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개혁신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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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개혁신앙으로
  • 양재성
  • 승인 2020.10.2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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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편, 마태복음 22장 34~46절

▪ 박순경교수 귀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신학자요 통일신학자였던 박순경 교수님이 귀천하셨습니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란 남북 7.4공동선언에 천착하여 3대 원칙을 가지고 신학화 작업을 열었고 민족모순을 풀어보려고 부단히 애쓴 민족주의자요 통일꾼이었습니다. 기독교 정신도 화해와 통일이라고 보았고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문제를 분단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그 분단을 극복하는 길에 통일이 길이며 민족의 나아갈 길이라고 천명했습니다. 강의실에서 조용히 제자들을 가르치던 그녀가 거리에 투사로 나서게 되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통일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였다가 옥살이를 하였고 범민련을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통일 운동에 헌신했습니다. 한 여성은 약하지만 하늘의 뜻에 경도된 한 여성이 얼마나 위대하게 살 수 있는 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합니다. 

▪ 교회개혁주일
  오늘은 종교개혁주일 아니 교회개혁 기념주일입니다. 당시 교회의 부패상을 지적하며 개혁 격문 95개조 항을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 앞에 써 붙인 것이 계기가 되어 교회 개혁의 불길이 타올랐고 마침내 새로운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503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지금 개신교회는 교회개혁 당시보다 훨씬 더 타락한 행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근본 가치는 물론 사회 상식보다 못한 후진성을 보여주고 있고 심지어는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걸림돌로 작동되어 혐오단체로 비난 받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의 문제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고 교회개혁은 사회진보의 전제조건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신도수가 줄고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초심을 잃고 교회의 근본 가치를 상실한 것이 위기입니다. 지금으로선 위기라는 것을 인식한 것만으로도 희망입니다. 위기도 모른 채 붕괴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어디서 교회의 근본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요?

▪ 개혁신앙
  개혁신앙에서 늘 개혁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여전히 옳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날마다 개혁되지 않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신교회는 줄 위에 서 있는 곡예사처럼 멈추는 순간 떨어집니다. 변화되어야 하는 숙명을 타고 태어난 것이지요.

  개혁 격문을 통해 본 개혁신앙은 오직 성서, 오직 은총,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당시 형식주의에 빠져 부패했던 가톨릭교회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이 고백은 가톨릭교회에 신물을 느끼며 절망했던 많은 대중들을 동요시켰고 교회의 근본 가치를 찾을 수 있게 안내하였습니다. 지금도 이 신앙고백은 유용합니다. 하지만 위험성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로 오직이라는 지나친 독선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로막고 또 다른 부패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사도 요한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사랑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께 속하였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가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사랑에 속해 있으면 그는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 가장 큰 계명
오늘 성서일과는 마태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22장의 말씀입니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려고 예수를 찾아와 묻습니다.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예수께서는
“목숨을 다 하여 뜻을 다하고 힘을 다 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와 같이 네가 네 몸을 사랑하듯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서가 전하는 가장 큰 계명은 다름 아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즉 사랑의 계명이었습니다. 사랑의 신비주의, 사랑의 실천만이 교회를 진정한 기독교로 세울 수 있습니다. 율법사는 예수의 대답이 범상치 않음을 탄복하고는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 용서와 혐오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차별하지 않으시고 햇빛과 비를 똑같이 내려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도 민중을 무시하고 학대하고 차별하며 혐오하는 제국과 종교기득권을 가진 이들을 호되게 꾸중하셨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 그들을 혐오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독교는 혐오와 정죄의 종교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의 종교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혐오는 기독교의 용어가 아닙니다.

▪ 사상의 자유
  동성애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목사직을 2년 동안이나 정지당한 사건은 무지의 소치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거기에 동성애자들을 축복했다는 목사를 지지한 것을 트집 잡아 몇몇 목사를 지방과정심사에 회부하였다니 이 또한 기가 막힙니다. 동성애자들을 범죄자로 정죄하는 것이야말로 범죄행위입니다. 성소수자들을 가장 강렬하게 혐오하는 집단이 교회라니 이를 어쩝니까? 교회는 범죄 집단이 되고 있습니다.
사상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하여도 한 사람의 사상을 판단하여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게 성직자라면 더욱 옳지 않습니다. 자신의 사상을 자유롭게 펼치고 주장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회요 진정한 민주사회입니다. 

