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탁 지음, 『이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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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탁 지음, 『이주하』
  • 백창욱
  • 승인 2020.08.30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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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알고 있다가, 이번에 평전을 통해 그의 일생을 파악했다.
조선의 혁명가를 알게 돼서 영광이다. 세계 최장기 파업인 원산노동자 파업을 주도한 노동운동가. 일제가 두려워 한 전설적인 조직가. 남조선노동당을 끝까지 사수한 사람. 이승만정권에 사형선고를 받고 한국전쟁 한 달 후인 6월 26일, 김삼룡과 함께 총살당한 비운의 혁명가. 그러나 남북 모두에 봉인된 이름. 총살당할 때도 “위대한 조선 인민 만세!” “조선노동당 만세!” “노동자 농민 만세!”를 부르며 인민과 당을 위해 목숨 바친 자신의 신념을 자랑스러워했다. 리얼 공산주의자다.

이주하에 대한 기억은 어렸을 때 본 반공드라마다. 이주하, 김삼룡이 무차별로 경찰서로 연행되어 탈출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차에, 그들의 얼굴을 알아 본 경찰(남로당원이었다가 변절한)에 의해 신분이 탄로났다는 이야기다. 그 때는 저 악독한 공산분자들을 잡아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잡히지 말고 죽지 말고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 그러나 그들이 처한 정치상황이 김일성에게도 이승만에게도 배제당하는 처지인지라, 이 때의 죽음도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해방 후 이주하가 원산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을 때, 김일성과 당시 북한 군정사령관 치스차코프 대장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김일성은 원산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믿을 수 있는 부하들을 시켜 북조선의 민심과 동향을 알아보려 했다. 그 자신도 도착 다음날부터 김동환이라는 가명으로 원산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낯모르는 젊은이가 설치고 다닌다는 소식은 곧 이주하의 귀에 들어왔다. 이주하는 처음에 어디서 떠돌다 온 얼치기 공산주의자 하나가 있나 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이곳저곳에서 같은 보고가 올라왔다. 누군지 확인이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주하는 그를 잡아오게 했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이주하는 김동환이라는 이 젊은이가 무언가 감추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호탕한 평안도 사투리로 대답을 얼버무리곤 했다. 의심이 가는 인물이었다. 이주하는 일단 그를 당사빈방에 가두었다. 그러자 곧바로 소련군 위수사령부의 장교와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김동환이라는 젊은이가 자신들이 데리고 온 사람이라며 내줄 것을 요구했다. 소련군이 데리고 온 자라면 더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이주하는 그를 풀어주었다. 이주하는 공교롭게도 김일성이 입북하자마자 좋지 않은 인연으로 그를 만났던 것이다.

이주하는 위수사령관 흐레노프를 고발한 원산시민을 대표해 치스차코프와 만났다. 북한 최고 권력자와 마주 앉은 이주하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치스차코프는 그것이 거슬렸다. 앞에 있는 자는 고작 작은 시의 공산당 위원장이라는 한참 나이 어린 젊은이이지 않은가. 치스차코프의 말이 처음부터 곱게 나가지 않았다. “당신이 공산당원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순간, 이주하의 눈에 분노의 불길이 지나갔다.
“사령관은 공산당원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이주하는 대답 대신 받은 질문을 똑같이 되돌려 주었다.
“나에게는 1926년에 가입한 소련공산당당원증이 있다. 당신은 당원증이 있는가?”
이주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원증은 형식에 불과할 뿐,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는 신념으로 판단하는 것이오. 당신은 소련공산당사를 잘 알텐데, 레닌과 그의 전우들도 지하운동 시절에 당원증이 없었소.” 이어 불멸의 말이 떨어졌다. “당원증은 내 가슴속에 있소!”

이주하는 치스차코프를 노려보았다. 천하의 소련군정 사령관도 할 말을 잃었다. 이 일로 이주하는 소련군정에 요주의인물로 찍히게 된다. 치스차코프와 김일성이라는 최고 권력자와 일대 대결을 펼친 장면은 이주하가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반항아였음을 보여준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것은 역사에서 참된 사람은 일찍 세상을 뜨고, 어중이떠중이 폼생폼사하며 노가리만 까며 기회만 보던 자들이 모든 열매를 획득한다는 역설이다. 주로 우익 민족주의자라고 칭하는 부류들의 처세가 그렇기도 하지만, 정치도 대충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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