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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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눈으로
  • 양재성
  • 승인 2020.09.0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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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울녹색교회 하늘의 소리(마태복음 18장 1~5절)

창조절

오늘은 창조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찬미하고 창조질서 보전에 앞장서고자 결단하는 절기입니다. 아직도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하여 10명 이상 집합이 금지되어 대면 예배가 가정 예배로 진행됩니다. 장기적인 예배당 비대면 예배 중단으로 향후 교회의 존폐 위기라고 아우성도 있지만 이런 기회에 교회와 예배의 정체성을 회복해야한다는 배움도 있습니다. 특히 비대면 시대에도 잘 적응할 수 있는 교회를 준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자연과의 대면을 넓혀 창조성을 회복하여 삶의 활력을 찾자고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창조성을 깨워내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해가는 교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선장의 딸

어떤 배의 선장이 
여섯 살 난 딸을 데리고 항해를 떠났다가, 
굉장히 심한 폭풍을 만나자 
모든 사람들에게 
구명정으로 옮겨 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심부름하는 여자가 선장의 어린 딸이 잠자고 있는 
선장실로 들어가서 그 아이를 깨우며 말했습니다.

“애야, 빨리 일어나 나와 같이 가자. 
 지금 베가 가라앉고 있단다.”

소녀가 말했습니다.

“우리 아빤 어디 계셔요?”
“선장님은 키를 잡고 계신단다.”

소녀가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렇담, 다시 자겠어요. 
 아빤 제가 이 배에 타고 있는데 
 배를 가라앉도록 내버려두실 분이 아니니까요.”

어린 아이처럼

이번 주 성서일과는 마태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18장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하늘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제자들이 묻습니다. 
“주님,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제일 큽니까?”
이 질문을 보아 제자들은 큰 것에 화려한 것에 높은 것에 성공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나라는 그런 종류의 나라가 아닙니다.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게, 부자가 되는 게, 높은 벼슬을 얻는 것이,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나라입니다. 이를 보아 제자들은 아직도 자신들 속에 숨겨져 있는 하늘나라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어린아이 한 명을 나오라고 하시고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분명이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18장 3절)

이것은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이 하늘나라의 주인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가치 세상의 기준 세상의 질서하고는 전혀 다른 체제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리챠드 범브란트 목사는 자신의 저서 <하나님 구두는 누가 닦아주나요?>에서 이 말씀을 이렇게 풀어냅니다. 
어린 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어린 아이가 보는 눈으로 그 눈높이로 세상을 본다는 의미요 어린 아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뜻인데, 그것은 어떤 다른 면에서보다 신학 문제에 있어서 더더욱 그러합니다.

어떤 아이가 말했습니다.
“성경은 아이들을 위해서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의 아이들만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해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어른들은 뒤에 그냥 남아있었단 말예요. 그리고 하나님의 어린이들만이 천국에 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천국은 어른들이 하나도 없는 나라가 될 거예요.”

우리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많은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사색과 토론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예수께서 의미하신 게 정확히 무엇이었는가요? 우리가 보다 더 단순해지고, 겸손해지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을까요? 어쩌면 우리도 아이들처럼 놀아야 한다는 뜻이었을까요? 우리가 모방해야 할 어린이들의 특징은 정확이 무엇인가요?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본질적으로 철학자인데, 어린이들이 던지는 질문을 보면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입술로부터 아주 심오한 철학적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일은 그리 드문 일 아닙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그 이상의 말을 했습니다. 
그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어른들이 어린이들처럼 장난감을 갖고 놀 것을 권장했고, 자기 자신도 그렇게 하는 것이 도움을 주는 정신 활동임을 발견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아리엘이라는 네 살 된 어린 터키 소녀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팔에 장난감을 가득 안고 돌아오실 거예요. 내겐 피아노까지 갖다 주실 걸요!”
우리가 ‘어린이들과 같이’ 되어있지 않다면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장난감을 주시겠습니까?

안내자인 어린 아이

성서에 보면 “어린 아이가 그들을 인도하리라”라고 쓰여 있습니다.(이사야 11장 6절) 이혼한 부모를 가진 어떤 어린 아이가 이 구절을 읽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왜 우리 어린이들이 자기들을 인도하도록 맡기지 않지요? 우리 같으면 절대로 술집이나 도박장이나 핵무기를 만들거나 전쟁은 하지 않았을 텐데요. 우리가 인도자라면 때리는 일이나 이혼 같은 것은 없을 텐데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 말씀은 우리가 어린 시절의 순진함과 신뢰하는 마음으로 되돌아 가야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심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린이다움’을 주문해서 겉으로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늘 하나님께 의지하여야 하며,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임을 알고 있는, 천성적으로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은 굉장한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구획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엇인 척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학적인 문제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우리에게 특별히 흥미롭습니다.

