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민주화운동 40년 김정남의 진실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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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민주화운동 40년 김정남의 진실역정
  • 백창욱
  • 승인 2020.10.27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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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섭 대담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민주화운동 40년 김정남의 진실역정’


한겨레신문 토요판 김종철기자의 ‘민주화운동의 막후 김정남선생’ 인터뷰에서 이 책을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김정남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에 바로 주문해서 독파했다.

김정남과는 세대도 다르고 일면식도 없지만, 내가 가진 미안함은 이렇다. 1987년 양김이 서로 대통령을 하겠다고 양보없는 혈전을 치를 때, 대개 운동권대중은 김대중을 비판적지지 했었다.(나는 비판적지지라는 어휘가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 김정남은 김영삼을 지지했다.(알고 봤더니 김영삼과 김정남은 유신 때부터 대통령 퇴임 후까지 수십 년 각별한 동지관계다. 김영삼의 모든 대외 연설이나 공식입장은 김정남이 작성했다. 김영삼정부 때 교문사회수석 할 때는 물론이고 수십 년 일급참모였다.) 그래서 운동권대중이 지지하는 노선을 가지 않는 그를 폄하했었다.

그 선입견을 고수한 채, 수십 년 세월이 흘렀다. 그러면서 나도 나이가 들면서 청년 때 누가 뭐라 하면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던 시기는 지났으므로 그 때를 다시 성찰하면서, 87년에는 김영삼이 대통령을 먼저 하는 게 순리라는 생각으로 변했다. 김정남은 책에서 그 때 자신이 김영삼을 지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김영삼과 김대중 사이에 단일화문제가 상당히 심각했는데, 나는 김대중보다는 김영삼쪽으로 단일화가 되는 게 정도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일단 6월항쟁에서부터 6.29선언까지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맨 앞에 섰던 게 김영삼이고, 두 번째로는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에서 군의 영향력이 상당했는데, 김대중에 대한 군의 거부반응이 있어서 YS가 먼저 하고 DJ가 나중에 한다든지 이런 게 옳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YS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거고요.(534-535쪽) 다 지나간 일이지만 김정남의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김정남에게 따라붙는 찬사들, 예를 들면 ‘재야 민주화운동의 막후 비밀병기’ ‘민주화운동의 대부’ ‘제1공헌자’ 등에서 보듯이, 유신 때와 오공 때 중요 민주화운동 뒤에는 그가 있었다. 이렇듯 초지일관 한 길을 걸어온 사람에 대해, 그 시절 한 청년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얼치기 판단한 일에 대한 반성으로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를 독파한 것이다.
워낙 많은 사건과 인물이 등장해서 이 연줄낱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딱 하나 김정남의 위업을 소개하자면, 87년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을 조작한 경찰 대공분실의 음모를 세상에 밝혀서 전두환정권을 굴복시켰을 때 역할이다. 전말을 압축하면 이렇다.

박종철 죽음에 독박을 쓰고 수감된 두 경찰관이 감옥에서 매일 울부짖는다. 수감된 이부영은 교도관 안유에게 저들이 왜 저러냐고 묻고, 안유는 면회장 이야기를 들려준다. 박처원을 비롯해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사람들이 대거 면회와서 두 경찰관을 회유했다는 것이다. 이부영은 자신이 들은 내용을 비밀편지를 써서 한재동 교도관에게 전하고, 한재동은 전병용 전 교도관에게 전하고 전병용은 이부영 편지를 마침내 김정남에게 전한다. 김정남은 문장가답게 이 경천동지할 사건을 잘 정리해서 추기경과 사제단과 민주당에 전달한다. 민주당은 간이 쫄려서 폭로를 못하고 드디어 사제단이 명동성당 미사에서 박종철 죽음사건이 조작됐음을 폭로한다. 그리고 다 알다시피 그 폭로는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다. 이 일련의 전개과정에서 김정남이 핵심역할을 한 것이다.

더불어 대공분실의 면회증언과 편지전달을 해 준 세 명의 교도관도 빠뜨릴 수 없는 주인공들이다. 그래서 대담에서도 밝혔듯이, 김정남은 민주화투쟁에서 이름없이 빛도없이 희생을 치르며 헌신한 사람들의 역할을 증언하는 게 자신의 마지막 소임임을 고백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민주투사 말고 뒤에서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민주화에 참여한 무명의 의인들의 활약상이 소상하게 나온다. 김지하의 옥중서신은 어떻게 곧바로 일본가톨릭정의와평화협의회에 전달되었을까, 그렇게 신속하게 세상에 알려졌을까.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비선이 움직인다. 삐끗하면 모두에게 큰 사달이 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기쁘게 그 위험한 일들을 수행한 의인들이 있다. 김정남은 그  때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가령 수배자를 집에 숨겨주고, 편지를 배달하고, 인편연락을 마다않는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도 자신 때문에 그들이 겪은 환난에 대해 진심 죄스럽고 고맙다고 토로한다. 단언컨대 이들이 없었다면 민주화도 없었다. 

한편 나는 이 책에서 김정남의 민주화 이면사 뿐만 아니라 대담을 이끌어 간 한인섭의 글에서도 귀한 통찰을 얻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얻는 가장 큰 소득이다.
“그러니까 사람에 대한 신화화는 언제나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김지하를 완전히 신화화했다가 나중에 그것이 주는 부작용들을 여러 사람들이 치르고 있잖아요. 저는 현대사를 보면서 한 사람이 신화적으로 위대하다 이런 생각은 다 접고, 특정한 시점에서 했던 특정한 활동에 대하여 개별 평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소시민으로 다소 비겁하게 살다가, 어느 역사적 국면에서 평소보다 훨씬 더 용기있게,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평소에 자기라면 못할 것들을 각자가 한걸음씩 두걸음씩 막 내딛는 경우가 나타나면 그것 자체를 귀중히 여기자, 이런 겁니다. 그 사람은 정말 완벽하고 대단한 사람이다 하면서 꼭대기에 올려놓고 나면 그뒤에 약점 두어개만 나와도 확 허물어(져)버리잖아요.”(84쪽)

그렇다. 김지하는 유신 때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그것으로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때 김지하어머니 정금성여사는 구속자들과 그 가족들의 벗으로 눈부신 활약을 했다. 말하자면 민가협의 원조다. (이 내용을 일찍 알았으면, 김지하의 자서전 『흰그늘의 길』을 버리지 않았을텐데...) 한인섭의 주장에 머리를 숙인다. 또 한번 각성하는 바 늘 섣부르게 알고 있던 역사에 대해 좀 더 근접하여 알게 됐다. 무엇보다 긴 세월 소신을 변치 않고, 자신의 은사를 이 땅의 인권과 민주화에 헌실한 김정남에게 경의를 표한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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