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행동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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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행동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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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0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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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冊一言 하나, 둘, 셋 이야기

一冊一言 하나, 명심하라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지배하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소수의 의지다.

유의미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소수에게 굽힌 것은 다수였다. ‘민중의 의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변화를 원하는 ‘대중의 의지’가 있는지 물을 때, 우리는 모든 사람이나 다수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소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다. 실제보다 더 크게 행동하고, 의제와 여론을 바꾸고, 결국에는 태도와 신념을 움직여 다수의 시민들이 동의하게 하거나 최소한 자신들의 입장을 용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활성화되고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소수의 사람들 말이다....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반드시 다수의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떠한 요구가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그 요구에 시동을 걸기만 하면 된다. 독일 페르덴에서 버켄스탁 샌들 차림의 운동가 한 명이 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에 반대하기 위한 세계적 시민연합을 만들어냈다. 펠릭스 콜브는 ...노동조합이나 싱크탱크의 제도적 힘을 갖추지 못했지만, 그는 캠팩트Campact(캠페인과 액션의 합성어)라는 강력한 풀뿌리 조직을 공동설립했다. 그리고 현재 수십만의 독일인들을 동원해 독일의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그 협정 지지자들을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1955년부터 56년까지 이어진 앨라배마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콧 운동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보이콧은 사회적 태도를, 그리고 결국에는 법률을 고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그러나 보이콧 참가자들이 다수인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시민권 운동에서 시민 대다수가 그들의 전술을 마음에 들어 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저 소수의 참여만 있으면 된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자면 언제나 몇 명만 있으면 된다. 
(시민권력 ; 에릭 리우, pp276-278 : Just books 2017)

一冊一言 둘, 대동과 대동사회

본래 하나자의 ‘同’은 사람들이 장막 안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로 이는 곧 일이 있으면 다같이 의논하고 음식이 있으면 다함께 먹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동은 말 그대로 ‘모두 하나 됨’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이때의 하나 됨은 평등과 호수성(互酬 reciprocity=호혜, 상호의존)을 토대로 모든 사람이 일치하고 화합하는 상태 그리고 그 상태의 지속에의 의지까지를 포함한다. 즉 대동은 사람들이 물심양면으로 차별없이 하나 되는 상태와 그에 대한 지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여립의 경우에 있어서는 대동에 대한 한국의 정주학적 해석과는 다른 시각이었다. 정여립은 대동의 사회에 대해 천하위공(天下爲公)을 강조하고 군주의 세습을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신분의 차별을 없게하는 태도를 취하여 노장계통이나 선진 유학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정치적인 면에서 대동의 사회에는 황제권이나 왕위가 세습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아가 천하위공 즉 천하는 공물이기 때문에 그 천하(국가)가 황제나 왕의 전유물은 아닌 것이다....경제적인 면에서 대동의 사회는 재산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공유하고 공동체 중심으로 운영한다. ... 사회적인 면에서 보면, 대동의 사회에서 모든 노동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며 스스로 하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필요로 하는 만큼 복지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소외된 사람이 없다....결국 대동사상은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상통하는 이상적인 정치사상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래서 대동사상은 동양정치사상사에서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보다 이상적인 것을 갈구하는 모든 사상이 이곳으로 귀결된다.
(정여립 연구; 배동수, pp341,360-361: 책과공간 2000)

一冊一言 셋,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행동하라. 세상은 관계와 운동 속에서 바뀌어간다

...분단과 대립이라는 관계를 초래하고 있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교묘한 통치수법 가운데 하나로 분할통치(divide and rule)가 흔히 꼽힌다. 일부러 피통치자들끼리 대립이 벌어지게 만듦으로서, 대립을 초래하고 있는 제도나 정책에 대해 눈길이 돌아가지 않도록 공작을 벌인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사상에 입각하면, 혼자서 산속에 들어가 수행을 한다해도 결코 자기자신을 확립하지 못한다. 사회로 다가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세상에 현상할 수가 없다. 거꾸로 말해 ‘나는 사회와 관계가 없다’든가 ‘내가 나서도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라는 것은 비관도 낙관도 아니며, 단순히 불가능이다. 자신이 존재하면서 걷거나 일하거나 말하거나 하면,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게 된다. 반면,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 불만이 있어도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회가 바뀌어간다...

외부로부터 일방적으로 설교를 받게 되면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까닭은 설교하는 측이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하지 않는 상대에게 인간은 재미나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이 관계를 맺어나갈 디딤돌이 보이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지배를 받거나, 그저 숭배하거나 하는 방식밖에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남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돈벌이 혹은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거래하며, 상대를 수단 삼아 형식합리적으로 제휴하는 길밖에 없다.
(사회를 바꾸려면;오구마 에이지,pp203,205: 동아시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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