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시대, 생명가족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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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시대, 생명가족공동체
  • 김경호
  • 승인 2020.09.01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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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향린교회 온라인 예배 설교(2020.8.30.)

설교본문 링크: https://sky17star.blog.me/222076036974

하늘 말씀 읽기 : 예레미야 22:13-19

"불의로 궁전을 짓고, 불법으로 누각을 쌓으며, 동족을 고용하고도, 품삯을 주지 않는 너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내가 살 집을 넓게 지어야지. 누각도 크게 만들어야지' 하면서, 집에 창문을 만들어 달고, 백향목 판자로 그 집을 단장하고, 붉은 색을 칠한다. 네가 남보다 백향목을 더 많이 써서, 집 짓기를 경쟁하므로, 네가 더 좋은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고 마시지 않았느냐? 법과 정의를 실천하지 않았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서 처리해 주면서, 잘 살지 않았느냐? 바로 이것이 나를 아는 것이 아니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그런데 너의 눈과 마음은 불의한 이익을 탐하는 것과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과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에만 쏠려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을 두고,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아무도 여호야김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도 '슬프다!' 하지 않고 여자들도 '애석하다!' 하지 않을 것이다. '슬픕니다, 임금님! 슬픕니다, 폐하!' 하며 애곡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끌어다가 예루살렘 성문 밖으로 멀리 내던지고, 마치 나귀처럼 묻어 버릴 것이다."

오늘 말씀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요시아왕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한 예언이다. 여호야김이 백향목을 쓰고 궁전을 짓고 누각도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일꾼들에게 가혹하게 행했다. “불의로 궁전을 짓고, 불법으로 누각을 쌓으며, 동족을 고용하고도, 품삯을 주지 않는”(13절)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여호야김이 죽을 때 아무도 그를 애도하지 않고 “사람들은 그를 끌어다가 예루살렘 성문 밖으로 멀리 내던지고, 마치 나귀처럼 묻어 버릴 것이”.(19절)라고 한다.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그의 아버지인 요시야 왕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칭찬한다.

네 아버지(요시야)가 먹고 마시지 않았느냐?
법과 정의를 실천하지 않았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서 처리해 주면서,
잘 살지 않았느냐?
바로 이것이 나를 아는 것이 아니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15-16절)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서 처리해 주는 것이 왕이 해야할 일이고, 왕이 법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정의란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들 쪽에서 느끼는 감정이고, 그들이 정의롭다고 할 때 비로소 정의롭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신앙적으로 “야훼 하나님을 아는 일”이라고 한다.

지금 교회를 지키고 신앙을 지킨다면서 정말 정의가 핍박을 받을 때는 짝소리도 못한 자들이 대면 예배사수를 주장하면서 마치 기독교 신앙을 혼자 수호하는 투사라도 된 듯이 하는 사람들은 온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나아가 그렇잖아도 생활이 위태로운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더욱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들의 행태는 사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오늘은 자본주의니 신자유주의니 하는 말들이 별로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냥 식자들이 어려운 개념으로 외치는 메아리 같아 오늘 가급적 쉬운 말로 설명해 보려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최고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빈부 격차와 양극화의 폭도 점점 더 심해진다. 경제발전이 이 정도 된다면 정부가 큰 소리 쳐도 좋을 만하지만 이상하게 국민들은 싸늘하다. 숫자로는 풍년이고 성장이지만 대다수 서민들은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비정규직이 되어 살림살이가 더욱 어려워졌다.

구성원이 100명인 집단이 있다. 새로운 경제 질서로 인해 상위 10명이 월 1,000만원 수입에서 월 2,000만원 수입으로 늘어났다. 전체의 수입 증가는 월 1억 원이다. 그러나 하위 50명이 월 200만원 수입에서 월 100만원으로 수입이 줄었다. 하위 계층의 감소분은 5천만 원이다. 그러나 이 집단은 전체적으로 5천만 원의 부가 증가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런 선택을 해야 할까? 우리 신앙인은 이것이 신앙적인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경제에 대해서 말할 때 항상 경제의 총량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매년 경제는 성장했다고 하지만 서민들의 삶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이것은 속이는 것이다. 빌게이츠가 부자인 것이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 듯이 심리조작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 총량이 아니라 삶의 질을 말해야 한다.

