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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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교회를 위하여
  • 양재성
  • 승인 2020.08.2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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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23 가재울녹색교회 설교

진정한 교회를 위하여 (마16/13-20)

지난 8월 15일, 광복절 집회는 왜곡된 기독교 신학과 복음이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며 혼란에 빠뜨리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코로나 19를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매개체가 되어 국민들의 분노와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그 책임이 우리 기독교에 있음을 인정하고 방역 당국과 국민들에게 사죄합니다. 
우린 천박해질 때로 천박해진 참담한 교회 현실을 직면하며 교회의 위기는 곧 사회의 위기로 이어짐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전광훈이 때문에 신천지가 재평가받고 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까지 나오며 기독교는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전광훈이류의 기독교를 방조한 것도 우리 기독교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참 기독교의 길을 걷지 않으면 교회는 사회적 혐오 단체로 전락될 것입니다. 우리는 유럽과 미국에서 극우 보수 기독교가 어떻게 망해갔는지 보아야합니다. 진정한 교회의 위상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사진제공 : 한현실님
사진제공 : 한현실님

오늘 성서일과는 마태가 전하는 복음서 16장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한적한 곳으로 퇴수회를 가셨습니다. 그리곤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더냐? 제자들은 엘리야, 세례 요한, 혹은 선지자가 중에 한 사람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는 그러면 너희는 나룰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습니다. 그 때 시몬 베드로가 “선생임은 주님이며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반색을 하시면서 이것을 알게 하신 분은 혈육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며 네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하늘의 열쇠를 건네주셨습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는 종교적 신비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참 된 기독교회는 이 베드로의 고백 위에 세워졌습니다. 예수가 주님이며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가치도 예수를 넘어 설 수 없고 그 어떤 권세도 예수를 넘어 설 수 없습니다. 그 어떤 행복도 이 깨달음을 넘지 못합니다. 교회는 이 고백위에 서 있습니다. 전광훈 따위가 농담 따먹기 식으로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허접한 종교가 아닙니다. 전광훈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당장 벼락으로 전광훈이를 쳐 죽이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또한 우주의 신비를 넘어 사랑의 신비로 세상을 물들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참 깨달음과 참 삶의 의미를 부여해준 기독교를 이렇게 천박한 종교로 전락시킨 자들이 누구입니까? 전광훈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닙니다. 기독교신자도 아닙니다. 아니 그가 믿는 하나님은 성서의 하나님이 아니며 그가 속한 교회는 참 기독교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하여 종교 장사를 한 천박한 장사치에 불과합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참 교회의 위상을 새롭게 새겨야합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는 감리교회를 네 가지 기둥 위에 세우고자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웨슬리 목사는 신앙의 기준을 말씀에 두었습니다. 바울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난다며 믿음의 근원을 말씀에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어두움의 세력을 이기게 하는 것도 말씀입니다. 예수는 악마의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결국 말씀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것도 말씀입니다. 말씀이 소재가 되어 우주가 생성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말씀은 우주 안에 충만합니다.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것도 말씀입니다. 애굽에서 탈출한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처음 하신 일도 말씀인 율법을 만들어 주신 일이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가 지도력을 이어받을 때도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탄하고 어디를 가든지 복을 받을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신명기 법전을 통해 말씀을 이마에 새기고 목에 걸고 마음에 새기면 하나님께서 영원히 보살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신앙의 힘은 말씀에 있고 그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얻기에 복의 유무도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 선택의 기준도 행동거지의 기준도 말씀입니다. 우린 그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야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 뜻대로 살아가야합니다. 

웨슬리 목사는 감리교회의 두 번째 기둥을 전통으로 보았습니다. 
감리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의해 세워진 초대교회 전통에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모일 때마다 행했던 것이 성찬식이었습니다. 성찬식은 기독교회의 가장 오래된 예배 전통입니다. 웨슬리 목사는 성찬식을 권장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찬식을 하였습니다. 웨슬리 목사는 성찬의식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내려온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웨슬리 목사는 여러 기독교 전통을 받아들였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주교(감독)제도를 받아들였습니다. 루터교회의 종교 개혁사상을 받아들였습니다. 개신교회가 말씀과 은총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전통을 무시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무시였지만 웨슬리 목사는 좋은 전통은 받아들였고 인간의 도의와 그리스도인들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셨습니다. 성화사상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의 포용성과 혜안입니다. 오늘날 그 진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어느 시절보다 기독교인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기둥은 이성입니다.
합리적인 사고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만 역사와 시대적 상황, 과학적 견해를 충분히 검토하여 올바른 판단과 결행을 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웨슬리 목사는 이성도 결국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코로나 19도 안 걸리고 비록 걸렸어도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리는 말씀입니다. 암이 믿는 사람들이라고 피해가지 않습니다. 불행한 사고도 믿는 사람이라고 피해가지 않습니다. 신실하고 정직하게 삶을 살아온 사람도 암에 걸리기도 하고 불의한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우리가 믿는 진짜 이유는 병에 안 걸리고 불의한 사고를 안 당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사람의 도의를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 믿음으로 어떤 병에 걸려도 그 병을 견뎌내고 불의한 사고가 생겨도 그것을 극복하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종교는 가짜입니다. 그런 종교는 없습니다. 

네 번째 기둥은 경험, 체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에게 기적을 주고 그 체험을 통하여 체화됩니다. 그러니 체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체험이란 우리가 맛 나는 음식을 먹듯이 우리의 영이 주님의 말씀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길을 걷다가 어떤 만남을 통해서 노동을 하다가 글을 읽다가 예배하다가 .. 우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주만물은 제각각 타고난 성품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자기다움입니다. 자기다움은 조물주의 은총이요 선물입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꼭 필요하며 소중한 것입니다. 또한 서로가 받쳐주지 않는 한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산과 나무는 서로에게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산이 있음으로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어 산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물고기와 물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모든 만물의 관계에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 없는 우주만물도 불가능하지만 우주만물 없는 하나님도 불가능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없이 내 존재가 불가능하지만 내 존재 없이 하나님도 불가능하다는 역설입니다. 
 
