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 우리의 해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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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 우리의 해방주
  • 백창욱
  • 승인 2020.10.0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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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20. 10. 4) 성령강림 후 열여덟 번째 주일(출 20:1-17)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라파엘과 재판관인 추기경의 대화입니다.

추기경: 라파엘선생, 나는 왜 당신이 도둑질을 극형에 처하는 것에 반대하는지 그리고 어떤 처벌이 공공이익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꼭 듣고 싶습니다. 사형에 처함에도 불구하고 도둑질은 근절되지 않고 있는데, 만약 사형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버린다면 대체 어떤 권력으로 그것을 막을 수 있으며 또 효과적인 억제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형벌을 낮추는 것은 범죄를 조장하는 것으로 비춰지지 않을까요?

라파엘: 추기경님, 저는 돈을 조금 훔쳤다는 이유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잔돈 몇 푼 훔친 도둑을 죽이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요? 모세의 계율에 의하면 절도범들은 교수형에 처해지지 않았으며 단지 벌금을 물었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영국사회의 여러 모순들을 변증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주로 무위도식하는 성직자들과 왕의 부패와 탐욕을 지적합니다. 이 글을 인용하는 까닭은 16세기 영국에서는 도둑질에 대한 형벌이 사형이었다는 대목 때문입니다. 인정사정없는 지배권력에 가난한 민초들이 겨우겨우 살았다는 인상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서의 계율을 개인 수준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사실 대개의 경우 성서의 계율은 권력을 향한 경종입니다. <유토피아>에서도 보듯이, 권력이 살인을 합니다. 십계명의 8계명과 6계명을 한데 묶어서 민중들을 후려칩니다. 권력이 조장한 모순과 불의를 십계명을 통해 되레 정당화하며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처음 반포된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악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경우가 비단 16세기 영국사회 만의 일은 아닙니다.

십계명 본문을 접하기 전에 기초지식 몇 가지를 확인하겠습니다.

첫째, 성서에서 십계명 등장 시기는 출애굽 직후입니다. 출애굽 연도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부족동맹(열두 지파 동맹)이 형성되기 이전인 기원전 14세기쯤입니다. 하지만 십계명의 시대 맥락은 기원전 7세기 요시아 왕 시대로 봅니다.

전문가들의 진단 말고도 본문 자체에서 십계명이 훨씬 후대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 내용이 출애굽한 유랑민들 보다는 정착민들에게 더 적합합니다. 예를 들면,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9절) “남종 여종뿐 아니라 집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10절),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17절) 등이다. 생업이라든지 집, 남종, 여종, 식객 같은 단어들은 방금 애굽에서 탈출한 무산자 유랑자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정착사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입니다.

둘째는 왜 구계명이나 십일 계명이 아니고 십계명인가요? ‘10’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유다 전통에서 전체를 상징합니다. 가령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항의하기를 “장인어른께서 나에게 주실 품삯을 열 번이나 속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숫자 10은 열 번만 속였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늘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속여 왔다는 주장을 담은 상징숫자입니다. 즉 십계명은 단지 열 개의 계명만을 지키라는 뜻이라기보다는 모든 계율을 상징적으로 대표한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민중은 글을 모릅니다. 백성들에게 문서법전은 무용지물입니다. 듣기를 통해 법을 기억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대중들이 법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법의 정신을 상징하는 간략한 법이 필요합니다. 이에 왕은 다이제스트 법령을 반포하는데, 그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셋째, 십계명은 오늘도 유효한가? 라는 질문입니다. 개신교인들은 너무나 당연해서 이런 질문조차 생소할 것입니다. 말 그대로 십계명은 금과옥조입니다. 십계명의 비중은 찬송가에도 나타납니다. 찬송가 겉장 앞쪽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 나오고 뒤쪽은 십계명이 실려 있습니다. 매우 중요하다 생각해서 따로 특별 편집하였습니다. 내 입장은 십계명은 ‘문자는 버리고 정신은 이어받아야 한다’ 입니다. 당장 우리는 넷째계명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일단 우리는 야웨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전혀 무관합니다. 말 그대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습니다. 십계명을 반포하기 전 무대장치인 출 19장이나, 실제 등장한 기원전 7세기 요시아 왕 때를 보더라도 십계명은 전적으로 야웨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은 계약입니다.