보수 정치인들은 새로운 경제체제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늘어난 부를 어떻게 분배하겠다는 계획은 없다. 조세나 분배체계는 빼고 성장만을 말한다. 생존 위기에 몰리는 하위 50%더러 혜택을 누리는 상위 10%의 노예로 살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다. 이것은 성서의 예언자들이 신앙 양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던 속임수다.

세계개혁교회연맹이 2004년에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에 대해서 저항하는 아크라선언(The Accra Confession)을 발표한데 이어 세계교회협의회(WCC)가 2006년 2월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제9차 총회에서 아가페문서(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s and Earth-민중과 땅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 세계화, 일명 AGAPE 문서)를 발표했다. 아가페 문서는 무한 경쟁, 생존 전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경제에 비해 하나님의 경제는 생명 경제, 생명 공동체의 경제를 펼쳐간다고 말한다. 이 두 체제가 대립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거대자본과 지역공동체의 싸움이다.
IMF 위기 때 여러분은 어떤 변화를 가장 피부로 느꼈는가? 여러 가지 변화가 있지만 서민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것 중 하나가 갑자기 에너지 값이 폭등한 것이다. 당시 8백 원대 하던 휘발유 값이 갑자기 1300원대로 치솟았다. 그리고 그 이후 경제는 안정되었지만 결코 에너지 값은 내리지 않는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정복하는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는 공통 현상이다. 신자유주의는 지역 경제를 파괴시키기 위해 우선 에너지 값을 폭등시킨다. 거대자본은 엄청난 물량을 배나 비행기로 한꺼번에 실어 나른다. 그 규모가 거대하기 때문에 운반비가 개별 단가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지역 경제에서는 된장 하나를 만들고도 용달로 움직이고 배추, 마늘... 소소한 모든 것을 부지런히 운반해야 하기에 유류 가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에너지 값을 높이면 지역 경제공동체의 생산물은 급격히 경쟁력을 상실하고 거대 자본이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다.

2. 자본가와 노동자의 싸움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에서는 노동자의 복지는 생각지 않는다. 자본가의 복지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제일 계명이다. 자본가가 최대 이윤을 얻는 일이라면 모두가 죽어도 눈 하나 까닥하지 않는다. 그들은 효율성을 위해 구조조정하고 무제한 정리해고를 한다. 해고를 하더라도 최소인원을 해고 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인원조차 남기지 않고 무더기로 해고한다. 필요한 노동력은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으로 고용하면 되니까...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에 비해 이미 반 토막, 반의 반 토막이 나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자본가는 효율성과 최대 이익을 거두지만 거기에는 인간도 없고 공동체도 없다. 그러기에 신자유주의 경제 방식으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고용 없는 성장’이 특징이기 때문에 노동자에게는 특히 해악이다.

3. 자본가와 식량주권을 위해 싸우는 농민의 싸움이다.
사람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생명유지와 복지의 기본이다. 그러기에 이것을 흔들면 식량주권을 파괴하고 무기화하면 때 돈을 벌수 있다. 그래서 세계자본이 가장 눈독을 드리는 것이 식량주권이다. 기후변화가 점점 현실화되면서 인간에게 꼭 필요한 식량과 물에 대한 독점이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6.25 이후에 우리는 미국이 보내주는 밀가루를 원조식품으로 받았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미국이 남미의 국가들에게 제공한 원조식품은 쌀이었다. 왜 쌀을 먹는 아시아 국가에는 밀가루를 주고 밀가루를 먹는 남미에는 쌀을 주었는가? 그냥 한없이 고맙기만 했지 받아먹는 처지에 왜 쌀로 주지 밀가루를 주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일정시간이 지난 후에 공개되는 미국 의회 기록을 보면 그 의혹이 풀린다. 당시 미국은 쌀을 주로 생산하는 아시아 국가에는 밀가루를 원조하여 입맛을 바꾸어 놓으려 하였다. 이들의 경제가 회복되면 계속 미국의 밀가루를 팔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남미에는 쌀을 제공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참으로 주도면밀하지 않은가?

