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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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 양재성
  • 승인 2020.08.3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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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장 21~28절

한국교회의 역할

지난 8월 27일, 한국교회 대표들과 대통령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간의 한국교회의 역할에 감사했습니다. 문대통령의 발언 내용입니다.
“기독교는 우리나라가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아주 지대한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구한말 우리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을 때 근대교육과 근대의료를 도입하면서 개화를 이끌어 주셨고, 또 일제 식민지시대에는 실력 양성 운동과 또 독립운동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해방 후에도 근대화와 민주화운동에 아주 주도적인 역할을 해 주셨고, 특히 또 나라가 가난해서 복지를 제대로 잘하지 못할 때 민간 분야 복지에서도 아주 주도적인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요즘에도 수해 복구에 또 많은 교인들이 봉사활동을 통해서, 또 성금 모금을 통해서 아픈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고 계십니다. 코로나 극복에 있어서도 대다수 교회가 정부의 방역 지침에 협력하면서 비대면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다. 쉽지 않은 일인데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협력을 이끌어 주신 우리 교회 지도자님들께 깊이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문 대통령은 한국교회가 걸어온 길을 잘 평가해 주셨습니다. 결국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합니다.

NCCK 총무의 발언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서 보수적 성향의 교단장들의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업장과 똑같이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업장은 아주 세밀하게 방역지침을 따르고 있는데 교회는 감영의 매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책임은 방기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이익집단이 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NCCK 이홍정 총무가 한 발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코로나19 감염병이 온 세상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먼저 거시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며 가난한 이웃의 희생을 대가로 이룩한 인간의 탐욕의 문명이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멈춰라! 성찰하라! 돌이키라!”

이 하늘의 명령에는 전 인류적 차원의 생태적 회심과 문명사적 전환을 요청하는 보다 근본적이고 종말론적인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탐욕의 질주를 멈추고, 생명의 빛 아래서 성찰하고 회개하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로 돌이키라는 최후의 통첩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반생태적 반생명적 문명의 길을 가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국가와 종교가 집단지성과 지혜를 모으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이 생명의 의제를 위한 숙의적 민주주의를 작동해야 합니다. 잘못된 목표설정을 과감히 수정하고 가던 길을 돌이켜 새로운 질적 삶을 창출해 나가야 합니다.

2. 오늘의 현실을 미시적 차원에 바라볼 때 코로나19 위기는 상호의존성에 대한 자각과 함께 다시 한 번 생명의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인식하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명의 안전을 위한 방역체계가 가동되고 이것이 사회와 소통되는 과정에 메시지를 왜곡시키는 심각한 장애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1) 방역의 정치화입니다. 생명의 안전을 담보로 방역을 정치쟁점화하고 정치투쟁의 도구로 삼아 저항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전광훈 현상’은 극우 개신교세력의 정치적 선전선동에 세뇌되고 동원되는 무지한 대중을 생산해 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그들의 모판이라는 비평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2) 가짜 뉴스가 이끄는 탈진실의 시대 현상입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설정된 의견과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가짜 뉴스를 양산하면서 탈진실의 시대를 이끄는 언론 몰이꾼들의 행패가 심각합니다. 가짜 뉴스에 의해 진실과 사실을 추구하는 노력들이 굴절을 경험하면서 생기는 소통의 왜곡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생명의 안전을 위한 방역과 평등사회를 추구하기 위한 노력들이 가짜 뉴스에 의해 좌절을 경험하지 않도록, 가짜 뉴스의 진원지가 그 어디이든지 발본색원하여 엄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3) 방역과 민생경제가 충돌하는 부분에 대한 정책적 대안의 미흡함입니다. 생명의 안전을 위한 방역이 민생경제를 제한하는 부분들에 대해 국가가 일관성 있는 대안적 정책을 장기적으로 구사하므로 생명의 안전을 지향하는 새로운 민생경제체제를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4) 이 모든 소통의 왜곡의 저변에는 분단된 한국사회에 깊이 내재된 이분법적 냉전의식이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민족의 소통을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한 교회에서 가정에서 친구 사이에서 소통의 왜곡을 가져오는 냉전의식의 해소가 시급하게 요청됩니다. 이를 위해 통일부를 ‘평화부’로 바꾸고 전 국민을 상대로 ‘적극적 평화교육’을 실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평화통일을 향해 가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베드로와 사람의 일

