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 깨어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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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 깨어 있는 삶
  • 양재성
  • 승인 2020.11.0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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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울녹색교회 하늘의 소리(2020. 11. 08.)

회심, 깨어 있는 삶
마태복음 25장 1~13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

▪ 입동
  계절은 입동을 지나 겨울로 가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이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키우고 익혀오더니 마침내 열매를 주인에게 바치고 제 자리로 돌아가는 절기입니다. 텅 빈 들녘은 제가 키운 것을 제 것이라고 욕심내지 않고 기꺼이 이웃에게 나누는 자연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거룩한 삶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거룩한 삶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반면에 가을은 자신의 수고와 땀을 자신의 것으로만 치부하며 살아온 우리네 삶이 얼마나 천박한 삶인가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을은 성찰의 계절이며 추수의 기쁨을 나누는 감사의 계절이며 동시에 쭉정이와 알곡을 나누는 심판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가재울녹색교회 순서지(사진제공 : 한현실님)
가재울녹색교회 순서지(사진제공 : 한현실님)

▪ 심판과 회개
  오늘 성서일과는 마태 공동제가 전하는 복음서 25장의 말씀입니다. 25장은 최후의 심판을 상징하는 비유로 세 개의 비유로 되어 있는데 그 첫 비유가 열 처녀의 비유이며 두 번째가 달란트의 비유요 세 번째가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세 비유는 각각의 의미가 있지만 심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심판은 냉엄하고 그 결과는 판이합니다. 하지만 심판은 구원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회개하는 이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가을은 풍요로운 계절인 동시에 심판의 계절이도 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키워온 열매를 쭉정이와 알곡으로 구분합니다.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밖에 버려져 태워집니다. 이 가르침은 알곡이 되어 곡간에 들어가라는 가르침입니다. 알곡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계속해서 알곡으로 살면 되는 것이고 쭉정이로 살아온 사람들은 더 이상 쭉정이의 삶을 접고 알곡으로 살아가라는 가르침입니다. 말씀을 내 삶의 거울로 삼아 잘 다듬어서 살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비유는 누구를 정죄하게 위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의 메시지는 회심을 유도하여 구원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 선언은 그 배후엔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을 토대로 누군가를 정죄하려면 깊은 사랑을 가지고 그 사람의 구원을 간절히 원해야합니다. 가만 두면 망할 것이 분명하니 예언자들을 시켜 그렇게 살면 망한다고 외치게 함으로 회개하여 하늘의 길을 걷게 하고자 한 것이 예언입니다. 

▪ 혼인예식
  당시 유대인의 결혼 예식은 세 단계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혼인 계약으로 신랑이 신부의 아버지에게 결혼 지참금을 지불함으로써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약혼 기간으로 약혼식에서 서약과 선물을 교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약혼 기간은 1년 동안 지속되기도 했는데, 이 기간 동안 신랑은 신부와 함께 살 집을 마련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약혼 기간이 끝난 후 열리는 혼인잔치입니다. 바로, 성경에 등장하는 비유가 결혼 예식의 마지막 단계인 혼인잔치인 것입니다. 신랑은 자기 집에 성대한 잔치를 준비해 놓고, 신부를 데리러 신부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이때 신부의 들러리 즉 비유에 등장하는 열 처녀들은 먼 거리까지 나가 신랑을 마중하고, 그를 신부의 집에 바래다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이 살 새 집으로 가는 행렬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예식은 보통 저녁에 이루어 졌기에 신부의 들러리들은 등을 환하게 밝혀야 했습니다. 신랑이 멀리서 올 때는 그가 도착하는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일이 예상보다 길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신부의 들러리들은 항상 여분의 기름을 넣은 그릇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오늘 성서 본문에 나오는 열 처녀는 신랑 신부의 들러리입니다. 그들의 사명은 밤늦게 오는 신랑 신부를 위해 불을 밝히고 기다려 맞이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신랑이 더디 오자 열 처녀는 졸고 말았습니다. 밤이 늦어 신랑이 온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났는데 다섯 처녀는 등잔불이 잘 타오르고 있었지만 다른 다섯 처녀의 등잔은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불이 꺼져 가는 다섯 처녀는 다급해진 나머지 다른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빌려달라고 청하지만 오히려 둘 다 쓰기에 부족하니 차라리 기름을 사오라고 말하자 기름을 사러간 사이에 얄궂게도 신랑이 왔고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자리에 들어갔고 기름을 사서 늦게 온 다섯 처녀가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지만 주인은 모른다고 거절하여 끝내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의 목적은 신랑을 맞이하여 혼인잔치자리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십니다. 결국 깨어 있는 자들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소리를 전하는 양재성님(사진제공 : 한현실님)
하늘의 소리를 전하는 양재성님(사진제공 : 한현실님)

▪ 깨어 있는 자
  물론 이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는 여러 가지입니다. 드러난 의미로 보면 언제 신랑이 올지 모르니 준비하고 깨어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항상 사명을 생각하고 그 사명을 위해 성심을 다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결국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이야기는 말세적이기 보다는 종말론적인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될 일을 예시합니다. 그러니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그 자세로 매사에 깨어서 준비하고 잘 살아가면 되는 것이고 준비하지 않았다가 낭패를 당한 미련한 다섯 처녀는 다시는 준비 없이 살지 말고 깨어 있어서 잘 준비하여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 등잔과 기름
  그렇다면 등잔을 유용하게 할 기름은 무엇입니까? 
기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하지만 그리 명석한 대답은 없습니다. 혹자는 믿음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기도라고도 혹자는 사명이라고도 합니다. 혼인 예식이니 사랑이 아닐까요? 하여간 기름은 늘 준비되어 있어야합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처음부터 기름이 없었습니다. 혼인 예식을 위한 최소한의 사명을 상실한 것입니다. 본연의 삶을 저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지금 어떤가? 다시 물어야합니다. 우리는 우리 사명을 알고 있는가? 우리 사명에 충실한가?  

