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과 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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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과 實
  • 김홍한
  • 승인 2020.08.1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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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만고의 진리이다. 그런데 그 말은 말이 아니다. 주어와 술어가 같은데 어찌 말이 되겠는가? “君君臣臣父父子子(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도 마찬가지이다. 주어와 술어가 같으니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옴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우리가 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쓴이 김홍한님은 목수일 하는 목사
글쓴이 김홍한님은 목수일 하는 목사

名과 實의 문제는 단순히 감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명과 실은 서로 부합되어야 참이라 할 것인데 명과 실이 부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名은 어디까지나 名일뿐 實이 아니다. 그래서 老子는 “名可名 非常名”이라 했다.

...

하나님 을 “하나님”이라 하지만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결코 하나님일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가 이름을 물었을 때 “나는 나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實에 名을 붙여야 한다. 名은 누가 붙이는가? 처음 사람이 붙인다. 성경에는 첫 사람 아담이 각종 짐승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아이의 이름은 아비가 붙여준다. 공을 세운이 에게는 왕이 姓과 名을 하사한다. 관직 또한 왕이 命한다. 그러다 보니 名이 命이 되었다. 더 나아가 天命이 되었다.
名이 天命이 되니 이제 名에 붙들리게 되었다. 본래 “名”은 소리이다. 夕(저녁)에 口(부르다)가 名이다. 해질녘에 어머니가 "개똥아 밥먹어라"고 부르는 것이 명이다. 그것이 글로 써지고 그것이 그대로 실체처럼 되었다. 성현들은 하나같이 그것을 경계하고 있건만 사람들은 글에 붙들린다. 글에 붙들린 것을 “문자주의”라고 한다. 문자 하나에 붙들려서 거기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많다.

공자가 말하는 名은 天命이다. 그래서 사람은 마땅히 그 이름값을 해야 한다. 그것이 正名이다. 名이 天命이니 그 名을 바꿀 수가 없다. 名에서 벗어나 새로운 名을 얻는 것이 革命인데 그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그것이 유가의 한계라면 한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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