오늘 성서일과는 마태 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16장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드님”이라는 고백을 듣고 그 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비로소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사장과 율법사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며 마침내 로마 정권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될 것”임을 알립니다. 이 말씀은 예수 운동의 향후 진로를 밝히신 것입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부패한 종교 권력과 맞서고 인간을 차별하고 그 권리를 억압하는 절대 권력과 맞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성질이 급한 베드로는 그런 일이 절대로 주님께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막아섭니다. 이 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고 있다”며 호되게 꾸중을 하십니다. 예수는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유대 종교로는 정치적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당신을 따라오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오라”고 당부하십니다. 이는 목숨을 걸지 않으면 당신과 길을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곤 당신이 올 때에 행한 대로 갚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목숨을 걸고 이루고자 했던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예수를 통한 혁명을 꿈꾸었습니다. 나라의 독립이며 사람답게 사는 길입니다. 그건 제사장 율법학자 등 종교권력과 맞서는 일이며 당시 통지세력인 로마제국과 맞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는 당신의 지혜와 희생, 사랑의 길로 구원을 이루고자 하셨고 아울러 민중의 세력을 모아 혁명을 통해 해방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예수가 섣부르게 종교권력과 로마제국과 맞장을 뜨다가 죽으면 안 된다고 베드로는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세를 불리다가 거대한 민중 혁명을 일으켜 해방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는 민중의 죽음을 원하지 않았고 당신이 대표해서 죽고자 했습니다. 마지막 겟세마네의 기도문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결국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여기서 종교적 방식에 사회과학적 방식이 수용됩니다. 예수는 철저하게 평화적 방식, 진리의 깨달음, 정신의 힘, 사랑의 길을 통해 혁명을 이루시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민중의 정치적 해방도 이루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걸어온 길입니다.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일이며 무엇이 사람의 일입니까? 주님은 하나님의 아드님이며 그리스도라는 베드로의 대답에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당신의 고난의 길을 막아선다고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꾸중하십니다. 그리고선 어찌하여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느냐고 책망을 하십니다. 우리 안엔 베드로처럼 사탄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일이고 무엇이 사람의 일이며 무엇이 사탄의 일입니까? 사리를 분별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살았어도 사탄의 일을 한 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날 하나님이 길을 가는데 원숭이가 물고기를 물속에서 꺼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숭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무고한 물고기를 잡아 죽이느냐? 그 때 원숭이가 “죽이다니요, 물속에서 꺼내어 살리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자신은 열심히 살린다고 한 일인데 그것이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일은 존재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합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길을 가다가 나면서부터 소경이 된 사람을 만났습니다. 예수는 소경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선 당신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일은 소경의 눈을 열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소경을 비인간적으로 살게 하는 비본질의 껍질을 벗기고 눈을 열어 줌으로 참 사람의 길을 걷게 하신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자신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의 열림, 의식의 전환입니다. 마음의 눈이 열리면 세상을 달리 볼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일은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며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의 사랑은 연동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또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속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 사랑은 환대입니다. 상대방을 존귀한 자로 인정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기독교 보수층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함으로 차별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의 이름으로 복음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동성애를 혐오함으로 인권을 부정하는 집단이 되었고 사회적 혐오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19 정국을 지나면서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이기적 집단으로 비처지면서 혐오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어떤 식당에 “교회 다니는 사람 출입금지”라는 글귀가 부착되고 직장에서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교회에 다녀왔냐?”고 묻는다는 말이 우리를 참담하게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은 진실입니다.
하나님은 진실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진실한 사람입니다. 그 속에 다툼이나 허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무슨 일을 하던 하나님께 하듯 합니다. 진실은 지극히 작은 자들을 향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과 그들의 고통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지금 전광훈류의 극우 기독교집단은 가짜 뉴스를 지어내는 본산이 되었고 그 가짜 뉴스에 포로로 잡혀 역사의 발목을 잡고 퇴행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 어떤 가짜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 사유가 내 설교가 내 말이 가짜 뉴스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가 짊어지고 갈 마땅한 일을 짊어집니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십자가 마땅히 짊어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숙명처럼 그 십자가를 짊어질 때 우린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제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때입니다. 자신의 삶과 자신의 미래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서 실현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시대 혼란 속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길을 걷고 계신지를 묻고 또 물읍시다.

코로나 19 묵상

우리는 시방 성령강림 절기를 걷고 있습니다. 치유의 영이신 성령께서 치리하는 광선으로 우리 모두를 그리고 세상을 온전케 하시길 빕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온 나라가 난리입니다. 지혜를 모아 이 혼란한 상황을 돌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러한 때에 감리회목회자모임<새물결> 삼남연회 대표인 안중덕 목사의 글이 하나의 길을 제시하며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 전문을 소개합니다.

+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것은 잠잠하라는 뜻입니다.
  막말과 거짓말을 하지 말며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입니다.
+ 손을 자주 씻으라는 것은 마음을 깨끗이 닦으라는 뜻입니다.
  마음의 거울을 닦으면 자신이 보이고
  마음의 창을 닦으면 이웃도 보일 것입니다.
+ 사람과 거리를 두라는 것은 자연을 가까이 하라는 뜻입니다.
  사람끼리 모여 살면서 서로 다투고 상처를 주지 말라는 말입니다.
  공기와 물과 자연의 생태계를 돌보며 조화롭게 살라는 말입니다.
  자연을 가까이 하면 마음이 넉넉하여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 대면 예배를 하지 말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위안을 얻거나 사람에게 보이려고 예배당에 가지 말고
  천지에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말입니다.
  어디서나 고요하게 하나님을 대면하면
  그 나라와 그 뜻에 가까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 집합을 하지 말라는 것은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라는 뜻입니다.
  모여서 선동하거나 힘자랑하지 말고
  사람이 그리운 이들의 벗이 되라는 말입니다.
  우는 이들과 함께 울고 무거운 짐을 홀로 진이들과 나눠진다면
  세상은 사랑으로 포근해질 것입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전파 매개자로 지목되어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는 교회가 안 목사의 글로 다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전 세계를 멈추게 했고 거리를 두게 했습니다. 그리고 경제성장이며 인간의 계획을 무상하게 했습니다. 시장주의도 자본주의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예배당 대면 예배를 중단시켰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중단시킨 것이 아니고 집합을 중단시키면서 10명 미만의 소규모 대면 예배 외엔 모두 비대면 영상 예배로 전환되었습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들여다보아야 할 때입니다. 어쩌면 지금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과 하나님 나라의 이상에서 너무나 멀리 떠나왔습니다. 이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를 갖고 위 안 목사의 글을 묵상하다보면 길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교회는 남을 비난하거나 변명할 시간도 없습니다.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전진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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