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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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청하였다
  • 백창욱
  • 승인 2020.11.0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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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20. 11. 8) 성령강림 후 스물세 번째 주일
마태 25:1-13 “그제야 청하였다”
 
오늘 복음은 열 처녀 비유입니다. 신자에게는 유명한 하나님나라 비유입니다. 그런데 유명한 말씀이라고 해서 그 말씀의 뜻을 잘 아는 건 아닙니다. 목요일 진밭 기도회 본문이 누가 15장 잃은 양 비유였는데 그 비유도 유명한 말씀이지만 그 날 새롭게 봤습니다. 오늘 주보글도 리처드 로어 신부가 사마리아 사람을 새롭게 본 소회를 적었습니다. 하나님말씀은 고정돼 있지 않습니다. 문자는 고정돼 있지만 문자를 읽는 사람들의 삶이 계속 변화합니다. 그리고 성서말씀과 시대상황은 서로 교통하기 때문에 성서를 보는 눈도 계속 진화하는 게 정상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비유이야기가 수긍이 잘 되나요? 도대체 어느 나라 어느 지방의 혼인잔치 풍습이 이렇게 야박한지! 기름을 마련하지 못해서 잔치자리에 들어가지 못한 처녀들의 운명에 동감하나요? 비유이야기 안에 나타나는 여러 인간적인 하자는 대수롭지 않은가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형제애든 동료애든 무시하고 냉정하게 처신해야 하는가요? 소위 슬기로운 처녀들이 기름을 나눠주지 않은 처신이나 나머지 처녀들의 애원에도 아랑곳없이 문을 닫고 외면하는 신랑의 매몰찬 태도는 또 무엇인가요? 하나님나라는 이처럼 각자 알아서 처신해야 들어갈 수 있는 나라라는 뜻인가요? 등등 여러 의문이 뒤따릅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하자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이야기를 하나님나라에 비긴다고 했습니다. 복음저자가 이야기 구성에 무리를 하면서까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쟁점은 어리석은 처녀들의 처신입니다. 그들의 과오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무엇을 잘 못 했기에 잔치자리에 들어가지 못했나? 입니다. 그 점을 풀어보겠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어리석은 처녀들에게는 등불은 있으나 기름이 없다는 점입니다. 비유도 이들이 기름 없는 것을 전제하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불은 가졌으나, 기름은 갖고 있지 않았다.”(3절) 그렇다면 기름 없는 것 자체보다는 그래서 이들이 그 다음에 어떻게 했는가에 주목하는 게 옳습니다. 이들의 처신의 결과는 한마디로 말해서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깨어 있지 못한 의식과 행동의 연속입니다. 세 가지 과오가 눈에 띕니다.
 
첫째 과오는 무엇인가요? 이들은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리면서 기름을 준비하는 게 마땅하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냥 태평하게 있었습니다. 정작 기름이 필요한 때인 밤이 되도 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과오는 무엇인가요? 뒤늦게 자기들에게 기름이 없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의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하였다.”(8절) 공동번역은 더 실감납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그제야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그제야 청하였다. 이렇게 둔할 수가! 낮에는 뭐하고 이제야 기름 없는 것을 깨달았단 말인가! 이들의 인식은 너무 뒤쳐져있습니다. 어찌 이렇게 상황판단이 모자라단 말인가요!
미국의 트럼프를 보는 것 같습니다. 대세가 기울었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를 부립니다. 정말 바이든의 경고처럼 백악관에서 끌려나올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막무가내 사람도 있습니다. 더 문제는 이런 막무가내 사람이 막강한 권력자가 된다는 점입니다. 대중이 그런 사람을 권력자로 뽑아주는 것이므로 시대가 그만큼 어두운 것입니다.
 
세 번째 과오는 무엇인가요? 이들은 기름이 모자란 것을 인식하고 기름을 준비한 동료들에게 기름을 나눠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답하기를, 나눠주면 다 모자라니 차라리 기름장수들에게 가서, 사서 쓰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슬기로운 처녀들의 답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들의 말이 맞나요? 이 때는 한밤중입니다. 한밤중에 어디 가서 기름을 사겠습니까? 게다가 기름장수 한 사람을 만나는 일도 아쉬울 텐데 기름장수들에게 가라고 복수로 말합니다. 가까운 곳에 기름장수가 있다면 진즉에 샀을 것입니다. 기름 사는 게 여의치 않기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급기야 이 지경까지 온 것인데, 기름을 사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미련하게도 그리고 순진하게도 그 말을 듣고 나머지 처녀들은 기름을 사러 갔습니다. 그리고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고 말았습니다. 들러리 할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상황은 끝나버린 것입니다.
 
이들의 최대 과오는 기름을 사러 간 것입니다. 첫째 과오와 둘째 과오는 참아 줄만 했습니다. 그러나 셋째 과오는 결정적 오판입니다. 그들은 그냥 그 자리에 버티고 있어야 했습니다. 찰거머리처럼 기름 있는 자들 옆에 들러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옆등불 덕이라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묻어서라도 잔치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처녀들이 들러리 자리를 지키는 일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잔치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건이 안 되는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어떡하든 견뎌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느라 자존심이 상하고 수모를 당하고 자아에 손상을 당할지라도 참아야 하는 일입니다. 민중이 다 그렇게 생존했습니다. 민중이신 우리의 부모님이 다 그렇게 살면서 우리를 키웠습니다. 이런 과오를 생각할 때, 미련한 처녀들은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목적의식이나 그에 맞는 소양이 안 돼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신랑의 매몰찬 태도는 처녀들의 깨어 있지 못한 상태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랑이 오는 때를 종말로 국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나라가 죽어서 가는 공간만도 아닙니다. 잔치자리는 사람이 서로 동등하게 인간애를 누리는 평화세상입니다. 진정한 잔치는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깨어 있어야 하나요? 의식이 깨어 있다면, 지금 세상은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의식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깨어 있음은 살아 있다는 표시입니다. 깨어 있음은 수행입니다. 깨어 있음은 참 세상을 열망하는 표시입니다. 우선 자기 자리에서 참 세상을 만드십시오. 견디고 존중하고 사랑하십시오. 깨어서 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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