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아가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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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아가게 하여라
  • 백창욱
  • 승인 2020.09.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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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20. 9. 13) 성령강림 후 열다섯 번째 주일(출 14:19-31)

본문은 통쾌합니다. 천하무적 애굽 군대가 궤멸 당합니다. 바로의 모든 군대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최신병기인 병거와 기병도 다 바다 속에 잠겨버립니다. 역대 이스라엘이 치룬 전쟁 중 가장 큰 승리라고 할 만합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털 끝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승리가 있을까요. 승리의 내용도 획기적입니다. 인류사에 이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바닷물을 밀어내고 바다 가운데 길을 냈습니다. 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었다(22절, 29절)는 말씀처럼, 보편세계의 물리를 뛰어넘는 일입니다.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넌 사건은 출애굽 사건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이 엄청난 사건은 무엇을 말하나요? 정말 이런 일이 있었나요? 이러한 초역사적인 사건이 암시하거나 상징하는 뜻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오늘 사건의 배경부터 보겠습니다.

홍해횡단 사건은 야웨가 처음부터 의도한 사건입니다.   
“바로는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블레셋 사람의 땅을 거쳐서 가는 것이 가장 가까운데도, 하나님은 백성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바꾸어서 이집트로 되돌아가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셨기 때문이다.”(출 13:17) 

지도를 보면,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굳이 홍해바다를 건너지 않고 육로로 애굽에서 바로 가나안으로 가는 좋은 길이 있습니다. 넉넉잡고 보름이면 가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일부러 그 노선으로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직행로로 가는 중에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이 바뀌어서 애굽으로 돌아갈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수백 년 동안 노예로만 살았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정신도 의지도 없습니다. 이들의 정신상태가 어떤지는 바로군대가 바로 뒤까지 추격했을 때 하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말하였다. 이집트에 있을 때에, 우리가 이미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광야에 나가서 죽는 것보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더 나으니, 우리가 이집트 사람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14:11,12) 
그들은 막상 위기가 닥치자, 자유인으로 사는 것보다 노예살이가 낫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주체성이 바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야든지 이 나약한 백성들 보호하려고, 이 백성이 다른 부족과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 홍해로 가는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야웨는 또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믹돌과 바다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쪽 바닷가에 장막을 치라고 하여라. 그러면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막막한 광야에 갇혀서 아직 이 땅을 헤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바로의 고집을 꺾지 않고 그대로 둘 터이니, 그가 너희를 뒤쫓아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와 그 군대를 물리침으로써 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니, 이집트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출 14:2-4) 야웨는 이 참에 바로 군대를 휩쓸어버려서 당신의 이름을 만방에 떨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런 두 가지 계획 속에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바닷가에 이른 것이고 오늘 말씀처럼 야웨는 바로 군대를 섬멸합니다. 야웨가 추격하는 바로군대의 병거바퀴를 벗겨버렸을 때, 애굽사람들이 공포에 질려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쫓지 말고 되돌아가자. 그들의 주가 그들 편이 되어 우리 이집트 사람과 싸운다!’ 하고 외쳤다.”(25절) 천하제일 애굽 군대가 자신들 입으로 새로운 신이 등장했다고 말합니다. 애굽제국을 받쳐주는 신의 아버지 ‘눈’이나 태양신 ‘라’가 아닌 눌린 자들의 편인 야웨라는 신이 있음을 실토합니다. 이처럼 홍해사건은 애굽군대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려서 만방에 반제국주의이자 체제변혁적인 신이 등장했음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이 반제국주의며 체제변혁적인 신의 등장을 누가 가장 반길까요? 두말할 것도 제국에 눌린 자들입니다. 그들도 똑같은 해방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은 무엇을 말하나요? 정말 이런 일이 있었나요? 이러한 초현실적인 사건이 암시하거나 상징하는 뜻은 무엇인가요? 구약 성서의 사건 서술도 복음서 편집과정과 비슷하다. 홍해사건은 기원전 14세기 그 때 이런 일이 있었다는 현장중계가 아닙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 사람들 의식 속에 신화로 완전히 자리 잡은 즈음에, 그 때 일을 소환하여 출애굽 사건을 재생산하는 서술입니다. 
오경 전체 편집도 훨씬 후대의 산물이듯이, 출애굽사건과 그 안에 담겨 있는 홍해사건도 후대가 야웨신앙 관점으로 회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재는 과거 이야기이지만 ‘지금 여기’를 사는 그들의 현재심경을 담았습니다. 옛날 일 자체보다는 지금 그들이 처한 상황과 실존을 반영한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역사회고적 고백을 하는 것인가요?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주목하면 매 절마다 등장하는 주어가 있습니다. ‘주님께서’입니다. “주님께서 밤새도록 강한 동풍으로 바닷물을 뒤로 밀어 내시니”(21절)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에서 이집트 진을 내려다보시고”(24절) “주님께서 병거의 바퀴를 벗기셔서”(25절)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바다 한가운데 빠뜨리셨다.”(27절) 공동번역은 더 분명합니다. 온통 야웨께서 어떻게 하셨다는 고백이 줄줄이 이어집니다.(21, 24, 25, 26, 27, 30, 31절) 상대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손끝 하나 가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바다를 건널 뿐이고 모세만 쳐다 볼 뿐이고 해변에 널려있는 애굽 병사 시신만 볼 뿐입니다. 오직 야웨께서 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합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이렇게 수동적인가요? 이스라엘이 수동적 존재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 그들의 상황이 애굽에 눌렸던 조상들 신세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야웨를 바라볼 뿐입니다. 그들이 홍해사건을 서술하는 심경은, 차마 직접 말은 못하지만, 애굽은 바벨론이고 애굽군대는 바벨론군대를 암시하고 야웨가 바로신 눈과 라을 쓸어버리듯, 야웨가 마르둑을 쓸어버릴 것이라는 간절한 희망의 서술입니다. 그렇게 야웨가 완벽히 승리해야 조상들이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듯이, 자신들도 노예살이에서 풀려나 고향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바람, 기대, 소원을 담아서 홍해사건을 야웨의 완벽한 승리로 고백함으로 또다시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하나님 말씀으로 확증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즉 홍해사건은 야웨가 하신다는 신앙고백을 절정으로 끌어올린 하나의 에피소드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수동적으로 등장하지만 그들은 야웨의 구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야웨가 종내에는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믿음으로 자신을 덮친 죽음과도 같은 시련과 위기를 견디고 극복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런 완벽한 승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완벽한 승리를 얻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홍해가 무섭다고 싫다고 애굽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야웨를 의지하여 홍해를 건너는 게 우리의 노선입니다. “너는 왜 부르짖느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여라. 너는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너의 팔을 내밀어, 바다가 갈라지게 하여라.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14:15,16) 옛 세상과 결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자유와 해방, 참 사람의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이 길에 적극 나서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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