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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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의 원리
  • 양재성
  • 승인 2020.09.20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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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길입니다(마태복음 20장 1~16절)

▪ 한국교회의 정체성
꼬마 감자가 엄마 감자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나 감자 맞아?”
엄마 감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당근이지!”
그 길로 꼬마 감자는 가출했습니다. 엄마 감자가 자기보고 ‘당근’이라고 말하자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가출을 했다가 돌아온 꼬마 감자가 할머니 감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할머니, 나 감자 맞아?”
경상도 출신의 할머니 감자가 대답했습니다.
“오이야(오냐)”
그 길로 꼬마 감자는 또 다시 집을 나갔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교회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없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란 ‘주님의 몸’이요 ‘성령이 거하는 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이란 머리이신 주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존재란 뜻이요 성령의 전이란 교회 안에 거룩하고 신성한 존재가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주님의 뜻을 아는데 목숨을 걸어야하며 교회 안에 거하는 모든 존재가 거룩함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주님의 뜻을 모르면 엉뚱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고 모든 존재 안에 계신 거룩한 영을 잊으면 그 사람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결국은 하나님을 배반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 정국을 지나면서 한국교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상은 하였지만 훨씬 더 참담합니다.

한 때 민족을 구원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거룩한 신뢰를 입었던 교회입니다. 경찰서 100개보다 교회 하나가 더 낫다고 칭찬했고 교회가 있는 곳은 민주주의와 복지 안전망이 구축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국민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교회는 자신의 것을 내어 놓고 나누었습니다. 어떤 때는 목숨을 걸고 국민을 섬겼습니다. 한국교회는 학교와 병원을 짓고 고아원과 양로원을 지어 어려운 이웃을 섬겼으며 시민사회운동과 환경운동, 여성운동과 통일 운동, 노동운동에도 깊이 관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걱정하고 세상의 아픔을 짊어져야할 교회가 세상의 걱정거리가 됨은 물론 세상을 아프게 하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나쁜 존재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분노와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되었습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이러다가 교회가 이대로 붕괴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가 됩니다.

전광훈과 사랑제일교회에 비하면 신천지는 오히려 신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신천지를 조롱하고 비난하던 교회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전광훈과 사랑제일교회의 무모한 행위가 한국 개신교의 붕괴를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감염 사실도 숨기고 치료도 거부하고 마스크 착용도 거부함으로 코로나 19를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국민들의 원성이 말도 아닙니다. 지금 보수 교회는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이를 거부하는 자들은 마귀 사탄으로 매도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어 신앙 공동체로서 품위를 상실하였습니다.

▪ 시병원과 스크랜턴 선교사
하지만 초기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교회가 딛고 있는 바탕이었지만 교회는 대사회적인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교회는 철저하게 사회에 봉사하는 단체로 이해되었습니다. 하늘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라기보다는 이 땅에 실현해야할 곳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1886년 “윌리엄 스크랜턴의 연례보고서”(275-276p)를 보면, 시병원에서 처음으로 치료한 환자는 풍토병에 걸려 서대문 성벽 아래 버려졌던 여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도성을 따라 걷고 있을 때 나는 그렇게 버려진 한 엄마와 딸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은 단지 가마니 한 장은 깔고 또 다른 가마니 한 장을 덮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구걸에 의지했습니다. 남편은 그들을 거기에 버려두고 시골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날 밤 아주 큰 추위에 빠졌을 때 나는 막노동꾼을 불러 그 여자에게 다시 가게 되었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세 주간이 흐른 후 그 여자는 하루가 다르게 건강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당신이 기뻐할 만큼이나 밝고 행복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불행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회복되어 가는 것을 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보람이 있는 일입니다. 그 여자가 앓고 있던 이 질병은 이 계절에 한국에서는 대단히 자주 일어나는 회귀열이란 병으로 아주 무서운 질병 중의 하나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날 밤 들것에 실어 여인을 병원으로 옮긴 짐꾼들의 입을 통해 스크랜턴의 ‘착한 일’은 소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죽어 가는 환자를 치료해서 3주 만에 살려냈다는 소문이 나면서 스크랜턴의 시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알렌의 제중원이 국가지원으로 운영된 반면에 스크랜턴의 시병원은 선교사들의 후원으로 운영되었고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들이 주로 찾았습니다. 서민대중을 위한 병원이었습니다. 실제 당시 의료 선교사들과 병원은 콜레라 전염병 때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물을 끓여서 먹게 하였고 손을 씻게 하는 등 위생교육은 물론 치료에 혼신의 힘을 다 했습니다. 덕분에 콜레라는 빨리 잡혔고 병원은 신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한국선교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교회가 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1700년대 조선은 콜레라가 창궐하여 10명에 9명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헌데 1895년에는 콜레라 환자 10명 중 6명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에비슨과 스크랜턴 등의 방역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에비슨을 비롯한 의료선교사들이 헌신한 바탕에는 복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선교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이니, 첫째로 그들에게 이 사랑이 있기에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이곳까지 왔으며, 만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하나님의 자녀들을 도와주는 일을 위해 생명까지 바칠 각오가 돼 있습니다. 이를 본 신도들도 선교사들을 찾아 병실에서 환자를 간호하겠다고 자원했고 많은 조선인이 복음에 관심 갖게 됐습니다.”(기독신보 1932년 5월 4일, 에비슨 박사 소전(16))