그 때 사람들이 야웨신앙을 유지계승하기 위해 만든 결과물입니다. 예를 들어 첫째 계명인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와 둘째 계명인 “너를 위해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요시아왕 시대 신앙개혁운동 때 나온 혁신적인 대안입니다. 알다시피 북왕국의 예배 상징물은 금송아지였습니다.(왕상 12:28) 금송아지 예배는 북왕국이 공인하는 야웨 예배 양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북왕국 백성들이 대거 남유다에 편입됐습니다. 남유다왕 요시아는 예루살렘 성전개혁을 통해 지방성소를 대거 철폐하는 혁신운동을 벌입니다. 혁신운동을 할 때 제일 우선하는 일이 이데올로기 작업입니다. 혁신운동 이데올로기를 백성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결과가 십계명이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1계명)거나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2계명)는 엄명은 북왕국 신앙전통을 극복하는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십계명은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근거는 예수님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산상수훈에서, ‘살인하지 말라’에 대해 형제자매를 존중하지 않고 성내거나 업신여기는 행위도 살인계명에 포함했습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에 대해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조차도 간음이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을 더 철저하게 심화했습니다. 또 율법교사가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합니까? 라고 묻자,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단 두 가지 계명으로 압축했습니다. 말하자면 구약성서에는 십계명을 포함하여 613개의 계명들이 있지만, 그 계명들을 다 묶어서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으로 압축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정신을 더 압축하면 마 7:12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이처럼 신약성서에는 더 중요하고 간단하게 압축한 말씀들이 있는데 굳이 수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계명을 유독 강조하는 것은 또 다른 율법주의자나 근본주의자가 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십계명을 반포하시는 야웨 하나님은 당신을 뭐라고 소개하나요? 2절입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야웨 하나님의 대전제는 해방주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에는 노예였으나 이제는 자유민이 되었습니다. 해방주가 자유민이 된 사람들에게 주는 계명입니다. 당신이 뭔데 우리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는가? 나 야웨는 너희를 해방시킨 너희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계명은 어떤 정신을 담고 있나요? 당연히 사람차별을 조장하는 사회불의를 강력히 단죄합니다. 오직 자유민다운 평등한 사람살이에 대해 강조합니다. 그것은 야웨를 숭상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고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일계명은 야웨 하나님은 우리를 노예에서 이끌어 내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이므로 다시는 사람을 노예화하고 죽이는 지배자의 신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우상계명은 거짓신을 섬기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계명은 불의한 체제를 정당화하려고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대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안식일계명은 특히 약한 형제의 노동력을 착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병행구절을 보면 명확합니다.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의 소와 나귀도 쉴 수 있을 것이며, 너희 여종의 아들과 몸 붙여 사는 나그네도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출 23:12)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모든 인간은 일하고 쉬면서 사는 보람을 느끼는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계명에서 부모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국가 권력자들이나 어떤 권위보다도 부모를 소중히 해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사람을 억압, 착취해서 비인간적인 상황에 빠뜨리는 사회체제를 단죄합니다.

간음은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즉 간음계명은 내 가정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정도 귀중히 여기라는 뜻입니다.

도둑질계명은 남의 것을 훔치는 개별행동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계명은 특히 노동력 착취를 구조화하는 자본가 중심사회에 대한 단죄입니다.

거짓증언말라는 계명은 (특히 재판에서) 가난한 사람,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부자들과 권세자들에게서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계명입니다. 권세자, 부자들이 어떻게 재산을 불립니까? 폭력으로 하나요? 보통은 재판에서 거짓증언을 세워서 남의 재산을 가로챕니다.

아홉 번째 계명과 열 번째 계명은 재력과 권력을 인생목표로 삼고 타인의 자유와 생명을 깨뜨리는 인간들에 대한 경종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세상은 고대시대보다 훨씬 교묘하고 복잡합니다. 우리에게 더욱 깨어있는 이성과 지각을 요구합니다.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십계명 정신을 살리고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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