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과 함께 그늘을 걷다
상태바
태일과 함께 그늘을 걷다
  • 백창욱
  • 승인 2020.08.17 2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성규 지음, 『태일과 함께 그늘을 걷다』.

하마터면 이 책을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기만 할 뻔 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전태일 사후 50년 되는 해인데, 또 저자가 직접 혜존한 책인데 하는 생각으로 펴 들었다. 가끔 성실한 의무감이 보상받는 때도 있다. 이 책도 그렇다. 강성규선생은 지역운동체인 성서공대위에서 알고 지내는 사이이긴 하지만, 가까이에 이런 문재(文才)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국어선생이 허투루는 아닌가보다.

읽으면서 내내 감탄한 것은, 저자만의 관찰과 성찰이 빚은 창조적 어휘들이다. 그저 감상적이거나 통속적인 표현이 아닌, 한국 사회 취약점을 꿰뚫은 예사롭지 않은 서술들이 곳곳에 번뜩인다. 한국 사회가 아름다운 나라만은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벼린 통찰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값진 것은 50년 전 전태일의 삶과 노동을 오늘날 전태일 또래의 청년들의 삶과 노동과 직결시키는 서술이다. 노동현장에서 불의한 또는 불운한 죽음을 겪은 청년 노동자들의 부모가족을 만나서 전태일 때와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노동현실을 증언한다. 일일이 사람을 만나는 발품과 더불어 저자 특유의 감수성이 활발하다. 어떻게 이런 연결이 가능할까? 저자가 고등학교 교사라는 삶의 자리에다가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학생들이 졸업 후 취업전선에서 겪는 노동현실에까지 이어졌기에 그럴 것이다. 자신이 담임으로 있던 학생이 자살한 이야기에서 그가 느꼈을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이 가혹한 세상은 이처럼 선의의 인간애를 늘 통째로 뭉갠다. 이런 세상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저자의 통찰이 빛나는 서술들을 함께 감상해보자.
“성장 중심으로 ‘근로자’를 대하는 관점에서 삶을 중시하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달리 보자고 말한다.” “우리 생애의 첫 노동은 인간다운가” “나는 경기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이 일하는 한국 사회 지하층의 지도를 ‘그늘의 지도’라고 부른다. 그 지도는 압축 성장과 산업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빚어낸 세상을 떠받치는 중요한 지도이다.”

“나라를 전부 차지한 소위 ‘진보와 보수’의 시각으로 세상은 사과 반쪽처럼 잘라지지 않는다. 경제 민주화는 도래하지도 않은 세상에서, 저 두 낱말의 동맹으로 간결하게 정리되는 상황에서 소외되는 것은 누구인가.” “전태일의 평화시장과 오늘 우리가 일하는 경기장 지하가 동시대가 되는 것은, 이 죽음의 경기를 결국 멈춰야 한다는 사람들의 사회적 의지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전태일은 사회 전체가 무섭게 한 편이 되어 약자들을 괴롭히던 시대 분위기에 묻어가지 않고, ‘이건 아니다’ 하고 선언했다.”

“한국 사회의 ‘오직 먹고사니즘’은 이렇게 국민들에게 좁은 시야를 강제하는 과정에서 삶의 유일한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야식으로 삼립빵 하나 나오지 않는 하루 15-16시간 노동의 대가는 어디로 갔을까?” “장시간 노동은 세상을 파악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삶은 강자들이 세팅해 두었다.” “많이 죽고 다쳤지만 진실은 권력과 언론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당시 한국사회는 사람들의 밥을 챙기지 않았다. 밥은 알아서 먹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저임금과 초라한 밥은 누군가의 초과이윤과 기름진 밥상의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다.”

“웅장한 타워크레인들이 하늘을 조각조각 분할하고 있다. 조각난 하늘처럼 소박한 삶이, 골목이, 정다운 이웃이 쪼개져 간다.” “정비 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시내 역세권 땅을 빈틈없이 노리는 건설사와 다주택 보유자들, 인허가를 남발하는 관청이 맺는 ‘욕망의 오래 된 동맹’은 어디까지인가. 그 속도는 이미 저 신남네거리 과속 단속 기준인 70키로를 넘은 지 오래지만, 관청이 함께 하고 있으니 단속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구 남산동에는 태일이네 가족이 1963년 살던 집이 피자 한 조각 모양의 땅에 아직 버티고 서 있다.” “가난한 이들의 삶터, 작은 땅조차 허락하지 않는 이 시대의 욕망은 뜨거운 혀를 날름대며 이 작은 공간을 노려보고 있다.” “싸우는 유가족에 대한 경멸은 한국 사회의 재난 대응 매뉴얼로 자리 잡았다.”

“짧은 방학을 잘게 쪼개어 학원이, 학교 보충수업이, 붐비는 관광지가, 헬스장과 교회가 나눠 가진다.” “성서공대위 회의에서 백창욱목사는 야간자습을 마치고 밤늦게 교문을 빠져나오는 학생들의 축 처진 어깨와 창백한 얼굴을 보면, 공장 야근을 마치고 나오는 노동자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노동자에게는 과로와 영양실조, 결핵, 위장병, 안질, 저임금에 고달픈 ‘고통의 시간표’였지만, 신흥자본가로 커 가는 사업주들에게는 이윤이 쌓이는 ‘희망의 시간표’였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표현이 절묘하다.

지면상 더 소개하지 못하겠다. 이 외에도 한국 사회 탐욕의 내면을 비추는 주옥같은 서술들이 많다. 머리로만 쓴 글과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과 발로 쓴 글의 차이가 명확하다. 안구가 정화된 기분이다. 저자의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