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동 기록, 『암태도 소작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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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동 기록, 『암태도 소작쟁의』
  • 백창욱
  • 승인 2020.08.30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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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태도 소작쟁의 사건을 보면서 연신 소성리가 떠올랐다

암태도 소작쟁의 약정조건

1. 지주 문재철과 소작인회간의 소작료는 사할로 약정하고, 지주는 소작인회에 금 이천 원을 기부한다.
2. 다이쇼 12년도(1923년) 미납 소작료는 향후 삼년간에 걸쳐 무이자로 분할 상환한다.
3. 구금 중인 쌍방 인사에 대하여는 9월 1일 공판정에서 쌍방이 고소를 취하한다....
4. 도괴(倒壞)된 비석은 소작인회의 부담으로 복구한다.

박복영은 너무도 갑자기 들이닥친 일의 종결에 문서를 든 자기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들을 두리번거려 쳐다보았다. 얼마만인가! 벌써 일 년을 넘어 끌어온 일의 종결이었다. 암태도 소작쟁의 사건의 최종합의문이다. 박복영은 소작쟁의 투쟁을 이끌어 온 지도자이고 이 기록은 박복영의 회고와 당시 신문자료를 기초했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삼일독립운동 4년 후인 1923년에 전남 무안군 암태도 소작인과 당시 삼만 석을 추수하였다는 지주 문재철 사이에서 벌어진 소작료 인하투쟁 사건이다. 수확의 칠팔할을 내던 소작료를 사할로 내리는 소작인들의 투쟁이 대승리를 거둔 쾌거이다.

어떤 투쟁이든 결코 순순히 이루어지는 투쟁은 없다. 그리고 승리하는 투쟁에는 반드시 단결이 필수조건이다. 단결에는 투쟁대오를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추수를 끝낸 후 소작인들이 몰래 개별적으로 지주에게 소작료를 갖다 바치지 않도록 단도리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배신하여 몰래 소작료를 갖다 바치자 문중제사 때 배신자를 나무에 묶어놓고 처벌한다. 지주에게 줄 쌀섬이지만 일단 자기 집에 있으니 제 것인 양 착각하여 노름판을 벌인 사람들에 대해 소작인회 총회에서 가차없이 제명하여 기강을 세운다. 모두 소작인회의 대오를 유지하기 위한 고책이다.

암태도 소작인회와 지주의 마름, 머슴 사이에 일어난 폭력사건이 공안사건으로 변질돼서 사건은 섬에서 목포로 비화한다. 주모자들이 목포로 끌려가 구금되고 재판을 받는 지경이 되자, 농사에 필요한 필수인원만 남고 섬 주민 수백 명이 범선을 타고 목포로 달려간다. 경찰서로 쳐들어가 농성을 벌여 경찰서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재판소에 떼로 몰려가 항의하고, 목포시내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이차 농성 때는 육백 명이 열 척의 범선을 타고 목포로 달려가서 재판소에서 저녁을 굶은 채로 야영농성에 돌입한다. 동아일보 기사 제목은 “노옹(老翁)과 소부(少婦) 이백 명이 기아 중, 굶은 어머니에게 매달린 어린 목숨”이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가 연일 암태도 소작인들의 가열찬 투쟁소식을 보도하면서 사건은 전국적인 현안이 된다. 급기야 관이 개입하게 되고, 서장과 도장관이 사태파악과 문제해결에 나선 결과, 지주를 압박하여 합의에 이른 것이다.

책 읽는 내내 백 년 전 사건이지만 오늘 우리 시대 그늘이 계속 겹쳐진다. 일제 식민지 때나 지금이나 민중이 겪는 시련은 민족 문제가 아니라 계급 문제인 점에서는 별 차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정권과 자본가가 합세하여 노동자에게 모질고 악독하듯이, 일제 때도 식민지배자와 조선인 지주 역시 소작인에게 모질고 악독하기는 다를 바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민중이 처한 현실은 기득권 주류들에 비해 현저히 열세이고 고로 깨친 민중이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가 여전히 열쇠이다.

그나마 소망이 있는 것은 대지주 문재철이 박복영을 도와 상해 임시정부 정치자금을 지원해 준 일이다. 문재철은 이내 종이쪽지에다 무엇인가 적어주었다. 그것은 자기 창고에 있는 물품의 출고지령서였다. 적힌 물건의 숫자는 벼 이백 가마, 보리 백 가마 그리고 누룩 오십동이였다. “이거 혹시 동그라미가 하나씩 잘못 붙은 것이 아닙니까?” 박복영은 뜻밖의 숫자에 놀라면서 물었다. “허! 내가 양말을 꼬매고 있으니까 고리타분해 보이오? 별 수 있소? 한국놈의 피를 가진 놈은 한국놈이지 일본놈 되겠소!” 그렇다. 맞다. 자본가도 한국놈이다. 동포의 양심으로 민중을 대하면 오죽 좋으랴!

나는 암태도 소작쟁의 사건을 보면서 연신 소성리가 떠올랐다. 정권이 사드를 강제배치했지만, 굴하지 않고 미제사드 철거할 때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는 소성리 주민들을 연상했다. 사안이 발생하면 한 달음에 경찰서로, 법원으로, 광화문으로, 청와대로 달려가서 관련자를 추궁하고 미제사드를 고발하는 결기가 백 년 전 암태도 사람들과 너무 닮았다. 살아있는 민중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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