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곧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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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곧 우주다
  • 양재성
  • 승인 2020.09.2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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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권위(마 21장 / 23-27)

▪ 추석의 풍경
오늘은 창조절 넷째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찬양합니다. 이번 주간엔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있습니다. 여름내 자신을 키워온 곡식과 과일들이 잘 영글어 주인의 밥상에 오르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가없으신 주님의 은총이 늘 여러분 가정에 함께 하시길 기워합니다. 아울러 이 민족과 코로나로 고통당하는 인류위에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 권위의 충돌
오늘 성서일과는 마태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21장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그 가르침과 예수의 권위에 대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시비를 거는 이야기입니다.
율법학자들이 “예수님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누가 준 권한으로 이 일을 하십니까?”묻습니다. 이 말씀을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당신에게 권한을 주신 분이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라는 질문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권세가 사람에게서 온 것입니까? 아니면 하늘에서 온 것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권세가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민중들이 요한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소요가 일어날 것이고 요한의 권세가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믿는다고 하면 왜 요한을 믿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니 그들은 모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도 말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십니다.

▪ 광야의 권위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성전중심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율법을 성전체제를 강고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율법의 정신인 고난 받는 자들을 해방하는 역할은 사라지고 기득권을 옹호하고 보장하는 정치적 도구가 됨으로 민중들을 정죄하고 힘들게 하였습니다. 당시 민중들은 제국의 멍에와 종교적 멍에를 함께 짊어져야했습니다.
이 때 광야에서 새로운 권위가 나타났습니다.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체제의 중심부에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이었고 그 또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체제로는 민중을 구원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광야로 나아간 사람입니다. 그는 제사장역할로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며 스스로 광야에 나가서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요한의 예언입니다. 더 이상 성전체제인 율법주의로는 안 된다며 성령의 운행을 믿는 광야를 택한 것입니다. 전통과 율법이 주는 권위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는 권위입니다. 구약의 사사시대의 사사들이 하나님에게 직접 성령을 받고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였던 권위입니다. 예수는 그 요한의 권위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예수는 요한의 제자가 되었고 성전체제보다는 광야제체를 따르고 성전의 권위보다는 광야의 권위를 따릅니다. 결국은 성전체제와 광야체제의 충돌이며 권위주의적 권위와 평면적 권위의 충돌입니다. 이는 세기의 충돌이었습니다.
예수는 철저히 세례 요한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직접 계시를 인정하고 선언한 권위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토대로 말하였지만 예수는 율법은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한다며 율법을 넘어선 주체적 권위로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이것이 빌미가 되어 율법을 파괴하는 자로 낙인이 찍혔고 그것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 새로운 권위
오늘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에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는 성전에서 자연스럽게 무리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그를 랍비로 생각했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동요되고 추종하자 율법학자들이 시기하며 비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전체제에서는 위험인물로 정하고 예수의 비리와 문제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예수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에게 오해를 받게 되고, 신성모독죄로 급기야 죽음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나 성전주의자들이 절대시했던 율법이나 성전을 상대화했으며, 또한 자칭 그리스도라고 했다는 누명을 쓸 정도로 유대고 지도자들의 시각에서 아주 위태로운 경계선을 넘나들었습니다. 

마가복음서 1장 22절 말씀에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라고 소개합니다. 곧 이어서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이 정신을 차리게 되는 사건을 보고 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그가 악한 귀신들에게 명하시니 그들도 복종하는구나!"(27절).

당시 유대전통의식과 율법주의에 절어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위에서 신선한 이상을 보았고 그들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권위를 경험했습니다. 그들이 화려한 성전을 버리고 광야로 나간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들을 구원할 새로운 길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문제로 넘어갈 수 없을 만큼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 잘못된 권위
율법학자들은 말 그대로 그 당시 최고의 학문적 권위를 갖고 있던 집단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본다면 최고의 명문대학교를 나오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전문가 집단입니다. 당시는 종교와 사회의 구분 없이 최고의 학문적 권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율법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율법학자들은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율법 공부에 전념했으며, 그 이후로 평생 동안 율법을 연구하고 성서를 필사하는 일에 종사했습니다. 이들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 사회가 제국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민족적 정신을 잃지 않고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율법학자들을 존경하고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지금 우리 현실과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의료 파업에 나선 의사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시대를 세우는 지도자라고 보기엔 너무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코로나 19 정국이 국민의 안전과 목숨을 위협하는 그 절박한 시기에 자신들의 밥그릇만을 챙기는 모습은 천박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법조계는 어떻습니까? 극우화된 법조계의 수사와 판결은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언론은 어떻습니까? 자본의 논리에 충실하여 정론을 꺾은 기자들도 이제 이 시대를 맡길 수 있는 지도자들이 아닙니다. 종교계는 어떻습니까? 특히 개신교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은 국민들을 실망스럽게 했고 종교에 대한 기대를 접게 하였습니다. 불행한 사건입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이들이 실력이 없기 보다는 정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율법학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을 이용하여 신도들의 눈을 가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을 선동하여 갈등과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였습니다. 당시 정권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민중들의 고혈을 빨아먹었습니다. 민중을 해방해야할 율법은 민중들을 옭아매는 도구로 전락되었습니다. 그리고 민중을 어리석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르기 보다는 세속의 가치를 따르게 만들어 사회 진보에 걸림돌이 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종교가 왜곡되면 어떻게 되는지 그 참담함을 보고 있습니다.

▪ 예수의 권위
요한복음 2장의 말씀에는 그 유명한 "성전숙청" 사건이 보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거나 환전하는 사람들의 상을 뒤집어엎으시고 채찍으로 소와 양을 내어 쫓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주겠소?" 성전의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가르침과 행위가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아무도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는데, 이것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온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 악을 넘는 권위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어떤 악령 들린 사람이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시려 하십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입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더러운 악령은 그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더러운 악령들도 굴복하는 현상을 보고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권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악령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능력입니다. 악령으로부터의 해방! 예수님은 이 일을 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은 백성들을 정죄하고 억압했지만 예수님은 제국의 멍에와 종교적 맹종에서 그들을 해방하였습니다.

▪ 진정한 권위로
요즘은 하루하루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맑은 하늘은 참 오랜만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나 볼 수 있는 푸른 하늘을 날마다 보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가을을 만끽하십시오.

진정한 권위는 사랑의 권위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이 악랄하게 전개되어도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통하여 제 자리로 돌려놓으실 겁니다.

예수의 권위는 세상이 주는 권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권위였습니다. 누구에 의해 세워진 존재가 아니라 저 스스로 선 권위였습니다. 법은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이미 자신 안에 법보다 더 높은 법이 있음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당신 안에 계시면 당신이 가는 곳이 성전이며 당신이 곧 율법이며 당신이 진리요 당신이 생명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예수의 권위는 주체적 선언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네가 곧 우주다’라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나라갈 길은 분명합니다. ‘내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란 주체적 신앙의 선언입니다. 이 선언이 우리의 삶을 우주적이게 합니다.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적이게 합니다. 이 길을 한 번 걸어봅시다. 세상에 살면서 하늘의 길을 걷는 행운을 누리는 길입니다. 이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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