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을 꾸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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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꾸미고 있다
  • 백창욱
  • 승인 2020.10.16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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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 진밭 아침기도회(20. 10. 15)  
누가 11:47-49 “무덤을 꾸미고 있다”


10월 16일은 1979년 부마항쟁이 일어난 날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17일은 1972년 시월유신을 강제한 날이다. 시월유신은 부마항쟁으로 막을 내렸다. 박정희의 비극이 하루 차이로 연속해서 있는 자체가 역사의 교훈이다. 박정희가 헌법을 고쳐서 삼선개헌 한 것까지는 민중이 견딜 수 있었다. 박정희는 거기에서 멈춰야 했다. 그러나 끝간데를 모르는 권력욕심은 유신체제라는 비극의 문을 열었다. 72년부터 그가 죽은 79년까지 쏟아낸 긴급조치로 나라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민중의 삶은 얼마나 좌절스러웠나,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간첩이 됐나, 박정희의 양자인 전두환은 또 얼마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나. 이런 일련의 역사를 생각하면, 박정희 시대는 공보다는 과를 더 성찰해야 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여전히 박정희무덤을 꾸미는 일에 공을 들인다. 때만 되면 정치인들은 무덤에 가서 박정희신화를 들먹인다. 우리가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되새기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소성리에서 아침기도회를 인도하는 백창욱님 (사진제공 : 강형구님)
소성리에서 아침기도회를 인도하는 백창욱님 (사진제공 : 강형구님)

이스라엘 무덤은 평토장이다. 우리처럼 봉분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덤인줄 모르고 밟기도 한다. 주검을 만진 사람은 부정하기 때문에(민 19:16) 유대인들은 무덤에 회칠을 해서 접촉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예수는 바리새와 율법교사를 규탄할 때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다.(마 23:27)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의 끝판왕을 뜻한다. 회칠한 무덤은 매우 심한 욕이다. 상대를 주검에 비유하는 것은 정결례법을 목숨처럼 여기는 율법교사와 바리새에게는 견딜 수 없는 모욕이다. 하지만 점잖은 예수도 그들의 위선에 대해서는 결코 좋은 말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자면, 율법교사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민다.(47절) 예수가 보기에 이들의 행위는 너무도 어이없는 짓이다. 이유는 이렇다. 참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비운의 운명을 살았다. 조상들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거역했다. 선지자의 말을 불편해 했다. 귀를 막고 듣지 않았다. 그래서 선지자를 모욕하고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였다. 불우한 선지자들은 제명대로 살지 못했다. 물론 그 때도 잘 나간 선지자들이 있었다. 왕의 비위를 잘 맞추는 선지자들은 호강했다. 나라의 여러 감투를 쓰고 명예를 누렸다. 잘 나가는 선지자들은 귀족들에게도 명망을 얻었다. 백성들을 후리며 재산을 모으는데도 훈계와 경고는커녕 잘한다고, 계속 그렇게 하라고 지지하니 귀족들의 후의를 누릴 수밖에 없다. 그 때도 잘 나가는 선지자들은 고소득에 큰 집 짓고 호가호위하며 자식에게도 부와 명예를 물려줬다. 그들은 백성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다. 백성들이 야웨신앙을 배반하여 평등세상을 저버리고 서로 잡아먹고 이용해 먹기에 바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복과 안전을 빌어주었다. 그 대가로 여기저기에서 불러주어 인기를 얻었고 장수하며 잘 살았다. 또 많은 백성들이 잘 나가는 선지자들이 말하는 대로 되려고 갈망했다. 이런 증상을 볼 때,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왕의 심기를 괴롭히고 세력자들의 죄를 사정없이 규탄하고 백성들 듣기에 불편한 말을 한 선지자들만 불우하고 아무에게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쓸쓸히 죽었다. 죽어서도 화려한 비석은 고사하고 이 무덤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외면당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율법교사들이 조상들이 그토록 박대한 참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민다는 것이다. 율법교사들이 뒤늦게 각성한 것인가? 그럼, 얼마나 좋을까. 율법교사들의 속내는 이렇다. 우리는 이렇게 참 선지자들을 존숭하고 기념한다는 제스처다. 이 제스처가 예수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선지자들을 존숭하면 그들의 말을 따라 행동해야 한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먼저 정의와 자비와 믿음을 실천하여 억울한 백성들이 없도록 하고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실천은 안중에 없이 고작 무덤이나 꾸미니 환장할 노릇인 것이다. 예수는 그들의 행위가 하도 가소로워서 ‘무덤이나 꾸민다’를 말을 두 번 반복한다. 조상들이나 지금 그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사드를 강제배치한 안보마피아들, 좋은 말로 한미동맹주의자들, 이들의 위선도 회칠한 무덤 저리가라다. 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나라의 안보를 뇌까린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라의 안보방향이 미제안보를 그대로 옮겨놓는다. 그 노예정신은 급기야 멀쩡한 소성리에 미제무기 사드까지 박아놓고 말았다. 사드를 강제배치한 자들에게 화 있을지어다! 한미동맹주의자들의 속내는 이 안보정책으로, 이 대북전략으로, 이 무기수입으로 자신들의 배를 채울 이익을 따지면서 겉으로는, 말로는 나라의 안보를 위해서라고 주절주절 읊어댄다. 참으로 가식덩어리들이다. 사드강제배치로 제 나라 백성이 날마다 신음하고 있는데 무슨 안보타령인가. 안보마피아들이  무덤이나 꾸미는 짓을 구경만 할 수는 없다. 사드 철거 투쟁으로 우리의 주권, 생명, 생존을 지키자. 하나님이 우리의 투쟁에 동행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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