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아, 소성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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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아, 소성리야
  • 백창욱
  • 승인 2020.11.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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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 진밭 아침기도회(20. 10. 29)
누가 13:31-33 “예루살렘아, 소성리야”


엊그제 책 한 권을 읽었다.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한인섭이 묻고 김정남이 답한 대담집이다. 김정남은 영화 <1987>에서 설경구가 맡은 인물이다. 유신 때부터 6월 항쟁 때까지 뒤에서 민주화투쟁이 일이 되도록 이끌어간 사람이다. 각종 성명서 작성, 구속인사 변론자료와 구명운동, 구속자 가족지원, 해외 지원세력과 연대, 수배자 은신처 마련 등의 온갖 힘든 일을 수행했다. 김정남의 회고로 70-80년대 박정희와 전두환에 저항한 사람들과 뒤에서 민주화를 도운 사람들의 역정이 재생됐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최전선에서 뛰는 사람이 있고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고 무엇보다 후방에서 이 모든 투쟁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정남은 후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조용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한 의인들 덕분에 민주화투쟁이 가능했다고 증언한다. 진한 감동으로 페북에 책 리뷰를 썼다.

소성리 진밭교에서 하늘뜻을 펴는 백창욱님(사진제공 : 강형구님)
소성리 진밭교에서 하늘뜻을 펴는 백창욱님(사진제공 : 강형구님)

오늘 복음을 접하면서 연상되는 사건이 있다. 바로 1982년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이다. 가톨릭은 이 사건으로 큰 위기를 겪는다. 이 사건의 주범인 문부식, 김은숙이 원주교구에 숨는다. 가톨릭은 이들을 자수시키기로 하고 정부와 협상을 벌인다. 무엇보다 고문하지 말 것을 제시했고 정권은 가톨릭의 요구를 충실히 지키겠으며 이미 고문하지 말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면서 가톨릭을 안심시킨다. 그러나 문부식, 김은숙, 김현장의 신병을 확보한 정권은 태도가 백팔십도 바뀌었다. 남영동에서 가혹한 고문을 했고 범인은닉 혐의로 원주교구의 최기식신부도 구속했다. 정권은 가톨릭을 용공세력의 은신처라고 선전했다. 길 가던 수녀의 머릿수건을 벗기는 행태까지 나타났다. 가톨릭은 백 년 전 박해 시대 버금가는 위기를 느꼈다. 김수환추기경은 ‘우리 교회가 속죄의 제물, 속죄의 공양이 돼야 한다면, 기꺼이 되어주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이 괜히 일어난 게 아니다. 방화사건이 있기 전, 미국 관료들이 한국인들 정서에 불을 지른 일이 먼저 있었다. 미 8군 사령관 위컴은 “한국인들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는 추종할 뿐이며 한국인에게 민주주의는 적합한 제도가 아니”라고 말했다. 주한미대사 워커는 한국의 민주화 인사를 가리켜 “버릇없는 애새끼들”이라고 했다. 또 그때 미국쌀 수출업체 퍼미가 국제시세로 톤당 350달러인 쌀 십만 톤을 한국에는 500달러에 팔아 천만 달러 이상의 폭리를 취하고 그 이익의 일부를 한국 권력자에게 뇌물로 준 것이 알려져서 한국 국민의 반미감정이 넓게 깔려 있는 상황이었다. 방화사건 주동자들은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군부정권을 고발하기 위해 방화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당연히 미국의 방조가담 책임도 드러났다. 이 사건은 1,2심 모두 문부식과 김현장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김정남은 그때서야 비로소 최기식 신부가 감옥에 갇힌 이유와 가톨릭이 혹심한 탄압을 받아야 했던 까닭을 알았다고 한다. 교회가 관련되지 않았다면, 두 젊은이는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참으로 하느님은 기묘하게 일하신다고 술회했다.(434-438쪽)

복음서를 보면 항상 예수와 바리새는 충돌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늘 복음의 분위기는 다르다. 몇몇 바리새가 예수의 신상을 염려한다. 바리새는 말하기를, 헤롯왕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니 이곳을 떠나라고 한다. 피신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는 완곡하게 거절한다. 자신이 할 일이 아직 많이 있다며,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갈 뿐이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가 없다고. 예수의 말씀을 보면 예수는 목적의식이 매우 뚜렷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이 하는 일이 헤롯왕과 기득권세력들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어서 결국 사흘 째 되는 날에는 그 일을 마칠 수밖에 없지만, 그 때까지는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민중을 구제하고 해방세상을 향해 내 길을 가야 한다.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는 말은 예루살렘이 나의 무덤이라는 말이다.

(사진제공 : 강형구님)
(사진제공 : 강형구님)

노동자가 탄압받는 현장이든 국가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이든 투쟁의 철칙이 있다. 현장사수다. 혹자는 공중전을 해야 한다, 여론전을 해야 한다, 시대에 발맞추어서 문명의 이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등 여러 방책을 말하지만, 현장을 지키지 않는 활동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일이다. SNS의 활성화에 따라서 여러 가상공간에서 키보드로 온갖 세상일에 관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그런 사람들 중에 파워블로거니 뭐니 하면서 우대하지만, 현장을 지키지 않는, 현장을 떠난 투쟁은 공허하다. 우리가 이곳 진밭교와 초소, 불법기지 정문을 떠나지 않는 이유도 이곳이 최전선 현장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곳에서 사드철거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 핵심이다. 미군놈들이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 중요하다. 예수가 예루살렘을 떠날 수 없듯이, 우리 역시 소성리에서 사드철거투쟁의 끝장을 보자. 그때까지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우리 길을 묵묵히 걸어가자. 이 길 끝에 평화가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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