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미,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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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미,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 백창욱
  • 승인 2020.09.2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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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성서학자가 들려주는 기독교와 성소수자 이야기

 사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맨 앞에 있는 임보라목사의 추천 글만 읽고 말려고 했다. 펀딩에 참여한 연고와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잭 로저스의 <예수성경동성애>, 한티재 발행인이 당사자이기도 한 <커밍아웃스토리> 등을 통해 동성애 쟁점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한국기독교연구소의 자매기관인 무지개신학연구소에서도 성소수자들을 위한 책들이 연거푸 나오고 있어서이다.

그런데 손에 딱 잡히는 만만한 크기의 편집 때문인가, 첫 장부터 술술 읽히기 시작해서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읽은 소감은, 안 읽었으면 나만 손해날 뻔 했다. 솔직고백하자면 제대로 공부했다. 성실한 성서학자의 치밀한 논증에 흠뻑 빠졌다. 대충 아는 건 제대로 아는 게 아님을 또한번 각성한다.

그래서 생기는 의문이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공부하지 않는데 있다. 입에 거품 물고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극우 개신교인들은 동성애에 대해서 얼마나 알까. 내가 볼 때, 책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허다하다. 왜냐하면 동성애 책만 읽어도 그게 무조건 반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극우 개신교인들은 공부하지 않고 그냥 자기 진영의 스피커가 떠드는 이야기를 따라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는 그 풍토에서 가짜뉴스가 쏟아지듯이, “동성애는 나빠, 동성애는 죄야” 하는 전제를 내려놓고 무조건 반대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 폐단은 기독교 전체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숨기고 숨 죽인 채 살아가는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은 생각도 못 한다. 예수가 일세기 팔레스타인 땅에서 기득권 세력이 사회약자들에게 가하는 차별을 반대하고 소수자 편을 들다가 십자가 처형을 당했는데, 예수를 골수로 믿는다고 자처하는 개신교인들이 예수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니... 참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서 저자는 성서학자답게 동성애 반대의 근거로 삼는 성서말씀을 치밀하게 규명한다. 나도 성서에 대해 조금 안다고 자처하지만, 저자의 깊이 있는 서술을 읽고 깨갱했다. 성서의 한 구절을 주석하기 전에 그 책의 의미를 우선 살피고, 그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과 맥락을 설파한 후에 말씀을 주석한다. 성서를 그저 편하게 썩 먹지 말라는 죽비다. 저자의 수고에 고개를 숙인다.

이 책은 크게 둘로 분류한다. 하나는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고, 둘은 동성애라고 말하는 성서말씀들을 규명한다. 동성애에 대한 오해는 무엇일까? 예를 들면,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동성애는 고칠 수 있는 질병이다? 에이즈를 유발한다? 등 늘 논란거리가 되는 물음들을 쉽고 평이하게 깨끗이 정리한다. 아, 이렇게 훤하게 보이는 사실이 어찌하여 그들에게는 안 보인단 말인가. 나도 주변에서 들은 바 있는 악의적 소문 중에는 이런 게 있다. “동성애를 허용하면 소아성애, 수간도 허용해야 하고, 군대강간이 많아지게 되지 않나요?” “소아성애는 아동학대고 수간은 동물학대고 군대내 강간은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에게 합니다.” 동성애자와 아무 관련 없다는 말이다.

성서에 동성애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말씀이 몇 군데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9장(소돔과 고모라이야기), 사사기 19장, 레위기 18:22, 20:13, 고린도전서 6:9, 로마서 1:26-27 이다. 저자는 이 말씀들이 나오게 된 배경과 상황에 대해 정말 말 그대로 탈탈 턴다. 그 구구절절한 서술을 다 옮길 수는 없지만 압축해서 전하자면, 성서에 나온 위의 말씀들이 현대의 동성애 개념과는 다르다고 한다. 가령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동성애가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 행하려 했던 폭력 행위, 모욕을 주려는 집단강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이야기 구조인 사사기 19장에서, 레위인 첩이 강간당하고 시신이 열두 조각나는 처참한 이야기는 가부장제 폭력사회에서 여성의 희생이기 때문에 말없이 지나갔다고 꼬집는다. 그러나 저자는 로마서 1:26-27 말씀은 바울이 동성애에 반대하는 인식을 보여준다고 분명히 말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우리의 성관념과 바울과 그의 시대의 성관념은 다르다.

나아가서 오늘날 우리는 인간 성애의 성격과 구조에 대해 바울보다 더 정확하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동성애에 대해서도 더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보다 더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행운을 우리는 타고 났다.”(354쪽)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끝맺는다. “오늘날 로마서 1:26-27에 근거해서 성소수자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바울이 로마서에서 열렬히 주장한 하느님의 철저하고 보편적인 은혜에 대한 소식을 왜곡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로마서 전체를 왜곡하는 것이다.”(355쪽) 할렐루야! 이렇게 정확하게, 또 무엇보다 성소수자 편에서 이야기하니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좋을까.

진정으로 하나님말씀으로 위로받을 것이다. 이처럼 전후좌우 치밀하게 논증한, 올바른 해석은 얼마나 귀한가! 복음도 해석임을 새삼 느낀다. 한국 사회가 보다 더 소수자를 포용하는 사회로 발전하는 데 이 책이 디딤돌이 되기를. 연구실에서 고고하게 있지 않고 현장의 고민을 안고 함께 씨름한 저자에게 박수를, 또 저자가 말하기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책을 끝까지 쓸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은 한티재 오은지대표에게도 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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