는 그 누군가를 위해 음식과 잠자리를 마련하고, 그의 기쁨을 위해 준비함이며, 환대는 당신을 의미의 존재로 지극한 모심이고, 그 현 실태는 친절의 베풂과 배려함이랍니다. 진정한 환대는 보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환대의 보답을 요구하는 것은 거래가 되기 때문입니다. 대강절은 귀한 손님을 기다리며 그를 환대하는 절기입니다. 

▪ 예루살렘 입성

  예수의 운명도 참 기구합니다. 예수는 로마제국의 학정 하에 먼 길을 여행하여 태어나셨습니다. 그것도 나으실 곳이 마땅치 않아 여관집 마구간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 뉘어졌습니다. 이는 예수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실지 미리 보여준 예시입니다. 먹이통에 뉘어졌다함은 짐승의 먹이로 세상에 오셨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는 세상에 먹혔고 그를 먹는 자는 영원히 사는 복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먹은 제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붕괴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예수는 먹혀 세상의 평화를 세우고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오늘 마가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3년의 공생애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사역을 마무리해야하는 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듯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명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예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내 때가 아직 아니라고 항변하기도 했고 이 잔을 좀 지나가게 해달라고 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선명해지는 길을 어쩌지 못하고 숙명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때는 유월절입니다.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이집트의 종살이 하던 땅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방을 선포하고 애굽을 탈출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부활절과 같은 절기입니다. 나중에 유월절은 부활절로 대체됩니다. 
  이 날을 디데이로 정하신 것은 의미가 새롭습니다. 선조들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하였듯이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할 것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바로 그 유월절의 어린양입니다. 희생 제물로 바쳐질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장렬히 산화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하고 구원하실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 나귀새끼

  예수는 제자들에게 가서 나귀새끼를 끌어오라고 명합니다. 주인이 뭐하고 하면 주께서 쓰시겠다고 말하라고 일어주십니다. 실제 그리하니 나귀새끼의 주인이 기꺼이 나귀새끼를 풀어 제자들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나귀새끼를 끌고 오니 제자들은 겉옷을 벗어 나귀새끼의 등에 깔고 군중들은 옷을 벗어 가시는 길 위해 깔았습니다. 예수는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군중은 나뭇가지를 꺾어 흔들면서 호산나 찬송하며 예수를 환영합니다. 전통적으로 왕을 환영할 때 하는 의식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환영인파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저녁나절이 되어서 예수와 제자들은 베다니로 가십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메시아가 오는데 그는 겸손하여 나귀새끼를 타고 온다는 말을 토대로 마련된 퍼포먼스입니다. 
  들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예수는 처음엔 나귀어미를 타고 입성하였는데 환영인파가 하도 많으니 나귀어미가 자기를 열렬히 환영하는 줄 알고 우쭐대다가 그만 예수님을 떨어뜨려 예수께서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나귀새끼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환영인파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있는 힘을 다해 성심으로 주인이신 예수를 태우고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 주께서 쓰신다

  오늘 저는 나귀 새끼의 주인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사전에 그리 말을 맞춘 것인지를 몰라도 아마도 정황상 그리 한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만 낯선 사람들이 와서 나귀 새끼를 푸는데도 주께서 쓰시겠다는 말 한마디에 나귀새끼를 내 주는 주인의 모습이 달리 보입니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주님의 거룩한 행진에 내어 놓음으로 주님의 마지막 행렬을 지지하고 응원함으로 쓸쓸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낙후된 마을 발전을 위한 주민총회가 열렸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 중 결정된 사항은, 자기 집에 두 대 이상의 마차를 가지고 있는 주민은 한 대씩 마을을 위해 기부하자는 것과, 말과 마차를 보관할 창고가 있어야 하니 헛간을 둘 이상 가진 사람은 그 중 하나를 마을에 내놓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주민들은 대부분 찬성하여 가결하였습니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마을 공동재산이 불어나고 있던 중 그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주민이 머뭇거리면서 부끄러운 낯으로 일어났습니다. "나는 마을을 위해 바칠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고, 닭 두 마리가 있을 뿐인데 그 중 한 마리를 내놓아 마을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데 닭 두 마리 이상 있는 주민들은 한 마리씩 내놓기로 하면 어떻겠는가?"라고 제의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난한 농부의 제안은 표결에 붙이자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왜 마차를 내자는 의견과 헛간을 내자는데 대부분 찬성하던 사람들이 닭 두 마리 이상 가진 사람은 한 마리 씩 내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나타냈겠습니까? 그 마을 주민들 중에 말이나 마차를 내놓아야 할 만큼 많이 가진 사람은 몇 안 되었지만 닭은 누구나 한 마리 이상 다 갖고 있었던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올바르고 정의로운 것이라 하여도  정작 자기에게 불리하면 반대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입니다.