▪ 2020 희망 선언
  올 해 교회개혁 주일은 좀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한국교회가 당면한 문제가 심각해 보입니다. 이 위기를 돌파하지 못하면 교회가 붕괴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염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뜻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개혁 503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회개하고 새로운 교회 개혁의 기치를 들었습니다. 2020 “다시희망!” 선언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3.1 선언을 주도한 지난 100년 역사의 주역, 한국 개신교회가 오늘의 모습으로 2020년을 맞을 줄 전혀 상상치 못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이 땅 개신교의 숨겨진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고, 자연 파괴의 징조로서 창궐한 바이러스에 책임 질 생각 않고 고작 피해자로 인식하며 정부와 시민, 성도들과 각 세우며 제 살길 찾는 개신교 성직자들 모습이 구차했고 가련했습니다. 더더욱 전광훈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세습을 허용했으며 여성 안수를 거부한 몇몇 개신교단의 총회를 지켜보며 우리는 개신교에게 미래를 기대할 수 없어 절망하였습니다.

  기후붕괴에 무심한 채 천국신앙만을 전했고 차별과 혐오를 조장했으며 가짜 뉴스의 진원지이자 돈으로 교권을 장악하여 교회 세습까지 성사시켰습니다. 그렇기에 예배가 목숨보다 중하다 강변하며 ‘교회 밖에 구원 없다’는 교회의 주장이 참으로 허망하고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과연 이런 교회가 주는 물에 목말라 하겠습니까?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목사를 동체로 여긴 이단(異端)적 구조가 교회의 공공성, 민주주의를 붕괴시켰습니다. 교파 막론 교회의 70-80%에 이르는 뭇 미자립 ‘작은교회’와 수백, 수천억을 휘두르는 대형교회가 공존하는 현실은 단연코 반성서적입니다. 복음이 아니라 자본이 지배하는 교회 현실, 곧 공교회성을 망각한 결과라 할 것입니다. 기업화되었으며 정치세력화를 꾀하는 대형교회는 이제 주저앉을 바벨탑이자 허물어 질 성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 의존적인 정신적 사대주의 역시 오늘날 이런 개신교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라 하겠습니다. 극우 기독교를 편들며 인종, 문화 차별을 부추기고 스스로 가짜뉴스 신봉자가 된 트럼프, 그에게 이 땅의 개신교와 보수 정치세력이 편승하고 있습니다. 자기정치를 위해 미국을 분열시켰고 세계를 신 냉전체제로 몰아가는 트럼프의 광기를 학습하여 맹종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관입니다. 한국개신교가 길러낸 정신적 사대주의자들의 실상을 우리는 성조기 휘날리는 광화문 광장에서 여실히 경험했습니다. 독립을 위해 좌우가 함께 했던 지난한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있으니 통탄스럽습니다. 교회라는 게토, 한국전쟁으로 야기된 트라우마에 갇혀 북쪽 이념을 악마시한 결과였습니다. 70년 분단선을 남북 정상이 손잡고 넘나들었던 4.27 사건조차 거부하는 개신교에게 반공주의가 신앙의 다른 이름이 된 탓입니다. 이렇듯 화해 대신 혐오의 종교가 된 개신교에게 ‘영적 파산’이 선고 되었으니 미래세대에게 개신교는 역사퇴물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교회 밖 세상은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탄식소리(롬8:18-25)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려는 세월호 유족들의 외침, 얼굴 달리한 뭇 김용균의 절규, 죽음을 담보한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의 한숨, 몇 만원 더 벌고자 질주하는 오토바이 인생들의 고통이 우리들 일상이 되었습니다.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청년 세대의 좌절, 값싼 노동력으로 내몰리는 여성들의 눈물, 환경을 살려내라 소리치는 차세대 주역들인 청소년의 외침도 우리가 들어야 할 탄식입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 이런 절망 속에서도 ‘다시 희망’을 찾고자 합니다. 2020년 코로나는 문명의 교정자로서 우리 삶을 결코 과거로 되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1990년 JPIC 서울대회가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을 이룰 수 없는 경우 기독교 구원(정신)은 결코 실현된 것이 아니라’ 했던 말도 소환합니다. 남북 간 평화체제를 이룰 수 없다면 바울처럼 그렇게 기독교적 구원마저 포기할 생각도 해봅니다. 개혁을 부정하는 교회, 교단과의 단절내지 결별 역시 우리가 감수해야 될 고통일 것입니다. 이제 ‘다른 기독교’를 위해 내쳐졌던 300만 명 가나안 신자들 그리고 수동적 존재였던 평신도 특히 여성들이 개혁의 동반자이자 주체로 나설 것을 소망합니다. 개신교가 다시 ‘신뢰의 그루터기’가 되는 그날까지 이들과 함께 다음 20개 항목으로 교회와 자신에게 명령하며 개신교 개혁을 선언합니다.

