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임당한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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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당한 어린양
  • 김준표
  • 승인 2020.11.13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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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공동체 '능선'과 '광야'의 전태일 열사 50년 예배

죽임당한 어린양 / 요한계시록 5장6~10절
 

■ 요한계시록과 어린양
요한계시록은 참 위험한 성서입니다. 칼이 요리에 쓰이면 유용한 도구이지만, 폭력의 도구로 쓰이면 죽음을 부르는 치명적인 무기로 여겨지는 것과 같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요한계시록은 지구의 종말과 인류에 대한 신의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고 생각되어졌습니다. 1992년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다미선교회는 추종자들을 모아 곧 일어날 휴거를 대비하자고 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상황에서 민낯이 드러난 신천지는 지구종말이 아닌 시대종말을 이야기하며 이만희가 이끄는 새로운 한 세대가 창조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이유로 많은 오해를 받아왔고, 그래서 천덕꾸러기 같은 성서가 된 면도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요한계시록은 성령이 만들어내셨음을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열등한 책이라고 혹평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가르치지도 않고 그리스도를 알려주지도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니체는 ‘모든 역사 기록물 가운데 가장 미친 듯이 복수심을 쏟아낸 책’이라고  혹평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요한계시록 하면 어떤 낱말이 떠오릅니까? 휴거, 적그리스도가 떠오른다면 꼭 다시한번 요한계시록을 읽어 보십시오. 그런 단오는 나오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인류의 마지막때에 적그리스도를 물리치고 그리스도인들을 하늘로 휴거시키는 예언을 담은 책이 아니라, 1세기말/2세기초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제국의 압제 속에서도 불의한 제국신학과 로마황제숭배에 저항하도록 돕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휴거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가야 함을 오늘날에도 강력한 목소리로 전해주는 책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5장 6절부터입니다. 이 본문은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어떤 단어일까요? ‘어린양’입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죽임당한 어린양’입니다. 이 죽임당한 어린양은 이미 잘 아시는 것처럼 십자가에 죽임당한 예수를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어린양이야말로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광된 자리를 함께 할뿐 아니라, 세상이 숨기고 있는 거짓과 폭력의 역사를 드러낼 존재가 ‘죽임당한 어린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양은 7개 두루마리의 봉인을 떼어 펼쳐보이며 로마제국이 숨긴 폭력과 살육의 역사를 폭로하고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킨 이들에게 새하늘과 새땅, 구원의 희망을 심어줍니다. 

■ 희생양에 대한 집단의 폭력
희생당하는 어린양이라는 상징은 요한계시록뿐 아니라 성서 전체를 꿰뚫는 핵심어이기도 합니다. 이 용어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보여준 문화인류학자 지라르의 해석을 소개하려 합니다. 
지라르는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라는 책을 통해 이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설명합니다. 지라르는 인류가 이어온 역사 속에는 모방경쟁과 이에 따른 폭력의 순환이 반복되어 왔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조금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인간은 각자 소유와 권력을 포함한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서로 그 욕망을 따라가려고 노력합니다. 욕망에 있어서만큼은 서로 닮아가려 하고, 그 과정이 무한경쟁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욕망의 모방경쟁속에서 갈등이 폭발하지만, 묘하게도 동시에 동질감을 느끼고 하나의 군중으로 묶입니다. 모방경쟁속에서 하나의 집단으로 묶인 이들은 그들 안에서 고조되는 갈등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폭발직전에 까지 이르면 서로에게 향했던 폭력성과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습니다. 그때 동질성 밖에 있는 소수자를 집단의 질서를 해치는 악으로 규정하고 만장일치로 그 소수자들에게 집단의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렇게 악으로 규정된 소수자들이 희생되면 그 사회는 서로에게 향했던 위험수위의 폭력성을 해소하고 잠시 평화와 안정을 되찾는 듯합니다. 그러나 안정을 찾은 것으로 보이는 사회내에서 곧 또다시 서로의 욕망을 모방하고 경쟁하면서 또 다른 집단 폭력의 대상인 희생양을 찾습니다. 이렇게 ‘희생양에 대한 집단의 폭력을 통해 작동되는 사회의 구조와 원리’가 바로 사탄의 전략이고 이러한 ‘희생양 시스템’이 사탄의 권세이며 악의 실체입니다.

