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이 이루어 가야할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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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이루어 가야할 한반도 평화
  • 김경호
  • 승인 2020.08.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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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 강남향린교회 평화통일 주일 설교

<설교문>

어제 송파 평화의 소녀상 건립 1주년 기념식을 하면서 소녀상의 정신을 이어서 송파지역에서 인권, 민주, 평화, 통일, 차별금지를 위한 활동을 상시적으로 해나가는 시민단체 가칭 ‘송파 평화의 소녀상 시민 모임’을 발족하는 총회가 있었다.

작년에 세워진 송파 평화의 소녀상은 그 독특한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소녀상을 세워가는 과정에서 송파구내 민, 관, 어린이 청소년부터 여성 남성, 진보와 보수, 노동당, 정의당과 자유총연맹이 합심해서 모든 구민들이 함께했다는 점에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상 중에 하나이다. 그동안 많은 시민들이 다녀가서 손을 내밀고 있는 소녀상의 손이 닳아서 제작업체에서 보수를 할 정도이다. 많은 시민들이 찾아서 악수를 했기 때문이다. 눈에 띄지 않는 역사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맨 처음 소녀상이 세워진 일본대사관 앞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정대협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 논란 속에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분들을 신뢰하지만 비리가 있었다면 그것은 마땅히 밝혀져야 하고 그것은 지금 진행되는 수사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일 이후에 1992년에 시작하여 30년 가까이 이어진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위협받고 감히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친일세력들의 집회가 기승을 부리는 현상은 매우 유감이다. 만약 제기된 비리의혹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비리를 이유로 역사의 대의를 꺾고 그 흐름을 바꾸려 하는 꼼수에 우리 국민들은 결코 속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일본의 범죄가 묻히지 않으며 일본의 사죄와 반성 없이 친일의 목소리가 판을 치는 세상으로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송파 평화의 소녀상은 그 주변에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를 심어서 공원을 함께 만들었다. 이는 우리들의 품으로 돌아온 위안부를 환영하며 이제는 우리가 보호할테니 평화를 누리시리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화냥년’이라는 말이 있다.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말이지만 이는 병자호란, 정묘호란, 임진왜란 때 중국이나 일본에 잡혀간 여인들이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지만 개중에는 고국에서 열심히 모금을 하여 몸값을 치르고 되돌아온 여인들이 있었다. 그들을 환향(還鄕)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이라고 불렀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환영하기는커녕 ‘화냥년’이라는 이름으로 손가락질하고 사회적으로 매장해 버리고 말았다. 전쟁에서 지키지 못한 우리들의 아내와 딸들이 되돌아오면, 이들을 지키지 못한 남성들이 무릎 꿇어 석고대죄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가부장 제도는 오히려 모든 죄를 그녀들에게 뒤집어 씌워서 정죄했으니 요즈음 이야기하는 2차 가해도 이런 2차 가해가 없다.

얼마나 못난 남성들이고 얼마나 비겁한 역사인가? 그런 것을 보면 송파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우리가 보호해야할 일본군 위원부이기도 하고, 중국에서 돌아온 ‘환향녀’이기도 하고, 모든 분쟁지역에서 수난 받는 여인들이기도 하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 분쟁이 있는 곳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강간, 폭행을 당하고 있다. 그녀들은 단지 적군에 의해서만이 아니고 아군에게 마저도 성적 폭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전쟁이란 것은 얼마나 야만적인가? 서로를 죽이고 형제 자매의 피가 내 손에 흐르는데 거기에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 있냐? 십계명이 있냐?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교훈이 손톱만큼이라도 존재하냐? 전쟁 상황은 모든 성경말씀과 모든 신앙이 문을 닫은 배교와 反신앙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수많은 전쟁들이 종교의 신념 속에서 행해진 것을 보면 적그리스도는 다름 아닌 바로 신앙 안에, 잘못된 신앙의 가르침 안에 있다.

지난 2년간 우리가 희망고문을 당했다. 한반도 평화가 금방 우리 앞에 온 듯, 금방 통일이라도 될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작년 2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모든 것은 날아갔다.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이런 정상들의 회동을 통해서 무언가 이루어 보려던 우리들의 소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애초에 잘못된 소망이었다.

