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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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
  • 박찬영
  • 승인 2020.09.0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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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청년들의 호소문

한국교회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 이 시국에 기독청년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는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는 절박함을 담고 있는 호소문이다. 이 호소문은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 한국기독교장로회청년회전국연합회, 대한기독교감리회청년회전국연합회, 대한예수교장로회청년회전국연합회, 기독교한국루터회청년회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이 소리가 한국교회를 깨워내길 기대해본다.

아래는 기독청년 호소문 전문이다. 

[ 기독청년 호소문 ]

“우리는 존망(存亡)의 기로에 서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았다. 전광훈 말이다. 코로나19 재확산의 주범들 말이다. 광복절 집회를 강행하고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퍼뜨리며 순교를 각오한 채 검사를 거부하는 그 사람들 말이다. 모두가 보았다. 덕분에 이제 ‘개신교인’이라는 이름 자체가 비난을 받을 이유가 되었다.

사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그들의 몰상식함을 비웃으며 무시했던 우리의 잘못이다. 그들이 차곡차곡 힘을 모으고 세력 키우는 것을 지켜만 보았던 우리 잘못이다. 그들이 끈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동안 ‘우리는 다르다’며 선을 그었던 한국교회 모두의 잘못이다. 이제 하나님도 협박할 수 있게 된 그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한다. 덕분에 우리도 비이성적이며 거리를 두고 싶은 극우 사기꾼집단이 되었다.

무책임한 선 긋기를 멈추자. ‘우리는 다르다’라는 비겁한 구호를 당장 멈추자. ‘교회가 죄송합니다’라는 성급한 불 끄기는 집어치우자. 정말 죄송하다면 ‘전광훈과 극우 기독교 세력’을 만들어낸 묵은 땅을 갈아엎자. 회초리 맞는 것 말고, 지게 지고 나와서 ‘머슴처럼’ 섬기겠다는 쇼 말고, 평양대부흥 100주년 회개 집회 같은 것 말고. 그런 일회용 퍼포먼스 말고, ‘개교회 중심주의’와 ‘중년·남성·목사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개혁하자.

사실 한국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위기였다. 개교회 중심주의와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가 쌓아온 불안 요소들 위로 코로나19라는 방아쇠가 당겨졌을 뿐이다. ‘내 교회, 내 성도’만 생각하게 하는 개교회 중심주의는 ‘내 성공, 내 구원’만 생각하는 신앙인을 양산했다. 덕분에 교회는 사회적 책임과는 거리가 먼 이기적인 집단이 되었다. 소수의 집단이 독점한 의사결정 구조는 교회와 교단의 부패와 고착화를 낳았다. 덕분에 교회와 교단은 각종 성추행과 세습 같은 도덕적 타락을 걸러내지 못하는 비상식적 시스템으로 전락했다.

우리는 존망(存亡)의 기로에 서있다. 교회가 한국사회의 도마 위에 오른 지금,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이대로 외면받으며 도태된 채 사그라질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에 기독청년들은 한국교회에 호소한다.

하나, 전광훈 같은 극우 개신교 세력과 결별하라.
하나, 성급한 선 긋기를 멈추고, 이들을 만들어낸 원죄가 한국교회에 있음을 인정하라.
하나, 급한 불 끄는 식의 반성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아라.
하나, 소수의 권력 집단이 교회와 교단의 의사결정 구조를 독점하게 하지 말고, 다양한 세대와 성별의 성도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라.

우리의 호소는 생존을 위한 호소가 아니다. 또 두려워서 외치는 호소도 아니다. 우리의 호소는 훼손당한 채 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라보며 터지는 비명이다. 우리의 호소는 예수를 닮고자 몸부림쳤던 앞선 신앙인들의 역사가 부정당하는 것을 바라보며 흐느끼는 절박한 울음이다. 한국교회는 기독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으라. 이 호소에 응답하라.

“한국교회는 존망(存亡)의 기로에 서 있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
한국기독교장로회청년회전국연합회
대한기독교감리회청년회전국연합회
대한예수교장로회청년회전국연합회
기독교한국루터회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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