■ 성서의 희생양 이야기와 전태일
그럼 사탄을 물리친 예수의 위대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집단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사회의 약자 편에 서서 정의를 외쳤고, 마침내는 그 자신이 희생양이 되어 집단폭력에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희생양으로 죽임당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함으로 이 사회를 구조화된 집단폭력으로 유지시키는 사탄의 계략을 완전히 폭로하고 무력화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집단폭력의 광기에 맞서 싸우는 소수의 희생양을 대변하는 성서의 이야기를 완성시킨 것입니다. 

1970년 11월13일 22살의 나이로 ‘죽임당한’ 전태일 열사는 예수처럼 한국사회 집단폭력의 광기에 맞서 싸운 희생양이었습니다. 그는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비인간적인 다락방 공장 시스템에서 죽임당하는 어린 여공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임금에 기초해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며 불의하게 자본을 축적해 가는 청계천 평화시장을 어떻게든 바꾸어보려고 했습니다. 노동자는 노예가 아님을, 인간답게 대우를 받으며 근로기준법에 따라 일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죽임당하기 1년 전 평화시장 안에서 희생당하는 이들을 모아 바보회를 만들었습니다. 전태일과 그의 친구들은 ‘똑똑한 인간’ ‘약은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바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노예사회에서 벗어난 진정한 인간, 해방된 노동자로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그 당시에는 비정상적이고 고난을 자초하는 바보 같은 행동이었지만 전태일은 그 의지를 꺾지 않았습니다. 기업주들의 탐욕과 노동관련 관료들의 부패 속에서 서서히 죽임당하는 어린 여공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그 자신이 바보가 되고 역사의 희생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와 같이 죽임당함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부활 사건으로 희생양에 대한 집단의 광기와 폭력에 가담했던 군중의 일부를 자각하게 하고 회개시켜 폭력의 순환고리에서 뛰쳐나와 그 거짓과 불의를 폭로하는 하나님나라 운동에 뛰어들게 했습니다. 전태일 열사 또한 부활의 역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죽임당함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각성시켰고, 권력 앞에 비굴했던 지식인들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태일 열사는 예수에게서 완성된 성서의 희생양 이야기를 한반도 역사에서 다시 써내려간 한반도의 희생양, 예수입니다. 

■ 2020년의 희생양
우리는 지금 일체의 시장규제를 없애고 금융자본이 자유롭게 국가를 넘나들어야 진정한 효율적 경제시스템이 완성된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희생양은 누구인가요? 욕망에 대한 군중의 모방경쟁 속에서 집단의 폭력 앞에 힘없이 주저앉은 이 시대의 약자는 누구일까요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조국의 통일과 불법사드배치철회를 위해 싸우는 이들 아닌가요? 아파트불패신화를 이어가고자 발버둥치는 조합과 건설자본에 의해 힘없이 쫓겨나는 재개발/재건축 지역의 주민들/세입자들 이지요. 촛불정신을 담겠다는 민주정부가 들어서도 여전히 왜 자식들이 구조되지 못하고 죽임당했는지 그 진실의 실체에 다가가지 못해 애통해하고, 7년의 공소시효만료을 앞두고 발을 동동거리는 416세월호참사 유가족들 아닙니까? 누구보다 고용불안과 실질임금 저하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노동자들, 그들 중에서도 더욱 비참한 상황에 내몰리는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 아닙니까?

2020년 이 사회의 희생자, 또 한명의 전태일을 기억해 주십시오.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생계가 막막해진 일용직 노동자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전체노동자의 41%이지만 정규직 월급의 절반만을 받으며 고용불안에 살아가는 850만명의 비정규직을 기억해 주십시오. 1600명의 근무자 중에 1000여명 가까이 해고된 이스타항공 해고노동자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1년이 되도록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으며 탄압을 가하는 LG에 맞서 싸우는 LG타워 청소노동자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들이 2020년 오늘의 희생자이며, 우리 시대의 전태일입니다. 내 안전을 위해, 내 보잘 것 없는 욕망을 위해 이들의 희생에 눈을 감는다면 우리야말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쳤던 빌라도 앞의 군중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로부터 사회 안에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집단폭력의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위해 앞장서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어깨 걸고 걸어야 할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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