역사는 영웅들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는 민초들의 땀과 희생이 아니면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는다. 역사는 늘 영웅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수많은 민중의 땀과 희생에 의해서 전진해 왔다. 지배자는 자신들의 지배권이 강화되는 범위에서만, 자신에게 정치적 이익이 되는 한계 아래서만 움직일 뿐이다. 그런 조건은 하루 아침에 뒤 바뀔 수도 있고, 오늘과 내일이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혹 그들을 기대하였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를 그 안에 내장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타미플루 사건이 있었다. 북에서 급하게 타미플루를 지원해 주길 원했고 약품지원은 인도적 차원에서 가능하기에 한국정부가 타미플루를 트럭에 실어서 개성공단으로 전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한미워킹그룹이 이를 차량으로 실어 나르는 것이 유엔제제에 해당한다며 제동을 걸었다고 한다. 그래서 북측은 개성공단에서 2개월을 간절하게 기다리다가 돌아갔다. 이런 정도는 의지의 문제다. 정 안되면 우리 시민들이 배낭을 메고 중국을 통해서 전달하든가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큰 것도 아니고 다급해서 약을 요청하는 것조차 외면했다면 의지가 없는 것이다. 그 이후 북측이 남측에 대한 태도는 급변했고 지금은 남과 북이 다시 예전에 적대적 관계와 다름없게 되어 버렸다. 저는 이 타미플루 사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과연 한반도의 평화의지가 있는가 그를 다시보게 되었다. 이것이 소위 영웅들의 실제 민낮이다. 그들은 자기 권력을 셈하고 자기 이름을 남기려 하지만 실제 역사의 움직임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이 땅에 평화를 위해 몸을 던지는 민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들이 없다면 역사는 움직이지 않는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그의 시 "역사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곱 개의 성문을 가진 테베를 누가 건설했는가? 책에는 왕의 이름들만 적혀 있다. 왕들이 울퉁불퉁한 돌 덩어리를 직접 날랐는가? 그리고 수없이 파괴되었던 바빌론 그때마다 그 도시를 누가 재건했는가? 황금으로 빛나는 리마의 건설 노동자들은 어떤 집에 살았는가? 만리장성이 완성된 날 저녁 석공들은 어디로 갔는가? 위대한 로마 제국에는 승리의 개선문들로 가득하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는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딛고 승리를 거뒀는가? 끝없이 칭송되는 비잔티움제국에는 궁전들만 있었는가?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에서조차 바다가 그곳을 집어삼키는 밤에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어 가면서 그들의 노예를 애타게 불렀다고 한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 혼자서? 카이사르는 갈리아 인들을 물리쳤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은 데려가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 황제는 자신의 함대가 침몰하자 울었다. 그 혼자 울었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혼자 승리했을까?

모든 페이지마다 승리가 적혀 있다. 누구의 돈으로 승리의 잔치가 열렸을까? 십 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났다 그 비용은 누가 부담했을까?

너무도 많은 목록들
너무도 많은 의문들

고구려 멸망이후 당나라가 우리 땅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우리 백성을 다스리려고 했다. 그러나 자부심 높은 우리 민족은 나라가 망했으나 외국 군대가 다스리는 통치를 용납할 수 없었다. 고구려 유민들은 나라도 없이 군대도 없이 단결해서 대국 당나라를 끊임없이 괴롭혀 결국 9년에 한반도에서 축출했다. 이후 명나라, 원나라, 일본등 외세들이 우리 땅을 넘보았고 그중 일본이 40년간 군대를 주둔시킴으로 가장 오랜 세월을 지배했으나 지금 미군은 76년째 한반도에 주둔하며 매년 천문학적인 주둔비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그들은 북과는 상관없이 중국을 겨냥해서 평택, 새만금, 군산등에 미군 벨트를 만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 이 땅에는 미군의 손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민중이 깨어 있지 못하면 진정한 평화는 우리에게 올 수 없다. 그것은 오더라도 잘못 꿰어진 단추요 어긋난 역사일 뿐이다.

초기 기독교는 유명한 사람들에 의해서 선교된 것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그들은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으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을 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을 택하셔서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다. 그것은,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민중은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 민중은 자신의 이익에 목숨 걸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역사의 진보와 사람들 사이에 참다운 평화를 쫓아갈 뿐입니다.(김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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