그동안 수없이 우리에게 쌀농사를 중지시키려는 압력이 행해졌다. 농민들은 피흘려 투쟁해왔고 어느 정도 주식인 쌀농사의 주권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나라는 자기의 식량을 자기가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아시아, 아프리카는 특정 작물을 부분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하는 시장이 되어 가고 있다. 어느 나라는 커피만, 어느 나라는 사탕수수만 생산하는 단지가 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커피나 사탕수수만 먹고 살 수는 없다. 작물이 독점되면 기형적 착취구조가 완성된다. 그들이 생산한 작물을 수확할 때면, 그 지역에서는 아주 흔하니까 싼 값에 팔아넘기고 자기들이 필요한 식량은 매우 비싼 값으로 수입하게 된다. 다국적 기업들은 가난한 나라 농민들에게 지역 생산품을 수출용 작물로 바꾸라고 압력을 가한다. 이들은 생명체계의 통전성을 파괴하고, 유전자 조작 식품을 받아들여 실험의 대상이 되든가 아니면 그 나라 국민 중에 돈 없는 사람들은 굶어 죽도록 내버려 두는 선택을 강요한다.

이에 비해 하나님의 경제는 성장을 적게 해도 함께 나누는 세상을 추구한다. 각자의 임금이 줄더라도 전체의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을 펼치고자 한다. 아가페 문서는 신자유주의 세계경제 질서에 대해서 말한다.

첫째, 이웃과 함께 살라고 부르신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한다.

둘째, 이들은 “구조조정은 미래를 위한 창조적 파괴이다.” 또는 “장기적 이익을 위한 단기적 고통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언제나 희생을 당하는 것은 가장 보호받아야 할 민중이다.

셋째, 시장을 우상화한다. 이들은 “시장은 언제나 국가보다 효율적이다.”라고 하며 국가 역할을 축소할 것을 말한다. 이들은 거대자본의 자유로운 소통을 강조한다. 시장은 스스로 자율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시장이 스스로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상숭배에 빠지고 있다.

넷째, 이들은 세계 경제로의 통합이 모든 국가에게 이익을 주고 개인을 부요케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점점 더 양극화가 심해지고 대다수를 이루는 가난한 사람들은 저항과 거부운동으로 치달을 조짐이다. 신자유주의는 거대 자본과 제국적 권력을 가진 소수의 나라에게만 이익을 주고 있다.

다섯째, 이들은 인간이 무한대의 소비를 하도록 낭비를 부추기며 결국 권력과 자본이 끊임없이 탐욕을 만족하도록 돕는다. 이것은 기독교 정신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여섯째, 어떤 나라도 자국 영토 안에서 소비되는 식량을 생산할 수 없도록 방해하여 거주민들의 생존을 담보로 잡을 수 있도록 한다.

일곱째, 생명 경제의 기본 원칙은 연대, 재분배, 지속가능성, 안전, 자결을 전제로 한다. 식량, 물, 생필품에 대한 소비자와 생산자가 연대된 권리를 갖도록 보호해야 한다.

교회는 77억이 넘는 하나님 백성들의 고통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의 감정을 지릿찌릿 자극하는 데서만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경제는 정의와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고려해야 한다. 누구를 희생시켜서 부의 총량을 늘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교회는 사적 영역으로 도피해서도 안 되며 자신의 이익을 최고로 삼는 가치에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생활방식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교회는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릴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거대한 사회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저마다 상위 10%에 들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기도할 뿐이다. 이것은 교회가 직무를 유기하는 일이며 하나님을 탐욕의 우상이 되도록 욕보이는 일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다.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생명은 어느 것보다 소중하다. 함께할 때만 공존이 가능하고 생명공동체 생명가족이 실현된다. 당장 자신의 눈앞에 이익을 위해 생명공동체를 깨뜨리는 일은 몇몇 사람의 한정된 주머니를 채우게 될지는 몰라도, 그것은 결국 죽음과 살육과 재앙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의 지구촌을 함께 생명공동체 생명가족이 되도록 해야 한다. (김경호 목사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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