변화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궁극적인 진리이며 흔들리지 않고 영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변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인식에 의해 하나님은 변해왔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은 변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시대가 급속히 달라지고 있고 인간의 지성도 놀랍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하나님 인식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뜬금없이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볼 것을 당부하십니다. 고정관념이 아니며 세상의 눈이 아닙니다. 순수한 눈입니다. 

선장의 아들

어떤 아이가 바닷가에 서서 
지나가는 큰 여객선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자기를 배에 태워달라고 
선장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옆에 서서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던 
어떤 어른이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얘야, 어리석은 짓 하지 마아라. 
 차는 손을 흔들어 불러 세워서 얻어 탈 수 있지만, 
 여객선은 그렇게 할 수 없단다.”

그런 말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고 
소년은 계속 신호를 보냈습니다. 
갑자기 여객선에서 작은 보트가 한 척 내려지더니, 
선원들이 바닷가를 향해 노를 저어 와서 
소년을 배에 태웠습니다. 
보드에 올라탄 소년이 깜짝 놀라는 어른에게 소리쳤습니다.
“아저씨, 내가 바보짓을 한 게 아니란 걸 아셨죠?
 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했던 거예요.
 여객선 선장님이 제 아빠거든요.”

어린 아이의 지혜

우리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라고 합니다. 지구의 중심도 우주의 중심도 아픈 곳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픈 곳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아픈 곳을 향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

학교에서 과학 시간에 어떤 아이가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지요?”
선생님이 채 대답할 사이도 없이 일곱 살 난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디디고 설 발판을 만들어주려고 그러셨지.”

그 아이는 아주 심오한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율법과 선지자들과 성서를,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외아들까지 주신 것이 우리가 디디고 설 자리를 마련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멘... 

< 위 글은 리챠드 범브란트 목사의 글집 <하나님 구두는 누가 닦아주나요?>에서 발취하여 재구성하며 설명을 붙인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눈이 놀랍습니다.>

9월 6일 주일 공동기도문 / 문선경 권사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주님.
창조절 첫 주일, 오늘도 저희들은 
비대면 예배로 각 가정에서 예배드립니다.

저희들 형편과 처지를 잘 아시는 주님!
사랑과 은혜로 함께하여 주셔서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다짐하며, 
행동을 결단하는 귀한시간으로 인도하소서.

지금 이 땅에는 코로나19가 창궐하여 
온 인류가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회개하오며 고백 드리는 것은 
이 또한 저희들의 욕망이 불러온 
환경재앙의 일환임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이제 저희들은 
코로나 19를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이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지속가능한 생태적 삶을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실천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이 땅에 코로나가 만연하여 
사람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데도 
일부 입장과 주장이 다른 사람들이 
여론을 호도하며 가짜뉴스로 
국가질서를 흔들어 경제를 어렵게 하고 
민심마저 사분오열 시키고 있습니다.
코로나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국가기반을 흔드는 적대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의한 세력도 반드시 물리쳐 주소서.

은혜의 주님!
이 민족을 긍휼히 보시고 자비를 베푸셔서 
하루 빨리 코로나가 퇴치되게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이가 
소소한 행복을 누리게 도와주소서.
그런 가운데 민심이 화합하고 통합되어 
평화통일로 이어지는 힘이 되게 하소서.
그 길만이 겨레가 하나 되는 길이며
이 나라가 살 길임을 믿습니다.

이 시간 감리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10월 감독, 감독회장 선거에서 
하나님 뜻에 합하여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 
개혁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감독으로 세워 주소서.
후보로 나선 박인환 목사님과  
이 일을 위해 헌신하시는 양재성 목사님에게
능력 주시고 지혜를 주옵소서.
그리하여 감리교회가 이 땅에 희망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도와주옵소서.

가재울 녹색교회를 위해서 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세우신 종
양재성 목사님과 동행하여 주셔서 
마을목회, 환경선교로 이 지역에서 
새로운 목회비전을 만들어 가는 교회로 
우뚝 서게 도와주소서.
동역자와 일꾼들을 보내주셔서  
협동과 봉사, 그리고 헌신으로 
지역이 변화되고 선교의 새바람을 일으키는 
멋진 목회, 가재울녹색교회로 세워 주소서.
이 교회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허락하여 주소서.

이제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함께 하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결단하는 
은혜의 시간으로 인도하여주실 것을 바라오며 
예수님 이름 의지하여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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