▪ 바보와 귀족
  바보를 데리고 사는 귀족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귀족은 바보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보다 더한 바보를 만났을 때에만 그 지팡이를 넘겨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갔습니다. 귀족이 병이 들어 죽게 되자 바보가 귀족을 만나러 왔습니다. 병든 귀족은 바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곧 자네를 떠나야 하네,” 그러자 바보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주인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다른 세계로 가네.” “그러면 주인님은 언제 돌아오십니까? 한 달 후입니까?” “아니네” “일 년 후입니까?” “아니네” “그러면 언제쯤 돌아오십니까?” “결코 돌아 올 수 없다네.” “결코요?” 그렇다면 주인님은 그곳에 가기 위하여 어떤 준비를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네.” “아무것도요?” 바보는 반복해서 귀족에게 물었습니다. “아무것도요? 자, 그럼 이 지팡이를 가지세요, 비록 저는 바보이지만 이처럼 바보스런 행동은 보지 못했습니다.”

▪ 미국의 대선
  우리나라 대선만큼이나 관심을 집중시킨 미국 대선이 끝났습니다. 압도적 우세는 아니지만 조 바이든의 승리가 예상되며 미국 언론이 바이든의 승리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아성인 조지아에서도 승리했고 초경합지역인 펜실베이니아와 애리조나 등에서도 승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흑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끌어냈고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트럼프는 국민의 생명보다 경제를 택한 결과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내 코로나 확진자가 1,000만명이 발생했고 코로나19로 24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희생되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은 크게 추락했습니다. 그는 백인 우월주의자, 근본주의 기독교인을 편들면서 흑인과 유색인, 다른 신앙의 사람들의 인권을 외면했습니다. 그는 모든 관계를 거래로 보는 천박한 장사꾼에 불과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는 트럼프가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해 음모론을 주장하며 불복을 시사하자 자신의 트위터에 “정말 웃긴다. 트럼프는 분노조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친구들과 옛날 영화나 보러 가라. 진정해라 트럼프, 진정해!”라고 글을 올렸습니다. 툰베리는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찍자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난달 트위터에 “나는 결코 정당정치에 관여하지 않지만, 다가오는 미국 대선은 선거 그 이상이다. 기후적 관점에서, 어떤 후보도 충분하지 않다”며 “그러나, 그냥 정리해서 말하면 모두가 바이든에게 투표하자는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가 대선 불복을 선언함으로 순순히 패배를 선언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온갖 조악한 방법으로 법정 싸움을 시도하고 있고 거짓과 위협으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럭비공 같다던 트럼프는 마지막까지 기존 상식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의 몰상식이 상직적인 사람들을 힘들게 하였지만 그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 오랫동안 굳어 있는 왜곡된 질서를 깨기도 하였기에 또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행태가 몰상식에 자국의 이익과 개인의 사익에만 국한시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지지한 세력이 아직도 절반이나 된다는 사실은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보여줍니다. 
  바이든의 승리는 미국을 위해서도 인류를 위해서도 다행입니다. 파리기후협약에 77일 안으로 복귀를 선언하고 전 세계를 설득하여 기후문제를 풀겠다고 선언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 깨어 있는 삶
  깨어있다는 말은 “정신차리다”라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keep watch라고 하는데 keep ‘계속’이라는 말과 watch ‘지켜보다’라는 단어의 합성어가 ‘깨어있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전부 조합해 보면 “정신 차리고 계속 주님을 지켜보는 사람이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자신의 사명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누가 성인입니까?” 라는 질문에 찰나에 깨어 있는 자가 성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진리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깨어 있는 자가 성인이란 말입니다. 

  가톨릭 일꾼 한상봉에 의하면 로버트 엘스버그는 죽음 같은 무감각한 삶에서 “자아의 가장 깊은 곳을 살아내는” 충만한 삶을 갈망하는 자가 ‘성인’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합니다. 이들은 순간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현실을 흘깃 보아 넘기지 않고 진지하게 응답하는 열정적 사람들입니다. 사막의 안토니오 성인은 어느 주일에 복음에서 부자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당장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광야로 나가 아라비아 사막 언덕에 있는 폐허에서 기도하고 텃밭을 일구면서 20년을 살았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내 뒤를 따르라.”는 게 예수의 요청이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역시 이 요청을 단박에 알아듣고 세상에 속한 것을 세상에 돌려주고 빈 몸으로 출가해 ‘가난’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이 요청을 마음에 새겨듣고 응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거룩함을 산다는 것은 “꼭 필요한 한 가지”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토머스 머튼은 그 필요한 한 가지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실현하는 것, 곧 하나님이 바라시는 모습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연은 가장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제 할 일을 다 한 만물은 제가 키운 열매를 욕심내지 않고 다 내어 주곤 저 있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도 지금 거룩한 길을 걷고자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 뜻을 위해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그 부르심에 자신을 던지는 자들이 성인이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의 의미가 크게 메아리 되어 오는 가을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실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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