▪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조사
기독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인식을 조사하였습니다. 방역에 대한 정부 신뢰도를 묻는 문항에 73.7%가 긍정적으로 응답했습니다. '정부·지자체의 종교 집회 자제 권고 조치가 종교의 자유 침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7.2%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습니다. 응답자 87.9%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심각하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이번 인식 조사로 개신교인들의 정부 신뢰도 및 종교의 자유 탄압 인식도가 개신교인들의 정치적 입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4월 총선 이후 중도 성향이라 밝힌 개신교 신자 비율이 38.9%로 보수(28.8%)나 진보(31.4%)보다 다소 높아졌는데, 이념 성향에 따라 정부 신뢰도가 크게 차이 났다는 것입니다.
이번 조사는 "보수적 스탠스를 지닌 소수 교인(17%)이 현재 전체 한국교회를 과잉 대표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 하늘나라의 원리
오늘 성서일과는 마태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20장의 말씀입니다. 일명 포도원 주인의 비유입니다. 마태 공동체는 어느 복음서보다도 많이 하늘나라에 대한 말씀과 비유를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도 하늘나라의 비유입니다.
하늘나라는 포도원 주인과 같습니다. 어떤 주인이냐면 장터에 가서 일을 구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불러 자신의 포도원에서 일하게 하고 하루의 품삯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는 아침 9시 12시 오후 3시 5시에 나아가서 빈둥빈둥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서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곤 하루의 품삯을 주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도 나중에 1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하루 품삯인 1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나중에 온 사람은 주인의 처사가 놀랍게 감사하였지만 아침부터 일한 노동자들은 불만이 많았습니다. “주인님,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공평하지 않습니다. 방금 전에 와서 1시간 일한 사람과 하루 종일 일한 우리와 품삯이 같다니 불공평합니다.” 이에 주인이 “내가 너 하고 일당 1데나리온에 계약을 하지 않았느냐 그 품삯을 가져가라. 내가 1시간 일한 사람에게 일당을 주었다고 네가 나를 비난할 셈이냐”며 꾸짖었습니다. 그리고선 으뜸이 되고자 한 이들 중엔 꼴찌가 된 사람이 있고 꼴찌를 하던 사람 중에 더러는 첫째가 된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놀라운 반전입니다.