나는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다운 존재로 살아가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교회가 우리교회 다운 교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다운 것이 어떤 모습일까요? 그 길을 1930년, 조선감리회 창립총회에서 선언한 한국 감리교회 정신에서 찾고 싶었습니다.

먼저, 진정한 기독교회 전통입니다. 
세상엔 많은 종교가 있고 그 가르침이 있지만 우리교회는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의 삶에서 인간이 걸어갈 참 길과 구원의 길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우주와 만물을 지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아버지요, 우리는 그의 자녀로 한 형제와 자매요, 식구라는 깨달음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답게 하늘의 뜻을 붙들고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비방하고 미워하고 죽일 것이 아니고, 사랑하고 섬기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미워하면 벌써 나도 죽고 상대방도 죽는 것이요, 사랑하면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이 살리는 길이요, 섬김의 길이요, 예수의 길입니다. 그 길이 참 삶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요, 인류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교회는 불교도 아니고 회교도 아니고 유교도 아닙니다. 기독교회입니다. 예수의 뜻을 따라 사는 무리들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믿고 예수의 말씀에 순명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교회의 사명은 예수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고 사랑하고 살리는 일에 헌신함으로 더욱 철저하게 기독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하고 하나님의 뜻을 좌표로 삼고 하나님의 뜻의 실현을 위해 십자가도 마다하지 않고 죽음의 길을 걸어 마침내 그 사망의 벽을 뚫고 부활함으로 전혀 새로운 길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살기입니다. 
저는 이 예수의 길, 다시 말하면 예수살기의 길이 인류에게 충분한 구원을 가져다  준다고 확신합니다. 사이비는 사이비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그분은 진실 그 자체이십니다. 속을 수 없는 분입니다. 

둘째는 우리교회는 진정한 한국교회 전통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적 문화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기에 한국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민족성을 잘 살려 기독교회를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지난 날 쉽게 한국적인 것을 천시하고 미신화 시켜 버렸습니다. 전통을 버리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고 믿음이 좋은 것으로 자랑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한국적 문화를 버리려 해도 다 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며 그 피가 내 몸 속에서 흐르고 있습니다. 한국민족은 하늘을 존중했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정한수 한 사발 장독대 위에 올려놓고 이른 새벽 지성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기도는 그대로 새벽기도로 이어졌고 그 신심은 기독교 신앙심이 되었습니다.  
한국적 상황에 맞는 복음 해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지혜와 뜻을 모아서 우리방식의 기독교회를 일구어 내는 일입니다. 
언젠가 남미의 흑인 신학자 죤 콕이 연세대에 오셨을 때 남미의 기독교 화가의 그림을 선보였습니다. 성모도 성자도 흑인이었습니다. 흑인들은 하나님도 흑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예수와 제자들을 그린 화백의 그림을 보았습니다. 물론 서민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와 제자들을 그렸어도 좋았을 뻔했습니다. 한국적 그림 전통에 선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우리는 기독교회를 한국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제식민시대에 기독교회의 사명은 나라를 되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됩니다. 자연히 계몽운동과 민족운동에 자신들의 삶을 던집니다. 교회는 동포들을 섬기고 돌보는 일에 투신합니다. 해방은 그렇게 온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 이후 무임승차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친일세력입니다. 그 세력은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반공주의 기반으로 승승장구하였고 지금까지 이 나라 보수 기득권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극우 기독교와 전광훈도 그 부류입니다. 
기독교는 육이오 때는 공산당에 맞서 싸웠고 군부독재 때에는 독재와 맞서 싸웠습니다. 이제 한국적 상황에서 교회의 할 일은 환경문제와 여성문제를 고민하고 진정한 개혁을 이루는데 일조를 하는 것이며 민족의 통일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감리교회 전통입니다. 
웨슬리 목사는 교회와 사회를 통합적으로 본 대표적인 신학자요 목사였습니다. 웨슬리 목사는 탁월한 설교자이자 부흥사였습니다. 또한 그는 야학의 선구자요, 노동운동가였으며 교육운동가였고 사회복지운동가였습니다. 그는 교회운동 뿐만 아니라 탁월한 시민운동가였습니다. 당시 영국사회의 가장 큰 수입원이었던 노예 제도의 부당함을 고발하였습니다. 성공회 강단에서 추방당한 웨슬리 목사는 거리의 설교자로 부름 받아 노방에서 대규모 집회를 인도합니다. 당시 산업혁명으로 혼란한 때인지라 노동조건의 열악성으로 많은 민중들이 과중한 노동시간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웨슬리 목사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도록 도왔습니다. 또한 맞벌이 부모 때문에 아이들은 죄악에 그대로 노출된 체 방치되었습니다. 모두가 교육에서도 소외되었고 온전한 삶을 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들을 모아 야학을 시작하였고 교회학교를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불우한 이웃을 돕고 민족의 의식을 깨우는 일에도 힘을 썼습니다. 이렇듯 감리교회는 교회와 세상을 동시에 섬겨나가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지역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여 감리교회 전통을 따라야겠습니다. 

가재울녹색교회의 이상은 진정한 기독교회, 진정한 한국교회, 진정한 감리교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이 일에 온전히 투신합시다. 이제 한국 교회는 말로가 아닌 행동으로 그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고 말씀을 행하는 자가 구원을 얻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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