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서일과>
로마서 10:12-18, 마태오복음 4:18-22 (시편 19:1-6)
18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가시다가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21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22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 4:18-22)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20,22절)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안드레아 사도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첫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이지요.
안드레아를 비롯한 일단의 어부들이 예수의 사람이 되는 과정은 복음서마다 약간 다르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공관복음은 어부들을 예수께서 '부르시고' 이들이 즉각적인 응답을 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으나
요한복음에 의하면(요한 1:35-51) 안드레아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과 하룻밤 지낸 후에 그분을 알아보고 형 베드로를 예수께 소개하는 것으로 되어있지요.
공관복음 중에서도 루가복음은 유명한 고기잡이 기적 이야기가 덧붙어 있습니다(루가 5:1-11).
복음사가들이 이렇게 다루고 있듯 어느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주도적으로 제자들을 부르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예수님을 따르는 변화된 삶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로 불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복음서에서 제자들의 부르심 과정이 명쾌하지 않듯, 우리가 그 부르심을 알아차리는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오묘한 방법으로, 그리고 필요하면 많은 시간을 두고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과정이 어떠하든 마침내 우리는 '예수'를 만납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그분의 극진한 사랑의 결과입니다.
그렇게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난 이들은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립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 따라오기를 바라시지요.
참된 인생길,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신 당신을 따르기를 바라십니다.
그 길은 세상 시류의 길과는 판이하게 달라서
당신을 따르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기존의 것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애지중지하며 붙잡고 있던 것들이 실상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당신을 따르는 일이 사람들을 매료시킨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된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우아한 패배의 길을 걷는 투신은 세상을 감동시킵니다.
버리고 비운 다음에는 채워지는 것이 있으니 당신의 영, 당신의 정신, 당신의 마음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옷 입게 됩니다.
그것이 세상을 감동시키는 변화입니다.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에서 우리가 예수님 만나는 과정을 묵상합니다.
나를 부르시는 예수님 신호는 어떤 것인지를,
예수를 만나는 감격은 어떤 것인지를,
예수를 따르기 위해 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의 어떤 변화가 예수를 따르는 것이요 세상을 감동시키는 것인지를 묵상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부르심과 우리의 응답은 하나의 단순한 과정이 아님을 알아차립니다.
계속해서 재점검되고 재가동되어야 하는 시스템임을 깨닫습니다.
대림절. 새 출발을 시작하며
나와 예수님과 만남의 역사를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나의 변화에 대하여 다시금 곰곰이 되짚어 봅니다.
아직도 미진한 것이 있다면
찬찬히 처음처럼
다시 시작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