▪ 기본소득
여기에서 하늘나라는 세상 제국과는 그 작동 원리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제국의 원리는 철저히 힘의 논리 자본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하늘나라는 생명의 논리 사랑의 논리로 운영됩니다. 그 생명이 살아가는 기본 소득은 보장하자는 것입니다. 당시 한 가정은 한 사람의 일당으로 유지되었습니다. 가장이 일을 할 수 없다면 그 가정도 고난을 당해야합니다. 주인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1시간 전에도 나가서 일감을 얻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일감을 제시한 것입니다. 가정의 붕괴는 공동체의 붕괴를 불러와 더 큰 고통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이 붕괴를 막을 수 있는 길은 더 가진 자들이 나누는 것입니다. 그냥 나누면 구걸과 시혜가 되니 정당한 일을 통해 배분한 것입니다. 주인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기본소득이란 가치를 선진국에서는 벌써 오래전에 시도하였지만 우리나라는 코로나 19 정국을 지나면서 실험하고 있고 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 꼴찌들의 나라
제국이 첫째들의 나라라면 하늘나라는 꼴찌들의 나라입니다. 제국이 잘나고 힘 있는 자들의 나라라면 하늘나라는 보잘 것 없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자들의 나라입니다. 철저히 자비의 원리로 작동하는 나라입니다. 소유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고 존재로 인식되는 나라입니다.
제국은 힘 있고 잘 난 사람들을 세워 민중을 지배했지만 하늘나라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연약한 민중이 주체가 되는 나라였습니다. 예수는 주변부 인생들을 중심부로 안내했고 주변주 인생이 하늘나라의 주인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렇듯 하늘나라는 철저하게 병들고 버림받고 힘없는 자들을 통해 오고 있습니다.

▪ 진정한 노동
에덴에서는 최초의 인간이 하나님에게 불순종함으로 벌로 준 것이 노동이라고 지적하지만 노동은 신성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일하시니 당신도 일하신다고 했고 바울사도도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지극한 정성으로 심는 자는 그대로 거둔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도로테 죌레는 사라과 노동에서 사람이 두려워 할 일은 비인간적으로 되는 일, 단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거의 의식 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를 지배하는 이 시대의 중요한 이데올로기들 중 하나에 대해 저항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것은 노동을 유급 노동과 동일 시 하는 것입니다. 노동에 관련해서 우리는 창조가 아니라 돈을 생각합니다. 노동이 삶을 유지하고 충만하게 한다는 점에서 노동 그 자체를 의미 있는 것으로 보는 대신 노동을 급료와 관련지으며 경제적 소득에 따라 평가합니다. 이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 만큼 노동의 의미는 공허해집니다. 우리는 노동시장을 떠나서는 아무의미가 없는 상품으로 노동을 축소시킵니다. 자본주의의 야만성은 노동자들에게서 노동의 존엄성을 빼앗는데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만이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노동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 일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 많습니다. 실제로는 그 노동이 생명을 살리고 사회진보에 얼마나 기여하고 인류 공영에 헌신하느냐하는 것입니다. 돈에 종속된 노동관을 거부하지 않고서는 노동의 신비를 알 수 없습니다. 제국은 돈으로 환치된 노동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늘나라는 돈이 아닌 생명의 기반과 공동체를 위한 노동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공교회성 회복
한국교회는 여러 모습에서 이미 위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공교회성을 상실하고 개체교회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래도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그건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한국교회는 코로나 19 정국을 지나면서 철저히 자기들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모습으로 비처지고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엔 관심 없는 위험한 단체로 보여 진 점을 주목하고 언론과 정부를 비난할 것인 아니고 철저히 정체성을 회복해야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보여주었고 그 헌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며 우주적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하늘나라를 실현하려고 세상에서 불러 낸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화려한 예배당을 짓고 자본의 포로가 된 교회는 운명처럼 바벨탑을 지향합니다. 결국 자신도 망하고 세상도 망하게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바벨탑을 버리고 공교회성을 회복함으로 어려움 당하는 이들을 돌보고 그들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길입니다.

사랑제일교회 주변 시장 상인들을 지원하는 교회가 생겼고 전세금을 빼내어 실업자가 된 교우들을 지원하는 교회도 생겼습니다. 교회건물을 서로 함께 쓰는 쉐어 처치(SHARE CHURCH)가 생겼고 통폐합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놀라운 반전입니다. 건물로서의 교회는 박물관이 될지는 몰라도 사랑의 실천은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살리는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 길이 제국의 길에서 벗어나 하늘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하나님의 길입니다. 이 길로 나아갑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감동과 기쁨을 얻을 수 있는 행복한 길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멋진 길입니다. 그 길을 가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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