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품의 십자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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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품의 십자가2
  • 김홍한
  • 승인 2020.11.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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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십자가 2
-동성애자들의 슬픔-

 

  동성애를 합법화하자는 말은 하지 않겠다. 동성애가 좋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동성애는 있었다. 동성애가 부끄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동성애자가 매우 많았더라면 동성애는 평범한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성애자에게 동성의 누군가가 사랑을 고백한다면 심히 당황 되는 일이다. 자신과 관계없는 동성애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하고 감정적 동조가 되지 않는다. 다수의 이성애자들에게 소수의 동성애자들은 이방인이다. 소수이기에 약자다. 그래서 마음 놓고 흘겨볼 수 있다. 다수가 소수에 대한 횡포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에 의해서 신화가 만들어졌다. 그중 동성애 이야기들이 있다. 그 누군가가 태양신 아폴론을 동성애자로 표현했다. 아폴론이 휘아킨토스라는 청년을 사랑했다. 아폴론이 던진 원반을 향해 달려가던 휘아킨토스는 돌에 부딪혀 튀어 오르는 원반에 맞아 죽고 말았다. 큰 슬픔에 빠진 아폴론이 그를 꽃으로 만들었다. 그 꽃에 자신의 안타까움도 새겨 넣었다. 그 꽃이 휘아킨토스(히아신스)다. 아폴론은 파이스 라는 청년도 사랑했다. 그 청년의 이름에서 ‘파이도필리아(남색)’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아폴론은 자신의 아들 퀴크노스를 사랑했다.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동성애를 감당하지 못한 퀴크노스는 호수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백조가 되었다.  
  신화 속에서 동성애는 비극으로 끝난다. 신화조차도 동성애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동성애로서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은총으로 성전환이 되어서 가능했다. 性이 바뀐 이피스가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한다. 

  “처녀로서 약속드렸던 이피스의 제물을 청년이 된 이피스가 드리나이다.” 

  신화 속의 동성애도 불행하지만 현실 속의 동성애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백조의 호수>로 유명한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애자였다. 자신의 조카를 사랑했다.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슬프다. 사랑이 깊을수록 슬픔도 깊다. 

  차이코프스키가 <인형의 집>을 쓴 입센을 만났다. 입센도 동성애자였던 모양이다. 차이코프스키가 입센에게 말했다. 

   “우리는 슬픔을 바닥까지 아는 사람들이오.”

  그들의 슬픔을 죄악이라 하지 말자. 그들의 슬픔을 추하다고 하지 말자. 그들이 - 자신들의 슬픔이 너무도 억울해서 - 슬픔이 아니고자 하는 몸부림을 비웃지는 말자. 그들의 깊은 슬픔이 더이상 슬픔이 아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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