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향한 민중의 갈망, 그 누가 막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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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향한 민중의 갈망, 그 누가 막으랴
  • 백창욱
  • 승인 2020.09.2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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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 진밭 기도회(20. 9. 24), 누가 9:7-9 “목을 베어 죽였는데”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남지은의 토요명작 리플레이’라는 코너가 있다. 12일(토)에는 1995년에 방송했던 <모래시계>를 다루었다. 아뿔싸. 그 기사를 보고 나서 그만 꽂히고 말았다. 설교준비를 미루고 유튜브로 모래시계의 명장면들을 연거푸 봤다. 25년 후에 다시 봐도 여전히 뭉쿨하다. 출연배우나 기자나 꼽는 명장면들이 있지만, 나도 한 장면이 가슴에 남는다. 안기부가 강우석검사를 잡아간다. 수뢰비리가 있는 제일 높은 놈 수사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순순히 따르지 않아서다. 그리고 검찰 고위간부를 만나서 협조를 구하는 장면에서, 그 검찰간부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검찰에 강검사만 있는 줄 아시는데, 검찰에 강검사 말고도 수사할 사람 많아요”하는 말이다. 그 대사에 울컥했다. 현재의 검찰과 너무도 대조가 됐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으로 내가 경험한 검찰은 표정도 감정도 없어 보이는 그냥 법좀비였다. 또는 그냥 정해진 수순대로 달리는 경주마다. 또는 그들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물라고 하면 무는 권력의 개다. 진실이나 선, 정의여부와 관계없이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양아치 같더라도 수단을 총동원하여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그 모습을 보자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비록 드라마지만 너무 멋있게 말하니, 울컥할 밖에.

사진제공 : 강형구님
사진제공 : 강형구님

오늘 복음은 예수가 벌이는 하나님나라 운동 소식을 들은 헤롯왕의 소회를 전한다. 헤롯이 크게 당황한다. 자신이 분명 요한을 목 베어 죽였는데,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귀신을 제어하고 병자를 고친다니. 요한이 다시 살아났단 말인가, 엘리야가 되살아났단 말인가. 헤롯은 불안감을 감추며 예수를 한번 봐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헤롯의 소회는 모든 권력자들의 심리 상태를 대변한다. 권력자는 모든 일을 권력을 지키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말로는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고 시도 때도 없이 말하지만 그건 그냥 정치적 수사다. 하기야 본심은 권력유지라고 솔직히 말할 수도 없기는 하다. 자연히 자리에 대한 불안감은 정적에 대해 초과민 반응을 하게 만든다.

최근 러시아 푸틴이 정적을 독살하려다가 실패한 사례처럼, 인류사에서 무수한 권력자가 정적을 죽이거나 죽이려고 했다. 그래서 이승만은 이주하와 김삼룡을 제거하였고 조봉암을 법으로 살해했다. 박정희는 장준하를 살해했고 인혁열사들을 역시 법으로 살해했다. 김대중도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전두환은 살해는 아니지만 굵직한 정적들을 모두 감옥에 보내거나 활동을 못하도록 묶었다. 그리고 권력자가 권력을 유지하는 방편이 꼭 정적제거만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야심이 가로막힐 때는 폭력을 써서 밀어붙인다. 그래서 전두환은 저항하는 광주시민들을 살해함으로 권력찬탈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노태우는 수세에 몰린 정세를 뒤집으려고 공안정국을 획책해서 많은 젊은이들을 분신으로 몰았다. 이명박은 자신의 전매특허인 개발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용산철거민들을 살해했다. 박근혜는 수세에 몰린 정국을 뒤집기 위해 세월호를 제물로 삼았다. 이처럼 권력자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한다. 권력의 철칙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권력의 의중이 성공하는가? 통하는가? 헤롯은 요한을 제거하면 모든 게 잠잠할 줄 알았지만 뜻밖에 예수가 요한보다 더 큰 파급력을 나타냈다. 한국 현대사도 예외는 아니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정신을 이어받아 반드시 다음 사람이 나타났다. 왜 그런가? 그 어떤 권력도 정의를 향한 민중의 갈망을 잠재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보편성인 평등의식은 사람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루고자 하는 지향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향하는 이상, 가치, 목적은 사람을 죽인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문재인은 사드를 강제 배치할 때도 그 후 사드를 고정화하려는 과정에서 열 번 이상 공권력 폭력을 동원했다. 사드무기를 들여 넣을 때도, 공사 장비를 들여 넣을 때도, 심지어 똥차, 쓰레기차, 기름차를 들여 넣을 때도 경찰들을 풀었다. 그러나 잠잠하기를 바라는 권력자의 의중은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도 소성리는 한시도 변함없이 사드철거투쟁중이다. 사드철거 투지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다. 권력자는 이렇게 말할 법도 하다. “아니, 우리가 얼마나 자주 수천 명 경찰들을 풀어서 주민, 시민들을 짓밟았는데 어째서 소성리는 계속 시끄러운 거야? 저항이 멈추질 않는 거야?” 하며 되레 기막혀 할지도 모른다. 사드없는 평화세상을 지향하는 소성리 민중의 갈망을 어느 권력이 제거하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다 죽이면 잠잠할까. 폭력에 눌린다고 폭력에 굴복하는가? 전쟁무기 사드가 안보마피아들에게만 좋을 뿐 이 나라뿐만 아니라 소성리에는 재앙인 것을 아는 이상, 사드가 오직 미제 무기일 뿐, 사드를 고정할수록 우리나라는 미제 속국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실이 될 게 빤한 이상, 사드철거가 우리의 지향으로 자리 잡은 이상, 사드를 철거하는 일 외에는 저항을 잠재울 수 없다. 사드 빼라. 참 권력인 하나님이 명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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