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기념주일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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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기념주일 단상
  • 박철
  • 승인 2020.10.2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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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지금 우리들의 눈은 어떤가? 우리네 신학은 눈먼 신학이 아닌가? 서양의 어느 학자가 뭐라고 했고, 누구의 어느 책에 뭐라고 쓰였고 하면서 주(註)를 달고 논문을 쓰면서도, 정작 제 자신이 소경인 줄은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들 교회는 지금 어떻고 우리들 신앙은 지금 과연 어떠한가? 배웠다하고, 알았다 하고, 그래서 믿노라 하면서도 정작 제 눈으로 본 게 무엇이고 뜬 눈으로 믿는 게 얼마나 되는가?

캘빈이 뭐라고 했고 웨슬리가 뭐라고 했고, 바르트나 틸리히가 뭐라고 했다 해도, 그건 그들 눈이지 내 눈은 아니지 않은가? 말끝마다 전통이 어떻고 교리가 어떻고 하지만, 그 교리나 전통을 한번이라도 성경에 비추어 자신의 눈으로 다시 보려고 애써 본 적이 있는가? 남이 그렇게 믿으니 나도 그래야 할 것 같고, 남이 그렇다고 하니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 언제까지 그 눈 그대로 달고 눈 뜬 소경으로 살 것인가? 신앙이 맹목적일 수는 없다. 

신앙이야말로 눈 뜨임이다. 눈을 뜬다는 면에서는, 단순히 ‘들어서 아는’ 정도를 넘어서는 나름대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깨달아져야 그 아는 것이 자기 것이 되고 제 삶으로 살아진다. 또 그래야 알아도 아는 맛이 다르고 살아도 사는 맛이 다르다. 똑 같은 과일을 먹어도 먹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듯이, 천만 명이 예수님을 껴안고 산다고 해도 그 느낌은 달라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을 껴안아 본 느낌이 저마다 달랐기에, 마가복음도 있고 마태복음도 있고 누가복음도 있고 요한복음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저마다 제가 보고 느끼고 깨달은 바를 그렇게 기록한 것이다. 

마치 천도복숭아라고 하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일을 맛보고 나서 그 맛을 우리에게 설명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설명만을 듣고 이미 그 과일 맛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착각하고 있으니,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설명만 듣고 그를 알았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지금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도 이런 식이 아닐까? 베드로가 “당신은 그리스도십니다” 하고 말했다고 해서 우리도 같은 말로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생각 자체가 고정관념이고, 이러한 신앙 자체가 우리를 눈 못 뜨게 하는 통념이 아닐까? 이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고 어찌 신학인들 제대로 눈뜬 소리를 할 수 있겠으며, 이 통념의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어찌 우리 신앙인들이 볼 것 보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제발 종교개혁을 기념하면서 과거를 기념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옛날에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그만 불러오고  지금 이 시대, 우리의 눈(context)으로 성경을 보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개혁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모색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 모스크바 남서쪽에 있는 노보데비치 수도원. 뒤편에는 유명인사들이 다수(안톤 체홉, 니콜라이 고골, 니키타 후루시초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모리스 옐친 등) 안장된 묘지가 있다. 2018년 11월 방문했다. 수도원 성찬예배에 참석했다가 여성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성가를 듣고 눈물을 쏟은 경험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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