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발에 향유를 발랐다
상태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발랐다
  • 백창욱
  • 승인 2020.09.18 08: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성리 진밭 아침기도회(20. 9. 17)
누가 7:36-38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발랐다”


누가복음의 특징이 있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여성을 중심인물로 하는 이야기가 잘 나온다. 예를 들면, 18년 동안 귀신 들려 꼬부라진 한 여자가 고침받은 이야기(13장), 열 드라크마 중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이야기(15장), 또 오늘 본문처럼, 죄를 지은 한 여자를 중심소재로 삼는다. 성서비평을 할 때, 이야기 내용뿐만 아니라 구도 설정 배열 등 편집상의 여러 특징들을 통해 하나님말씀의 뜻을 파악하듯이, 주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성을 이야기 소재로 삼는 편집을 통해 누가복음의 성격을 대강 알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을 균형있게 다루는 배열에서 평등세상을 지향한다고 소박하게 평할 수도 있고 좀 더 거창하게 말할 때는 주류질서를 뒤엎는 전복성이 가득한 문서라고 할 수도 있다. 오늘 복음도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기존질서에 반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도대체 무엇이 기존질서에 반한단 말인가? 차근차근 풀어보자.

소성리에서 아침기도회를 인도하는 백창욱님 (사진제공 : 강형구님)
소성리에서 아침기도회를 인도하는 백창욱님 (사진제공 : 강형구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는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리스도가 된 것이다. 히브리어 메시아도 같은 뜻이다. 메시아는 기름부음을 받으므로 그 사람이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라는 상징을 가진다. 대표적인 예가 다윗이다. 선지자 사무엘이 청소년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 이 의식은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택함 받았다는 상징이다.(삼상 16장) 이처럼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가 되는 조건이 있다. 권위있는 사람이 기름을 붓는다. 보통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선지자가 그 일을 수반했다. 그리고 기름은 머리에 붓는다. 그럴 때 기름부음이 제대로 완성된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서 오늘 복음을 다시 보자. 예수도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런데 누가 기름을 부었나? 선지자인가? 선지자급 바리새인가? 아니다. 죄인인 한 여자다. 공동번역은 행실이 나쁜 여자라고 소개한다. 이것부터가 파격적이다. 기름부을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주체로 등장한다. 기존질서에 상당히 어긋난다.
그리고 어디에 기름을 붓나? 여인은 자기의 전 재산을 털어서 구입했을 옥합 향유를 머리가 아니고 발에 붓는다. 이것도 파격이다. 기름은 머리에 붓는 거다. 그런데 여인은 그런 기존관례에 구애받지 않고 발에 부었다. 여인은 나름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독창적으로 기념했다. 이것 말고도 여인의 독창성은 더 있다. 이러한 퍼포먼스를 바리새 집에서 했다. 기존 법칙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융통성없는 바리새 집에서 기름부음 의식을 행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바리새야 좀 보고 깨우쳐라” 하는 묵시가 아닐까.
게다가 여인의 동작을 보자. “예수의 등 뒤에 발 곁에 서더니, 울면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랐다.”(38절) 바리새문화는 사람 차별하는 정결례법에 찌들어 있다.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바리새 집에서 죄인인 한 여성이 한 남성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심지어 기름까지 바르는 행위는 스캔들이다. 부정한 여인의 접촉행위는 성한 자도 죄인이 되는 금지행위다. 그러나 여인은 그런 금기에 구애받지 않았다. 자기 식대로 예수를 존숭했다. 여하튼 기름을 부은 이 행위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모시는 전례가 됐다.
집주인 바리새는 죄인인 여자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면서 예수를 못마땅해 한다. 그러나 예수는 여자 편을 들며 바리새를 책망한다. “너는 내가 집에 들어왔을 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었다”면서, 여자를 극찬하고 죄사함을 선언한다.

사드철거투쟁을 오늘 복음에 적용해 보자. 미제를 상대로 무엇을 반대하는 행위 자체가 이 나라에서는 그동안 금기사항이었다. 그런데 한번 묻자. 언제까지 미국에 종노릇하며 살아야 하는가? 주한미군 철거가에 나타나듯이,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놈이나 미국놈이나 그 놈이 그 놈이다. 일본놈들은 우리나라를 40년 지배했는데 미국놈들은 그 갑절의 세월동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 오랜 지배세월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너무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어제 티브 자막뉴스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59%라는 보도를 봤다. 여전히 통계상 반이 넘는 수가 미국을 우호적으로 인식한다. 한숨 나오는 통계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희망도 있다. 해방 후 75년을 온통 미제가 지배해 온 나라에서 미제에 대한 긍정도가 90-100%가 아니고 겨우 반을 넘긴 정도인 것을 보면, 시민들 의식이 점점 깨어나고 있다는 희망으로 본다. 죄인인 여성이 자기 식대로 주체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존숭했듯이, 우리 역시 이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주체적으로 서야 한다. 미국의 나와바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드철거투쟁은 그 길로 가는 시금석이다. 더욱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자.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이다. 아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