1. 교회 건물을 줄여 사회적 약자를 구제하라.
2. 세습을 불허하고 전광훈류의 개신교와 단절하라.
3. 거짓을 증언하는 일체 행위를 중단 하라.
4. 반공주의, 맘몬주의, 성직주의에서 복음을 자유케 하라.
5. 목회자들의 영적, 도덕적 불감증에 단호하라.
6. 포용과 사랑의 종교가 되어 모든 차별에 저항하라.
7. 분단신학 사죄하고 남북 평화체제 위해 앞장서라.
8. 신학 사대주의 해체하고 주체적 신학교육 실시하라.
9. 폐쇄적 배타성 허물고 역사, 문화 및 사회와 공존하라.
10. 생활신앙으로 ‘흩어지는 교회’ 상을 정립하라.
11. ‘공교회성’을 위해 초교파적 연대를 시도하라.
12. 기후붕괴 시대에 범 개신교적 비상체제 가동하라.
13. 평신도의 주체성, 지도력을 인정하라.
14. 남녀동수로 교회를 치리하고 교단을 운영하라.
15. 교역자 간 임금격차 줄여 계급 차별 해소하라.
16. 미래 세대, 청년들을 위한 교육에 투자하라.
17. 교회 예산의 십일조를 사회에 환원하라.
18. 상속유산의 십일조를 공유경제 위해 기부하라.
19. K-방역에 협조하며 코로나 이후 시대를 준비하라.
20. 교회가 개혁을 거부할 시 교회 불복종운동을 시작하라.

  이상과 같이 2020년 ‘다시 희망’을 위해 뜻 모아 하나가 된 개신교인들,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이름으로 다시 신뢰의 그루터기 되려하는 우리들 개혁의지를 개신교 각 교단에 요구하며 변화의 능동적 주체가 될 것을 다짐하고 선포합니다.

▪ 감리회 개혁
  감리회의 개혁을 위해 감독회장 선거에 출마했던 개혁진영이 낙선하면서 개혁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하는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선거에서 비록 낙선했지만 운동과정을 통해 감리회의 실상과 희망을 보았고 적지 않는 세력들이 동조하며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일명 범개혁세력의 연합을 추진하기로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전국 목회자 평신도가 함께 하는 조직이 될 것이며 장정개정이 그 중심과업이 될 것입니다. 연회원 전체에게 선거권을 주고, 그 선거방식을 현실에 맞게 민주적으로 개정해야하며 교역자 생활보호법을 반드시 관철하여야 하며 구태한 행정과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합니다. 아울러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감리회 영성 회복을 추진해야합니다. 물론 2년 혹은 4년 뒤에 교권에 도전하게 될 것입니다. 새물결은 감리회 안에 대안연회를 구성하여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사업과 활동을 펼칠 것입니다. 감리교회도 선거 이후에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더 이상 침묵은 범죄가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한 죄가 가장 큰 죄라는 말도 있습니다. 

▪ 새로운 길
  우리 교회는 어떻게 교회 개혁운동에 동참할 수 있을까요? 2020 다시 희망 선언에 참여하여 이 선언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우리교회는 감리교회의 개혁과 한국교회의 개혁이 앞장서야 합니다. 이 작은 교회가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것입니다.

  앞으로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은 예수의 영성과 삶입니다. 예수는 사랑의 실천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고 인류가 나아갈 길을 얻었습니다.

  루미의 시가 저를 전율케 합니다.

  아름다운 꽃이 피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 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는데
  아름다운 꽃이 핀 것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선거를 마치고 좀 쉬라며 선후배들이 난리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새롭게 주어진 과제엔 열심을 내지 못합니다. 저야 몇 번이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사하고 기도하였지만 번번이 이 잔은 내게로 다가왔습니다. 어차피 짊어져야할 과제라면 지고가야지요. 다만 우리의 이 작은 행보가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세우는 놀라운 발걸음이 되길 빌고 또 빌 뿐입니다. 이 길에서 만난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가없으신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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