▪ 위대한 과업

  오늘날 지구 생명체는 지구온난화의 위협으로 붕괴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구 생태계는 멸망하든지 아니면 창조적 인간에 의해 생태대로 전환되든지 둘 중에 하나로 가게 됩니다. 그러기에 인류의 마지막 과업은 생태대로 전환을 돕는 일에 있습니다. 
  우리 시대 최대의 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는 현재의 생태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지구에 귀 기울여 지구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게(Geo-healing)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토마스 베리는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지구에서 정중하게 사는 법을 제대로 배워야만 수십억 년 동안 진화해 온 이 행성 지구, 이 거대한 생명공동체가 우리를 아낌없이 보살펴 주었듯이 우리 후손들 또한 보살펴 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생태대 실현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역할을 베리는 이렇게 분명히 강조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역할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베리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주가 우리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역사적 과업을 위하여 우리 힘을 능가하는 어떤 힘에 의하여 바로 이 시공간 속의 존재로 던져진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위해 지어졌고 쓰임 받도록 초청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은 우리에게 잠시 맡겨진 것이며 하나님의 역사인 위대한 과업에 참여하도록 구성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과도 같은 지구 생태계를 살리는 일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과업입니다. 이 일에 주께서 쓰시겠다고 부르시면 기꺼이 내어 드리는 헌신이 요청됩니다. 

▪ 2050 거주불능 지구

  <뉴욕매거진>의 부편집장이며 미국 싱크탱크기관인 <뉴아메리카>의 연구원인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가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2050 거주불능 지구>란 책을 펴냈습니다. 인류는 자연재해의 위협이 아닌 자연재해로 인한 대량 학살의 위협에 놓여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위협은 살인적인 폭염, 빈곤과 굶주림, 해수면 상승으로 집어 삼키는 바다, 치솟는 산불, 재난화된 날씨, 갈증과 가뭄, 죽음의 바다, 질병의 전파, 무너지는 경제, 기후분쟁, 시스템의 붕괴를 통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 대응으로는 화석연료를 저탄소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기후오염물질 신속히 감축, 생태계 보호 및 복원, 육식을 줄이고 채식확대, 탄소 없는 경제 실현, 사회 경제적 정의와 인구 안정화를 꼽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구 생태계 보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합니다. 녹색정치, 녹색교회, 녹색경제, 녹색마을, 녹색문화, 녹색활동이 절실합니다. 더 이상의 방심은 금물이며 고집은 모두가 망하는 길입니다. 주께서 쓰시겠다면 기꺼이 나의 시간, 나의 재능, 나의 소유, 나의 실력을 내어 드립시다. 하나님의 위대한 과업에 참여합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어떤 한 피조물로는 적절히 표현할 수 없었으므로 하나님은 무수히 다양한 피조물을 창조하여 한 피조물이 나타내지 못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다른 피조물이 나타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서는 단순하고 불변하는 선하심이 피조물 안에서는 다양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한 피조물보다는 온 우주가 ‘함께’라야 하나님의 선하심에 보다 완전히 참여할 수 있고 그 선하심을 더 잘 드러낼 수 있습니다.” 아퀴나스가 이렇게 우주의 완성이라고 지칭한 ‘다양성의 법칙’은 존재와 활동의 영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종교생활과 계시체험에도 해당한다고 베리는 보았습니다. 베리는 사상의 다양성과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합니다. 불교는 해탈(解脫)이 존재할 불토(佛土)를, 도교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유교는 인(仁)의 정치가 실현될 이상사회를 꿈꿉니다. 베리는 그리스도교의 하나님 나라가 이런 요소들을 배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초대하기

  사랑하는 가재울녹색교회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초유의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다시 팬데믹 상황으로 조심조심 삶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구 붕괴의 징조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닥쳐올 지구학살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이제 순교를 각오하고 지구 생태계 보호를 위해 공생공빈共生共貧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기꺼이 무엇이든 주님께 내어 드립시다. 이 일은 지구를 살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 위대한 과업에 참여하는 멋진 일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은총을 내리시길 기도합니다. 평화 .

가재울녹색교회 김응호장로 대표기도문

하나님!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림절 주일아침에 교회에 모이지 못하고 가정에서 예배드립니다. 몇 명이 모여 예배 하던지 저희가 드리는 예배의 자리에 임하시고 우리 예배를 받아주옵소서.

방역당국은 코로나 2차 대유행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수도권에서 많은 환자가 발생하고 있어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전염병이 물러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던지 그들은 언제나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지 우리 처지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고요. 초강대국 사이에 끼어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이 나라와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북한은 오랜 경제제재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남북이 슬기롭게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에  협력하며, 부와 권세를 대대로 누려오던 수구언론과, 초임검사만 되도 영감소리 들어가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칼자루를 휘두르던 세력들이 그동안 누려오던 것을 빼앗기지 않고, 다시 차지하려고 온갖 수단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검찰개혁을 준비해온 법무장관이 가족들까지 고통당하며 물러나고, 적법하게 대처하는 후임 장관도 연일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이땅에 억울한 사람이  많습니다. 청와대앞 찬 바닥에서 노숙하며, 세월호 진상을 밝혀달라는 유가족들, 사드 저지를 위해 농성하는 소성리 사람들, 일하다 죽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음주운전 차량에 희생당한 억울한 사람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정부가 적극 나서 해결해 주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말씀 증거하시는 담임목사님 위에 성령님 함께 해 주십시오, 어려운 시기에 교회가 해야 할 일과, 나갈 방향을 고민하는 목회자들 용기 주시고 건강 주십시오.

전염병의 위험에서 어린이와 젊은이 노인들 지켜주십시오. 속히 만나 같이 예배드릴 날을 기다리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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